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문화정책/이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내 크메르 도굴 유물 제보한 사자(Lion)는 과연 누구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1.11.02

<캄보디아 정부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도굴로 잃어버린 자국 문회재급 유물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 출처 : 크메르타임즈/메트로폴리탄미술관>

<캄보디아 정부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도굴로 잃어버린 자국 문회재급 유물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 출처 : 크메르타임즈/메트로폴리탄미술관>


캄보디아의 유물들은 과거 1863년부터 약 90년간 이어진 프랑스 식민통치시절부터 이후 수십 년간의 긴 내전을 겪는 과정에서수많은 진귀한 문화재급 작품들이 해외로 밀반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당시 프랑스 등 유럽뿐만 아니라 호주미국태국 심지어 일본에까지 상당수의 크메르 조각상들이 흘러 들어갔다문화재 관리 당국자조차 지금까지 밀반출된 문화재급 보물의 수가 대략 얼마인지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고 털어놓을 만큼그동안 이 나라 문화재급 유물들의 해외불법 유출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지금도 캄보디아에서는 문화재 도굴사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바로 프랑스 대문호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1901~1976)그는 21세 되던 1923년 북(北)라오스 고고학 조사단을 따라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속했던 캄보디아에 들어와 고대 앙코르사원의 문화재를 도굴하려다 발각되어 감옥에 수감된 적이 있다그가 도굴을 시도한 반떼이 스레이 사원은 힌두교 시바신에게 헌정된 10세기 사원으로 앙코르 지역에서 유일하게 왕권의 개입 없이 지어진 주요 사원이었다.


<1923년 캄보디아 고대 여신상을 도굴하려다 붙잡힌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말로의 노년 시절 모습. 그는 드골정권하에서 문화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 출처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1923년 캄보디아 고대 여신상을 도굴하려다 붙잡힌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말로의 노년 시절 모습. 그는 드골정권하에서 문화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 출처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그는 이 사건으로 수도 프놈펜으로 압송된 뒤 시내 호텔에 투숙하며 수개월 간이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고현지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훗날 <인간의 조건>이란 작품으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콩코르 문학상을 받는 등 당대 최고의 작가로 알려지게 된 앙드레 말로이지만당시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했던 그는 그저 술과 도박을 좋아하고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흔한 도굴범에 불과했을 뿐이다.

 

당시 캄보디아 국립박물관장이자 캄보디아에서 최초로 태어난 유럽인으로 알려진 조지 그로슬레(George Groslier)는 이 도굴사건 소식을 접한 후 즉각 그의 체포를 주도한 뒤 앙드레 말로를 가리켜 좀도둑’(le petit voleur)이라고 비꼬았다고 한다앙드레 말로는 힌두 데바타 여신상 밀반출 협의로 1심에서 18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50명에 이르는 프랑스 지식인들의 구명운동 덕분에 간신히 석방될 수 있었다하지만 감옥에서 느낀 식민당국에 대한 혐오감으로 열렬한 반식민주의자이자 사회 변혁의 옹호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훗날 젊은 시절자신이 저지른 이 도굴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까지 집필했다이때 쓴 소설의 제목은 <왕도로 가는 길(La Voie royale, 1930)>이다이 책에서 그는 스스로를 행동과 사색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타입의 모험가를 등장시키기도 했다여하튼 이 도굴사건은 그의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된다일종의 주홍글씨가 된 것이다그의 전기를 소개한 위키피디아조차 이 도굴사건에 관해 비교적 상세히 언급되어 있을 정도이며지금까지도 앙드레 말로라는 이름은 적어도 캄보디아 지식인들 사이에선 위대한 프랑스 작가라는 칭호 대신 캄보디아 문화재를 훔치려던 도굴범으로 강하게 인식되고 있다.

 

또한 앙코르와트에서 약 20킬로쯤 떨어진 반테이 스레이 사원에 가면 지금도 캄보디아 현지 가이드들이 약 100년 전 일어난 앙드레 말로의 도굴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훗날 그가 프랑스 드골정권하에서 예술작품과 문화재를 관장하는 문화부 장관까지 지낸 사실을 안다면그가 젊은 시절 저지른 이 문화재 도굴 범죄는 정말 아이러니한 사건으로 역사의 기록에 남지 않을 수 없다.

 

다만따지고 보면 당시 도굴 미수 사건은 앙드레 말로 입장에선 다소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다이 사건이 당시 기준에선 아주 특별한 사건도 범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실제로 당시에는 단순 도굴범뿐만 아니라 당시 수많은 프랑스 고고학자들과 미술 수집가들이 이 같은 도굴 범죄에 가담했었다더욱이 당시 반테이 스레이 사원 지역은 문화재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도 아니었다.

 

이들은 박물관에 판매할 값비싼 유물들을 수집하는 데 혈안이 되어 앙코르제국 일대의 미개척 지역 구석구석을 뒤지며숨겨진 사원들을 찾아다녔다심지어 식민정권 당시 프랑스대사를 비롯한 정부 고관 대작들마저도 자국 정부의 암묵적인 승인 또는 심지어 공식 승인 서류까지 받아 앙코르 지역에서 합법적으로 많은 크메르 유물을 반출해갔다이 중 대부분은 오늘날 프랑스 파리의 기메 동양박물관(Musée national des Arts asiatiques-Guimet)에 보관되어 있다

<134년 만의 귀환. 프랑스 기메 박물관에서 지난 2016년 돌아온 후 잘려나간 몸체와 합쳐져 완전체가 된 하리하루 힌두 석상. 잘렸던 목 자국이 선명하다(국립박물관 소재). - 출처 : 통신원 촬영>

<134년 만의 귀환. 프랑스 기메 박물관에서 지난 2016년 돌아온 후 잘려나간 몸체와 합쳐져 완전체가 된 하리하루 힌두 석상. 잘렸던 목 자국이 선명하다(국립박물관 소재). - 출처 : 통신원 촬영>


이러한 이유로 캄보디아 정부는 그동안 해외로 밀반출된 자국의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지속적인 유물 추적과 관심속에 적지 않은 성과를 일구어내기도 했다이 같은 노력 덕분에 지난 20146월에는 해외에 밀반출된 문화재급 조각 작품들이 여러 점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당시 서방 수집가들이 약탈해 간 1000년 된 힌두교 석상 3점을 돌려받았으며같은 해 10월에는 내전 당시 밀반출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9세기 힌두 조각상과 12~13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두상 조각 역시 노르웨이에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그 외 미국에서도 밀반출되었던 조각 작품들이 기증또는 법적 다툼 끝에 승소해 간신히 돌아오기도 했다당시 돌아온 하리하라 신상은 앞서 언급한 프랑스 파리의 기메 박물관에 보관되어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자’라는 별명의 도굴꾼 자백 덕분에 캄보디아 해외 유물 출처 드러나...

캄보디아 정부는 최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도 자국의 도난된 문화재급 유물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알려진 바에 따르면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도난당한 캄보디아 유물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24(현지 시간 기준)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포응 사코나 캄보디아 문화예술부 장관은 도난당한 크메르 제국 시대의 유물 45점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에 따르면포응 장관이 언급한 해당 유물들은 지난 1970∼1990년대 캄보디아가 내전과 정치적 혼란을 겪던 시기에 도굴꾼들이 의해 국외로 유출한 문화재급 보물들이다이곳에 전시 보관 중인 캄보디아 유물들은 해외 수집가들의 손을 거쳐 이곳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되거나 판매된 것들로 추정된다고 신문은 밝혔다.


<최근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행사에 참석해 연설 중인 포응 사코나 문화예술부 장관. 포응 장관은 자국 문화재가 해외에 밀반출된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유물들의 신속한 자국 반환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최근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행사에 참석해 연설 중인 포응 사코나 문화예술부 장관. 포응 장관은 자국 문화재가 해외에 밀반출된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유물들의 신속한 자국 반환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현지 영자 신문 크메르 타임즈와 가진 최근 인터뷰에서 포응 장관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우리나라 조각품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랍고 실망스럽기까지 하다면서 진실이 곧 드러나고모든 유물들이 (자국에반환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박물관에 도굴된 캄보디아 유물들이 많다는 사실은 캄보디아정부가 일명 '사자'(Lion)라고만 밝힌 전직 도굴꾼의 자백을 통해서다이 도굴꾼은 60대 초반으로 현재 췌장암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과거 자신의 잘못된 소행을 참회하며이 같은 내용을 캄보디아 정부 당국에 고백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그동안 부패한 캄보디아 정부 관리들과 짜고이들을 수십 곳의 도굴 현장으로 직접 안내한 뒤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오래된 사원들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석상과 청동 조각상황금과 보석으로 채워진 도자기 등을 빼돌린 것으로 밝혀졌다그는 도굴한 유물들을 태국 등 해외에 밀반출했다고 털어놨다미국의 유명 미술품 수집가로 알려진 더글러스 래치포드(지난해 작고)와 맨해튼의 유명 미술 갤러리 소유주인 도리스 위너 등이 과거 이 미술관에 기증한 다수의 크메르 조각 작품들이 모두 '사자'라고 불리는 이 도굴꾼이 빼돌린 유물이라고 뉴욕타임즈는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현재 캄보디아 정부는 해당 유물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발견한 남은 조각 작품의 끌로 파낸 자국 등을 서로 비교해 '사자'의 진술을 뒷받침할 만한 각종 물리적 증거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또 현재까지 확인된 45점 유물 중 33점이 '사자'라는 별명을 가진 도굴꾼이 밀반출한 유물로 알려져 졌다그외에도 캄보디아 정부는 지난 1970∼2000년 내전 등으로 인해 혼란했던 시대국외로 밀반출돼 현재 이 미술관내 보관 전시중인 나머지 150여점의 크메르 작품들의 출처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미 연방검찰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계자들과 만나 의혹이 제기된 캄보디아 유물에 대한 출처를 다시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다만 도굴된 캄보디아 유물의 국내 반환은 양국 간 협상과 조율이 필요한 문제로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한편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외에 미국 덴버 미술관도 캄보디아 정부와 협의한 뒤 래치포드와 연관된 고대 크메르 제국 시대 유물 4점의 소유권을 포기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크메르 시대 조각상 작품들의 모습 - 출처 : 통신원 촬영>

<캄보디아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크메르 시대 조각상 작품들의 모습 - 출처 : 통신원 촬영>


박정연

  • 성명 : 박정연[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캄보디아/프놈펜 통신원]
  • 약력 : 현) 라이프 플라자 캄보디아 뉴스 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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