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고무장갑 끼고 김장 도운 미국인 크리스토퍼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1.11.23

올해 11월 22일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최초로 기념하는 ‘김치의 날(11월 22일)’이다. 지난 8월 23일, 미국 최초로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 김치의 날을 지정해 공식 기념하는 결의안이 처리됐다. 김치의 날 결의안에는 ‘한국이 김치 종주국’이라는 문구와 김치의 역사, 건강식품인 김치의 우수성 등을 알리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로써 캘리포니아주는 올해부터 한국과 함께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축하하게 되었다. 올해 11월 22일에는 LA 한국총영사관 관저에서 ‘제1회 캘리포니아 김치의 날’을 기념하는 김치 담그기 체험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지난 11월 20일(토), LA에서 자동차로 1시간 40분 거리의 배닝(Banning)시에 위치한 금강선원에서는 김장담그기 행사가 열렸다. 승려와 일반인 등 상주하는 7명의 식구들, 그리고 주말에 선원을 찾는 방문객들을 위해 패밀라 김(Pamela Kim) 씨는 낮부터 배추를 절이고 무채를 썰고 마늘을 다지며 김장 준비를 마쳤다. 오늘 절인 배추는 모두 두 박스, 한 박스에 12통 정도가 들어 있으니 총 24통 이상을 담근 셈이다. 예전 한국의 종갓집이었다면 100통 정도는 기본이었겠지만 요즘에야 다른 먹거리도 많고, 식구도 적은지라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을 터이다.

 

일광 시간 절약제가 해제된 후라 5시가 되니 주변이 어둑해진다. 그래도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아 마당에는 밝은 조명 기구까지 걸어두고 절인 배추에 속을 채우는 작업을 계속했다. 한 달 전부터 선원의 식구가 된 크리스토퍼 스탠튼(Christopher Stanton, 26세)은 두 팔 걷어붙이고 앞치마를 입고서 김장을 도왔다.

 

“저는 김치를 정말 좋아해요. 밥과 김치는 너무 좋은 조합이라고 생각해요. 김치는 맛이 있으면서도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 저장하면서 먹을 수 있으니 정말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음식이란 생각입니다. 오늘 패밀라가 김치를 만든다고 하는 말을 듣고 제 평생을 두고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고무장갑을 끼고 김장 담그기에 참가했습니다. 김치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여러 재료를 넣고 버무린 소스를 무 채에 섞은 후 절인 배추 한 잎 한 잎에 바르고 마사지하는 것이 마치 명상하는 과정 같았어요. 우리가 앞으로 나눠 먹을 음식을 함께 만들고, 더불어 일했다는 사실이 가슴 뿌듯했습니다.”

 

크리스토퍼는 이제까지 김치는 한 가지만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배추 김치도 만들고, 무석박지도 만들면서 김치의 열려 있는 자유로움과 창조성을 깊이 이해하게 됐다고.

 

“생선도 넣을 수 있고, 굴도 더할 수 있더군요. 맵기도 더 맵게 또는 덜 맵게 할 수 있고요. 무만으로 석박지도 만들었습니다. 또 몇 포기는 향신료인 초피를 더했는데 정말 독특한 맛이던데요.”

 

그는 오늘 실습한 김치 만드는 방법이 재미있고 실용적인 삶의 기술이라고 표현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즐길 수 있는 음식 만드는 법을 원조 한국인으로부터 배웠으니 김치 아카데미라도 수료한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겉절이와 숙성된 김치 맛의 차이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나왔다.

 

“오늘 막 무친 겉절이는 양념 무채와 배추의 맛이 섞이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그 나름대로 신선한 맛이 있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 발효가 되면 모든 재료가 섞이며 하나의 맛을 만들어내죠. 깊게 발효된 김치가 훨씬 맛이 있어요.”

 

크리스토퍼는 뉴저지에서 자라나 대학에서 조경건축을 공부한 싱어송라이터로 스스로를 가리켜 “새로운 것들을 보고 배우고 싶어하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 표현한다. 그는 최근 어릴 때부터 해왔던 명상 수행을 좀 더 진지하게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그래서 자신이 있는 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 명상센터인지도 모르고 금강선원을 찾았다. 그가 처음 이곳을 찾았던 날, 또 다른 미국인 수행자였던 크리스가 경내를 보여주고 소개해줬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집과 선원을 오가다가 상주 수행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현재 금강선원에 한 달째 기거하며 명상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11월 3일에는 보다 더 수행에 집중하기 위해 삭발식도 치렀다.

 

그는 이곳에서 받은 한국식의 따뜻한 환대에 감동했다고 말한다. “어서 오세요. 식사는 하셨나요?”라며 처음 보는 이에게 점심식사 제안을 하는 이들은 아마도 이 세상에 한국인밖에 없을 것 같단다. 그리고 상주 수행자가 되겠다는 그를 이 공동체는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들은 제 배경, 페이스북 계정,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 같은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제가 얼마나 진정으로 수행을 원하는가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맨 모습의 저를 하나의 인간으로 봐준 것이죠. 그리고 나를 형제로 받아들이고 존경해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저 역시 다시 이 분들을 존경하는 법을 배우게 됐어요. 합장과 절은 서로에 대한 존중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분들의 열림과 받아들임으로 인해 저는 이곳을 ‘홈(Home)’이라 여기게 됐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집이 있어도 집을 집이라 여기지 않잖아요.”

 

그는 현재 미국에서, 특히 실리콘 밸리에서 일고 있는 ‘마인드풀니스 운동(Mindfulness Movement)’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타인의 인스타그램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고 세상과도, 자신과도 분리된 느낌을 갖는 사람들은 패스트푸드와 설탕이 잔뜩 들어간 음식을 먹고,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등 중독적 소비 패턴을 보입니다. 현재를 살지 못하니 강박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고요. 저도 LA에 처음 와서 정신 없이 여기저기를 다녔었어요. 모두 너무 바쁜데 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요. 마인드풀니스 운동의 영향으로 미국인들이 외부로만 향하던 관심을 내면으로 돌리게 된 것을 너무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그는 이곳 금강선원의 드넓고 아름다운 자연을 좋아한다.

 

“평화롭고 고요한 이곳의 환경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해줘요. 혹시 내가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내가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만들죠. 도시 생활에서는 모두가 마음 속으로 방황을 하잖아요. 아무도 땅에 발붙이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미국인들 모두에게 이런 장소가 필요합니다. 끊임없는 생각, 패스트푸드, 엔터테인먼트 중독으로부터 멈추고 떠나 진정으로 존재할 시간이 필요해요. 미국인들 중에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이 제법 되는데, 진정한 항우울제는 바로 금강선원 같은 자연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금강선원에서 거의 처음으로 한국 음식을 맛봤다고 한다.

 

“처음에는 긴장했어요. 왜냐하면 너무 새로운 것이었거든요. 외국 여행 시, 처음 보는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 긴장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처음 한 스푼을 입에 넣으면서 쓸데없는 걱정을 했음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이 맛있었어요. 앞으로 금강선원을 떠난다 해도 매일 한국 음식을 해먹을 것 같아요. 한국 음식은 몸에 좋은 건강식이라 먹고 나면 좋은 에너지가 생겨요.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인슐린 레벨이 올라가면서 감정의 기복도 심해지는 데 반해 한국 음식을 먹으면 몸과 마음이 모두 조화와 균형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단맛의 후식도 지나치지 않아서 좋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디저트는 꿀떡이랍니다.”

 

그는 오전 4시 50분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범종을 울린다. 경내의 나무도 다듬고 장작을 패며 부엌도 치우고 그 외의 시간에는 선원의 뜰을 마음 다해 걷거나 나무 아래 앉아 명상을 한다. 이곳의 다른 한국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쉬는 시간이면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한국어도 공부한다. 그의 전화기를 보니 듀오링고(Duolingo), 인피니트 코리안(Infinite Korean), 드롭스(Drops), 런 코리아(Learn Korea)와 함께 네이버 한영사전(Naver Dictionary)까지 있었다. 한국어 배우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그렇게 영어와 비슷한 단어가 많은지 몰랐어요. 토마토, 파인애플, 바나나는 발음이 매우 비슷해요.” 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통신원과 인터뷰 중인 크리스토퍼 – 출처 : 통신원 촬영>

<통신원과 인터뷰 중인 크리스토퍼 – 출처 : 통신원 촬영>


<고무장갑 끼고 김장을 돕고 있는 크리스토퍼 – 출처 : 통신원 촬영>

<고무장갑 끼고 김장을 돕고 있는 크리스토퍼 – 출처 : 통신원 촬영>


<선원 식구들이 부엌 뒷뜰에서 김장을 담고 있다 . 오른쪽이 패밀라 김씨. - 출처 : 통신원 촬영>

<선원 식구들이 부엌 뒷뜰에서 김장을 담고 있다 . 오른쪽이 패밀라 김씨. - 출처 : 통신원 촬영>


<김장을 위해 절인 배추- 출처 : 통신원 촬영>

<김장을 위해 절인 배추- 출처 : 통신원 촬영>


<무채에 양념을 섞은 것 - 출처 : 통신원 촬영>

<무채에 양념을 섞은 것 - 출처 : 통신원 촬영>


<완성된 김장김치 - 출처 : 통신원 촬영>

<완성된 김장김치 - 출처 : 통신원 촬영>


<완성된 무석박지 - 출처 : 통신원 촬영>

<완성된 무석박지 - 출처 : 통신원 촬영>


<시식을 위해 접시에 담은 김장김치 - 출처 : 통신원 촬영>

<시식을 위해 접시에 담은 김장김치 - 출처 : 통신원 촬영>


<크리스토퍼 전화기에 다운 받은 한국어 배우기 어플리케이션 – 출처 : 크리스토퍼 제공>

<크리스토퍼 전화기에 다운 받은 한국어 배우기 어플리케이션 – 출처 : 크리스토퍼 제공>


박지윤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약력 : 현)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요가 지도자 전) 라디오코리아 ‘저녁으로의 초대’ 진행자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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