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공연, '한' 공식 홍보 포스터 – 출처 : 워크센터>
지난 11월 27일 토요일부터 28일 일요일까지, 저녁 6시(현지 시간 기준)에 아르헨티나 국립예술대학(Universidad Nacional de Artes)의 예술 생산 및 학생복지국이 기획한 예술 창작 및 홍보 주간에서 연극 <한(Han)!>이 소개됐다. 이탈리아 예지 그로토프스키-토마스 리처드 워크센터(Jerzy Grotowski, Thmas Richards)의 2021 남미 투어의 여섯 번째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통신원도 이번 공연 소식을 듣고 28일 일요일 6시 극장을 찾았다. 판데믹으로 공연을 볼 기회가 줄어든데다, 평소 아르헨티나에서는 한국인이 연기하는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드문 만큼,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공연 전부터 과연 작품에서 ‘한’이라는 한국적 정서가 어떻게 표현됐을지, 또 한국인들만 이해한다는, 혹은 한국인들조차 이해하기 힘들다는 '한'이라는 정서를 현지인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비가 내리던 일요일 저녁 5시 40분, 라보카의 카파레나 72(Caffarena 72)에는 이미 길에 늘어진 줄이 눈에 띄었다. 평소에도 연극과 뮤지컬을 매우 좋아하는 아르헨티나인이지만,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 시내 중심가에서 꽤 떨어진 곳까지 와 줄을 서서 공연을 보러왔다는 사실이 새삼 감탄스러웠다.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설레는 마음으로 입장을 했다. 사전예약에서 예매 기회를 놓친 시민들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는지, 국립예술대학 학생복지국 측은 무대 앞쪽에 임시 좌석을 마련해 관객의 관람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었다
<무대에서 '한!'을 열연 중인 백현주 씨 – 출처 : 워크센터>
6시 10분,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무대 위쪽엔 스페인어 자막이 뜨기 시작했다. 주연 백현주 씨의 대사가 이어졌고, 관객들은 빠르게 백 씨의 연기와 노래에 빨려들었다. 이후 1시간 동안 관객들은 무대를 홀로 누비며 열연을 펼친 배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번 작품은 백 씨가 자라오며 겪어온 다양한 에피소드를 엮어 한국적 정서 '한'을 새롭게 해석한 것으로, 작품에서 다루는 '한'을 매개로 인간의 내면적 고독과 상처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한국인에게는 다소 무거운 느낌의 '한'이라는 개념이지만, 연극 곳곳에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부당하면서도 코믹한 요소가 녹아난 역설적 에피소드에 관객들은 공연 중간중간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판소리와 굿 등, 강렬한 한국적 요소를 가미한 장면에서는 많은 관중들이 숨죽여 배우의 퍼포먼스를 지켜봤다. 한국어로 진행된 연극임에도 1시간 동안 관중을 장악한 그녀는 공연을 마치고 공식적으로 무대인사를 나왔다. 관객들은 박수로 환호했고 이어 토마스 리차드도 무대에 나와 이번 투어 일정과 취지 그리고 남은 워크숍 활동에 대해서 소개했다.
<공연을 마치고 인사하는 백현주 배우를 박수로 환호하는 관객들 – 출처 : 통신원 촬영>
사실 이번 남미에서 첫선을 보인 <한!>은 공연예술가 백현주 씨의 자전적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워크센터 칠레, 벨기에 출신의 동료들 및 토마스 리차드 감독와 함께 5년간 동고동락하며 극본작업을 한 끝에 만들어진 결과다. 물론,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지원으로 성사될 수 있었던 투어였지만, 워크센터의 남미 출신 멤버들 덕분에 이번 투어가 가능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남미 투어에서는 <한!>을 제외하고도 <Sin Fronters>, <Underground>, <Gravedad> 까지 총 4개의 작품을 더 선보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한!>과 <Sin Frontera>만 관객들에게 소개됐다.
공연 전, 통신원은 개인적으로 ‘한’이라는 정서를 현지인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우려했고, 이에 대해 백현주 씨에게 물었다. 그녀는 “콜롬비아 칼리에서 첫 공연을 앞두고 저도 팀원들도, 자막을 보면서 1시간 내내 진행해야 하는 이번 작품 <한!>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우려했다”면서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어떤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공연을 보기도 하고, 공연이 끝나고는 오묘한 표정으로 찾아와 감사의 인사와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고 답변했다. 이어 “나도 <한>의 의미를 100%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자막을 보면서 연극을 감상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그러나 언어의 장벽을 넘어, 공연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것이 이번 공연의 목표였던 만큼, 개인적으로는 다른 차원의 커뮤니케이션을 했다고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극장에서 통신원이 만난 한 관객은 “오랜만에 굉장히 인상적인 연극을 본 것 같다. 백현주 배우의 연기력과 표정 연기, 그리고 노래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평가한 한편, “아르헨티나 연극이 가진 색과는 너무 다르고, 메시지도 매우 새롭고 참신하다. 한국출신의 연극을 더 볼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