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중에서도 LA는 문화적 다양성에 있어 대적할 만한 다른 도시가 없다.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의 수도 많아 미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한식당이 있고, 식당마다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고자 늘 새로운 음식을 내놓는다. 그렇다 보니 양적 발전이 질적 발전으로까지 이어졌고 새로운 메뉴 개발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용수산에서 발견한 고수 토마토 생채 무침>
LA의 한정식집인 용수산에 갔다가 반찬 가운데 이제껏 맛보지 못한 생채를 발견했다. 뭐가 들어갔다 가만히 살펴봤더니 실란트로(고수)와 토마토를 주재료로 고춧가루, 식초, 소금 등으로 새콤 짭조름한 맛을 낸 것이었다. 토마토야 한국 토종 채소가 아니지만 한국인들의 식탁 안으로 들어온 지 제법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고수의 경우는 아직까지도 낯설어하는 이들이 많은 이국적 허브이다. 사실 이 역시 100퍼센트 진실은 아니다. 고수의 또 다른 이름은 코리앤더인데 고려시대 때 불교와 함께 전해졌다고 추정된다. 코리앤더와 비슷한 발음인 ‘고수’라 불리며 주로 사찰 주변에서 자란다. 어쨌든 ‘고수’라는 이국적 식재료를 사용해 한국 스타일의 생채 나물로 무쳐낸 것이 여간 입맛을 돋우는 게 아니었다.
<고수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들>
LA의 한식당에서는 고수 또는 파슬리처럼 LA의 마켓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향기 가득한 허브를 이용해 한국 스타일의 반찬으로 변신시킨 것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두부를 으깨어 넣어 시금치처럼 양념한 고수 나물>
고수를 데쳐서 꼭 짠 후, 시금치처럼 무친 나물도 LA의 한식당에서 자주 대하는 반찬이다. 거기에다 두부를 살짝 으깨 더하기도 하는데, 영양적으로도 균형 잡힌 반찬이다.
<된장으로 버무린 고수 나물>
또한 기본 양념을 된장으로 해 토속적 맛이 나는 고수 나물도 맛본 적 있다.
<된장국에도 고수 한 줄기를 얹었다>
뿐만 아니라 된장국에 고수를 한 줄기 띄어 향이 국물에 퍼지게 한 것도 별미였다.
<고춧가루와 식초 등으로 맛을 낸 고수 생채>
LA의 한식당에서 오이, 가지, 호박 등 한식에 자주 쓰이는 야채를 놔두고 이처럼 고수를 이용한 국적 불명의 반찬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식당에서 고수 나물을 반찬으로 개발한 주방의 직원은 “최근 그 수가 늘어가는 현지인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고자 고수 나물을 반찬으로 만들어봤다.”고 말한다.
물론 요즘이야 입맛에 있어 열린 마음의 소유자들이 많이 있지만 미국인들 가운데는 자신들이 자주 접했던 식재료만을 고집하는 이들도 적잖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한식 메뉴 가운데 하나가 ‘한국식 치킨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또한 코리안 바비큐 역시 그들이 익히 먹어왔던 각종 육류를 사용한 것인지라 처음 대했을 때 ‘최초의 시도’라도 해봤던 것이고, 일단 한 번 맛보고 나서는 그 맛을 진정으로 즐기게 된 것이 아닐까.
<고수, 토마토를 다져 만든 살사. 히스패닉 요리의 감초 같은 요리다>
고수는 LA의 인구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히스패닉 커뮤니티가 좋아하는 허브이기도 하다. 토마토와 양파, 그리고 고수를 잘게 다져 섞은 살사는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김치처럼 안 끼는 곳이 없는 먹거리이다. 그렇게 친숙한 고수를 한국식 생채 나물, 또는 데쳐서 무친 나물로 접하며 그들은 새로운 먹거리에 접근해가는 것이다. 고수는 또한 동남아 지역에서 애용되는 허브이기도 하다. 베트남 스타일의 쌀국수에도 위에 고수를 듬뿍 얹어 먹곤 하니까.
이미 한식 마니아가 된 이들은 좀더 전통적 방식의, 원조 한식을 맛보고 싶어할 테지만, 아직까지도 한식을 맛볼 기회가 없었던 이들에게는 고수 나물처럼 그들에게 익숙한 식재료를 이용해 한국식 스타일로 요리를 함으로써, 단계별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한식 세계화 정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김치에 쓰이는 고춧가루조차도 16-17세기에 전래된 이국적 재료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기존의 것만을 한식 재료로 고집할 타당한 이유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게 열린 자세로 다른 문화권과 대화를 하며 한식을 발전시켜 나갈 때, 비로소 전 세계인들은 한식에 더 열린 태도를 갖게 되지 않을까. 문화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교류함으로써 더욱 풍성해지는 것임을 21세기의 인류는 하루가 다르게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말이다.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고수>
<깨끗이 씻은 고수. 이대로 쌈으로 먹기도 한다>
※ 사진 출처: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