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토스카나 피사와 피렌체 중간쯤 되는 곳에 있는 산업 도시 폰테데라(Pontedra)는 볼 것 많고, 먹을 것 많고, 할 것 많은 이탈리아 관광객들은 절대 들르지 않는, 그야말로 특별할 것 없는 인구 3만(2017년 통계 기준)의 작은 도시다. 베스파 스쿠터로 유명한 피아찌오(Piaggio) 본사, 카스텔라니 와인 회사, 아메데이 초콜릿 공장이 있다고는 하지만 관광객보다는 피사나 피렌체, 시에나, 루카 등 근처 더 큰 도시에 일터를 두고 기차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나 은퇴한 노년층이 인구의 대다수를 이룬다.
이 작은 도시, 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읍내’쯤 되는 코르소(Corso)에도 이탈리아 다른 대도시처럼 크리스마스 두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맞이 거리 장식이 한창이다. 시청 'Salis - Convivio di Sapienza' 홀 전시회에서는 붉은 옷을 입은 시인, 단테가 정신적인 고통에 사로잡혀 책 더미에 취해 비틀거리며 서서 본인 죽음 700주년을 회고하는 듯하다. 시청 파사드(facciata) 테라스로 나가 단테 기념 장식 앞에서 사진으로 찍고 코르소로 길을 나서면 곳곳에 재생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차갑고 따뜻한 달팽이, 코끼리 새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현지 시간 11월 6일 오후 6시 반 폰테데라 시청 앞에서는 크리스마스 공공전시 오프닝(Natale ad Arte)이 열렸다. 이번 폰테데라 크리스마스 공공전시를 총감독하는 Teatro del Silenzio의 총 예술감독이자 건축가, 알베르토 바르탈리니(Alberto Bartalini)는 이번 전시를 어둠 뒤에 존재하는 빛, 누구에게나 울림을 주는 보편적 언어로서의 예술, 공간의 확장, 고전과 현대, 영토와 생태라는 단어들로 설명한다. 특히 이번 작품들은 '크랙킹 아트(Cracking Art) 미술 운동'으로 재생 플라스틱으로 만든 형광색의 커다란 동물 조형물들이 시각적 재미 뿐 아니라 생명과 환경의 의미를 일깨운다.
<폰테데라를 장식하고 있는 조형물들 - 출처: 페이스북(@Sei di Pontedera)>
이 형형색색의 동물 조형물들이 폰테데라를 활기차게 만들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달구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면 의미를 알 수 없다, 색깔이 작위적이다 등의 부정적인 여론도 있다. 사실, 폰테데라의 공공예술에 대한 이 같은 부정 여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거대한 아기 사진 마분지 전시, 의미를 알 수 없는 그저 커다랗고 새빨간 고추 동상 등 폰테데라의 공공예술은 종종 폰테데라 시민과 폰테데라 방문객들의 비웃음을 샀었다.
해마다 폰테데라 코르소를 장식하는 작품들이 하도 독특하고 예술적 가치를 논하기 힘든 것들이어서 이제 이 희한한 예술 작품들을 그저 평범하게 지나칠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폰테데라 시민, 좋다 싫다 한마디라도 덧붙이는 사람은 폰테데라 방문객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한편, 인터넷에서는 폰테데라의 이 예술 작품들 선호도를 묻는 설문 조사가 열린지 24시간도 되지 않아 506명의 사람들이 투표해 11월 6일 현재 ‘좋아한다’ 63%, ‘싫어한다’ 28%, ‘관심 없다’ 9%를 얻었다.
공공예술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 공공 전시물들의 예술적 가치는 누가 정하는 것이냐 하는 질문들은 폰테데라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다. 2016년 강남스타일 말춤 조형물은 강남시 예산 약 4억 원을 들여 강남역 한복판에 설치되었지만 정작 세금을 낸 강남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2016년 8월, 미술 인터넷 매체 《아트넷뉴스》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포스코 앞 철제 구조물 ‘꽃이 피는 구조물(flowering structure)-아마벨(Amabel)’을 전 세계에서 가장 미움받는 공공 미술 작품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공공 미술이 예술 작품과 흉물 사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공공예술 사업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시민들의 생활 공간 한가운데 전시되는 예술 작품들이 시민들의 사랑 없이 예술가 혹은 행정가만의 만족으로 세워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폰테데라로 다시 돌아가면, 해마다 일관성 있게 독특하고 난해한 조형물을 전시하는 폰테데라 시의 뚝심있는 선택은 어쩌면 폰테데라 시민들 사이에 ‘이쯤 되면, 이것이 폰테데라의 아이텐터티!’라는 우수갯 소리도 나오게 하는, 일종의 코미디 같다. 폰테데라 지역민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크리스마스 조형물에 대한 댓글들을 살펴보며 이 글을 마친다.
<폰테데라 지역 페이스북 페이지 Sei di Pontedera에 올라온 크리스마스 조형물에 대한 댓글들 - 출처 : 페이스북(@Sei di Pontedera)>
※ 참고자료
《Il Tirreno》 (21. 10. 30.) <La città si anima con i Lego e l’allestimento dedicato a Dante>,
https://iltirreno.gelocal.it/pontedera/cronaca/2021/10/30/news/la-citta-si-anima-con-i-lego-e-l-allestimento-dedicato-a-dante-1.40868460
《La Nazzione》 (21. 10. 24.) <Dante va in Comune per banchettare>,
https://www.lanazione.it/pontedera/cronaca/dante-va-in-comune-per-banchettare-1.6955495
《Trend.it》 (21. 11. 6.) <Animali colorati in città, vi piacciono? Al via il nuovo SONDAGGIO – clicca e vota>,
https://vtrend.it/animali-colorati-in-citta-vi-piacciono-al-via-il-nuovo-sondaggio-clicca-e-vota/?fbclid=IwAR1TGkWLEzVcw6p29PoI_0fdYVyU44ugUlJSqPQl3_X_nEYKJZHoz6tD2W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