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이라는 키워드를 들었을 때, 누군가는 단계적 발전을 떠올릴 것이다. 예를 들어, 전화의 발전을 떠올리면 예전 전화국과 교환원을 거쳐 통화하던 시절, 가정마다 사용하던 유선전화, 핸드폰, 스마트폰이라는 단계를 거쳤다. 그러나 미얀마의 사정은 다르다. 유선전화 설치 비용이 비싸고, 또 오래 걸리다 보니 가정마다 유선전화를 사용하는 시기를 건너 뛰고 바로 스마트폰의 보급이 된 국가라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전화의 사용은 한 예시이지만, 미얀마 사회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는 더욱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듯이, 경제 개방과 함께 시민들의 삶은 급격하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도기 속에서 사람들은 때로는 글로벌 수준으로 사고하면서도, 여전히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에도 미얀마인들의 삶은 급속도로 변화했다. 올해 2월에 시작된 비상사태를 기점으로 발생한 가장 큰 변화는 결제 방식이다. 은행들이 현금 인출 행위를 하루 30만 짜트(약 20만원) 수준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현금을 사용하지 못할수도 있다는 우려에 ATM 기계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섰다. ATM 앞, 자리를 맡아주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긴 대기줄에 다투는 사람들도 빈번히 보였다. 이렇게 화폐 순환이 잘 안 되다 보니, 카드결제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거래에서도 대금의 절반은 현금, 절반은 계좌이체 하는 새로운 방식도 생겨났다.
그동안 미얀마의 일반 중산층들은 가정 내 금고를 보유하고 있었다.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거나 입금할 때도 사람들은 돈을 쌀 포대와 같은 자루, 혹은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 거래하곤 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런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현재는 이처럼 큰 돈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보기 드물다. 일반 상점에서도 현금 위주의 계산이 일반적이었다면, 현재는 카드결제 건이 크게 증가했다. 카드뿐 아니라 ‘OO페이’라 불리는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과 온라인 결제 건 역시 증가했다. 현금거래만을 고집할 것 같았던 미얀마 사회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미얀마의 한 은행에서 제공하는 간편결제 서비스. QR코드를 찍어 송금도 가능하다. - 출처 : CB Pay>
지불 수단의 변화는 제품 구매 플랫폼의 다양화로도 이어졌다. 현재 미얀마 사회에서 사람들이 빠른 정보교류를 위해 선호하는 플랫폼은 페이스북이다. 물건을 사고 파는 행위 역시 페이스북 안에서 빈번히 관찰된다. 올해 초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수입품 판매가 크게 줄었고, 공산품의 가격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에 한국,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지인을 통해 자신이 사용하는 제품 외, 미얀마에서 인기를 끌만 한 제품을 소포로 받아 페이스북에 판매 페이지를 개설해 일반마트 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다. 일반 공산품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물류 대란 현상으로 공급망 차질이 심화된 것은 미얀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국가로의 수출길이 막힌 품목 중, 수산물은 온라인 플랫폼(주로 페이스북)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그동안 미얀마의 서비스업은 ‘느린 서비스’, ‘느린 대처’로 인식돼왔으나, 최근의 트렌드는 개선된 모습을 보여준다. 채팅을 문의 사항 전달과 빠른 답변 서비스는 고객 피드백 속도 면에서 큰 향상을 이룬 것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거래되는 한국 라면
– 출처 : K-noodle 페이스북 페이지(@knoodlemyanmar2021)
이러한 추세에 대해 미얀마 지인은 “계좌이체가 가능해지고, 보편화되면서 현금의 필요성은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현금을 수중에 가지고 있기 어렵다는 점은 아직도 불안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지인은 “은행에서 현금 인출은 어렵지만, 페이스북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간편 결제 서비스로 구매할 수 있어 다행이다. 기존 마트에서 한정된 물건만 살 수 있었는데, 마트에 들어오지 않는 물품을 정품으로 구매할 채널이 생겨 자주 이용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얀마는 현재도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 가운데 놓여 있다. 그럼에도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적응하고 발전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경제 회복과 함께 발전도 계속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