캐나다 작가 허 준(June Hur, 한국이름 허주은) 씨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세 번째 역사 소설을 발간했다. 지난 25일 뉴욕 맥밀런(Macmillan)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붉은 궁전(The red palace)』은 캐나다 각 서점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판매와 동시에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포브스 선정 2022년 가장 기대되는 책(Forbes Most Anticipated Book of 2022 Selection)으로 선정되었고, 청소년도서관협회 선정도서(A Junior Library Guild Selection)에도 그 이름을 올리며 캐나다 독자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역사책을 2020년부터 매해 한 권씩 집필하고 있는 허준 씨는 앞서 발간한 두 책, 『뼈들의 침묵(The Silence of Bones)』과 『도둑맞은 소녀들의 숲(The Forest of stolen Girls)』으로도 많은 찬사를 받았다. 『뼈들의 침묵』은 조선 시대 여성의 의료와 형사를 담당했던 다모에 관한 소설이며, 『도둑맞은 소녀들의 숲』은 조선 시대 조공으로 받쳐지던 공녀에 관한 이야기다. 북미권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한국 역사와 관련된 책들이지만, 허 준 작가의 치밀한 문체와 구성력으로 많은 관심과 상을 받아왔다. 특히 첫 작품인 2020년의 『뼈들의 침묵』은 바운드 엔터테인먼트(Bound Entertainment)와 함께 TV 시리즈로 제작 중이기도 하다.
<세 번째 조선 시대 역사 미스테리물로 돌아온 허 준 작가 - 출처 : 인스타그램(@writerJuneHur)>
지난 25일에 허 준 작가의 『붉은 궁전』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가 온라인으로 열렸다. 저녁 8시에 진행된 북토크는 작은 서점인 베스트 오브 북스(Best of Books) 주관으로 진행되었으며, 《뉴욕 타임즈》 베스트 셀러 작가 조안 헤(Joan He)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50명 이상의 참가자들은 이들의 대화를 경청할 뿐 아니라, 허 준 작가의 새로운 책 발간을 축하하였고 많은 질문들을 통해 책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가상 회의 서비스 플랫폼인 줌(Zoom)으로 시작한 이번 북토크는 1758년 조선에서 일어난 책 내용으로 이야기의 문을 열었다. 열일곱 살의 주인공 현(Hyeon)은 궁중 간호사로 일하기 위해 궁궐에 들어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4명의 여자들이 살해된 사건을 접하게 된다. 사랑하는 친구이자 멘토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자 그녀는 비밀리에 조사를 시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궁궐의 치명적인 비밀과 어두운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허 준 작가는 오래 전부터 들어온 한국 역사 조각 중 일부인 사도 세자에 대해서 공부하면서부터 이 책을 구상하게 됐다고 했다. 특히 혜경궁 홍씨를 다룬 책을 읽으면서, 영조와 사도세자, 혜경궁 홍씨에 관한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그 위에 범죄, 스릴러, 미스터리를 만드는 작업은 쉽지는 않았지만 글 쓰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출판기념 북토크를 진행하고 있는 허 준 작가 – 출처 : 줌 미팅 스크린샷>
북토크에는 책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허 준 작가가 글을 쓰는 방식과 패턴, 삶의 이야기 등도 담겼다. Q&A 시간에는 많은 참가자들이 허 준 작가에게 질문을 했다. 참석자들 대다수가 허준 작가의 지난 책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벌써 새 책을 읽은 이들도 있었다. 한 참가자는 역사 미스터리 분야의 책을 집필할 때 자료조사 과정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어떤 책을 선택하고 어떻게 조사해 가는지 질문했다. 이어 다른 참가자는 책을 통해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서, 영어로 작성된 신뢰할만한 한국 역사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이번 책 표지 그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한국드라마 포스터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실제 집필과정에서 영향받은 드라마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허 준 작가는 실제로 <대장금>, <킹덤> 등과 같은 사극을 보면서, 당시의 의상, 건축물 등 다양한 시각적 효과가 각인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으며, 글 쓰는 과정에도 영향을 준다고 답변했다.
<사도세자 이야기를 다룬 허 준 작가의 신간 - 출처 : 맥밀란 출판사>
온라인상에서 허 준 작가의 『붉은 궁전』은 벌써 긍정적인 반응을 받고 있다. 책을 서로 추천하고 감상평을 기록하는 웹사이트 굿리드(Goodreads)에서 『붉은 궁전』은 판매된 지 하루 만에 평점 5점 만점에 4.47을 받았고, 153개의 리뷰가 등록됐다. 서평은 대체로 풍부한 역사적 디테일과 빠른 속도의 전개, 매력적인 캐릭터와 치밀한 구조 등에 대해 호평했다. 1700년대 한국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흥미롭게 빠져들게 하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으며, 역사적 정확성을 가지고 사실과 허구를 혼합한 방법이 놀랍다는 평가도 있었다.
캐나다에서 한국 역사를 중심으로 한 미스테리물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은 한국 이민사와 문화 교류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특히 허 준 작가의 책이 주로 청소년 장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한국 역사가 익숙하지 않은 캐나다의 젊은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치가 된다. 또한 한국드라마와 케이팝에 익숙한 이들이 한국 역사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관문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캐나다에서 자라 토론토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허 준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를 공부하고 고민하며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화려한 대중문화가 아닌 캐나다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한국 역사를 접할 길 없는 캐나다 한인 및 아시아인들뿐 아니라 캐나다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한국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조선 시대 연산군을 배경으로 한 또 한 권의 책을 출간할 계획이라는 허 준 작가의 꾸준함과 도전정신이 캐나다 땅에서 한국을 더 깊고 넓게 알리는 길이 되길 기대한다.
성명 : 고한나[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캐나다/토론토 통신원]
약력 : 현) Travel-lite Magazine Senior Editor 전) 캐나다한국학교 연합회 학술분과위원장 온타리오 한국학교 협회 학술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