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문화재 반환 소식을 발표하는 로베르토 리카라디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카라비니에리 사령부 준장 - 출처: ©Ansa>
조선 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행사 내용을 정리한 기록인 외규장각 의궤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 간 우리나라 문화재다. 2011년 145년 만에 외규장각 의궤가 고국으로 돌아와 현재 우리나라에 있지만 5년 단위로 갱신되는 무상 영구 대여 형식으로, 아직 프랑스 소유이다. 금속 활자로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 ‘직지심체요절’ 하권은 구한말 프랑스 외교관이 구매한 것으로 약탈 문화재가 아니어서 정식으로 반환 요청조차 할 수 없다. 한국에서 여러 차례 전시를 위한 대여를 요청했으나 프랑스에서 국내전시 이후 반환이 미뤄질까 대여를 모두 거절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렇게 구한말, 일제강점기, 한국 전쟁의 한국 역사 소용돌이 속에서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전 세계 20개국의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그리고 개인 소장 등의 형식으로 유출되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는 약 12만 점에 이른다. 그래서 이탈리아 정부가 2010년부터 골동품 밀매 혐의로 추적해 온 뉴욕의 이탈리아 골동품 수집가 에도아르도 알마지아(Edoardo Almagià)로부터 200여 개의 이탈리아 문화재를 돌려받는다는 소식은 우리에게도 반갑다. 이탈리아 정부는 그동안 미국과 합동으로 에도아르도를 공예품 밀수와 밀매, 판매 혐의로 끈질기게 조사해 왔으며 미국의 모든 박물관과 딜러들을 샅샅이 뒤져 에도와르도가 훔진 이탈리아 문화재를 찾는 일을 계속해왔다.
골동품 수집가 에도아르도는 2010년 이탈리아 정부가 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을 때, 골동품 수집이 범죄가 되고 있다면서 미국의 시장에 대한 자유가 골동품 수집 분야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 그는 로마 무덤을 약탈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이탈리아 사법부는 공소시효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당시 그가 소유한 모든 유물을 몰수했다. 이에 에도아르도는 이탈리아 정부가 자신의 수집품들을 돌려줘야 한다고 미국의 여러 매체와 인터뷰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의 끈질긴 노력 끝에 지난 12월 16일(이탈리아 시간) 뉴욕시는 총 1천만 달러에 달하는 대부분 에도아르도 알마지아의 소유물인 200여 개의 이탈리아 유물을 회수하여 이탈리아로 반환한다고 밝혔다.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카라비니에리 사령부(Carabinieri Command of the Protection of Cultural Heritage)를 지휘하는 로베르토 리카르디(Roberto Riccardi) 준장은 이 유물을 인수하기 위해 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한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귀중한 고고학적 발견은 이탈리아 문화적 정체성의 일부이므로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고”라고 말했다.
12월 16일 현재, 뉴욕시로부터 뉴욕주재 이탈리아 영사에게 전달된 200여 점의 유물들은 대리석 흉상, 도자기 인형 등 역사적, 고고학적, 미술사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며, 그중에서도 그리스 시대에 크레타섬에서 만들어져 물이나 곡물을 저장하는 그릇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율리시스가 그려진 피토스(Pithos)(아래 사진 왼쪽), 소녀의 머리 상(아래 사진 가운데), 고대 물병(아래 사진 오른쪽) 등이 이탈리아 언론에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
<피토스, 소녀 머리 상, 고대 물병 사진 - 출처: the Manhattan D.A.>
미국에서 이탈리아로 고대 유물이 송환되었던 사례 중 최대 규모가 예상되는 이번 쾌거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이해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끈질기게 노력한 이탈리아 정부가 이루어낸 성과이다. 우리 선조들의 소중한 문화 유물들이 국권 피탈 시기에 밀반출하고, 친일 조선인이 일본 인사들에게 선물로 바치고, 대한민국 초기 인사동 등 골동품상을 통해 유출되는 등 국보로 지정되지도 못한 채 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전 세계에서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문화재 반환 문제는 국제법, 각 나라 법,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미술사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민간 차원에서는 풀어나가기 힘들다. 이탈리아의 이번 사례를 통해 이탈리아 정부가 어떻게 문화 유물들을 찾았는지 살펴보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문화재 반환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 참고자료
《TG Com》 (2021. 12. 16.) <Usa, New York restituisce all'Italia 200 antichità rubate>, https://www.tgcom24.mediaset.it/mondo/usa-new-york-restituisce-all-italia-200-antichitarubate_43182848-202102k.shtml
Edoardo Almagià, https://almagia.it
《La Repubblica》 (2021. 12. 16.) <New York restituisce all'Italia 200 antichità rubate>, https://www.repubblica.it/cultura/2021/12/16/news/new_uork_restituisce_all_italia_200_antichita_rubate-330381084/
《Il Sole 24 Ore Arteconomy》 (2021. 12. 12.) <New York restituisce all’Italia 200 antichità rubate per un valore di 10 milioni di dollari>, https://www.ilsole24ore.com/art/almagia-trafficante-che-ha-strappato-pagine-nostro-patrimonio-AEOCK92
《MSN Notizie》 (2021. 12. 17.) <Usa, New York restituisce all'Italia 200 antichità rubate>, https://www.msn.com/it-it/notizie/mondo/usa-new-york-restituisce-all-italia-200-antichità-rubate/ar-AARRR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