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인터뷰] 스위스 한불 작가로 알려진 엘리자 수아 뒤사팽을 만나다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1.10.26

몇 년 전 통신원은 지인으로부터 “스위스의 젊은 작가가 한국을 소재로 소설을 집필했다”며 “그 책은 프랑스 요리인 부댕(Boudin)과 유사한, 오징어 속에 여러 가지 재료들을 넣어 먹는 한국 요리를 소개했다”며 그 맛에 대해 물어왔다. 그 요리는 오징어순대였다. 오징어순대를 맛보지 못한 자로서 딱히 설명할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과 멋쩍음이 동시에 밀려왔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한국을 소재로 글을 썼다는’ 작가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속초에서의 겨울', '파친코 구슬',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 세 편의 소설을 출간한 한불 작가 엘리자 수아 뒤사팽(Elisa Shua Dusapin) - 출처 : 통신원 촬영>

<'속초에서의 겨울', '파친코 구슬',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 세 편의 소설을 출간한 한불 작가 엘리자 수아 뒤사팽(Elisa Shua Dusapin) - 출처 : 통신원 촬영>


엘리자 수아 뒤사팽(Elisa Shua Dusapin), 한국에서는 2016년 『속초에서의 겨울(Hiver à Sokcho)』로 이름을 알리게 된 한불 작가이다. 스위스와 프랑스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젊은 여류 작가로 각종 도서 페스티벌을 비롯해 유명 작가들을 초청하는 자리에서 그녀의 이름은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2016년, 23세의 어린 나이에 첫 소설 『속초에서의 겨울』을 발표하게 되고, 명성 높은 문학상인 로버트 발저(Robert Walser)상을 거머쥐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 소설은 유럽과 한국의 문화를 넘나드는 작품으로, 바다와 육지가 맞닿은 속초가 가진 지역적 특성과 남북한의 경계선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피를 나눠 가진 젊은 혼혈 여성이 갖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그녀와 어머니와의 관계, 프랑스 만화(BD)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이성, 동경 혹은 호기심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 묘사와 이방인과의 관계에서 소통의 한계와 미묘한 감정 묘사를 중심으로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이 소설은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명망 있는 로버트 빌저, 알파(Alpha), 레진 드포르주(Régine-Deforges), 리벨레이션 SGDL(Revelation SGDL) 등 7개의 상을 수상한 한편, 독일어, 한국어, 영어, 이탈리아어, 포루투갈 어 등 현재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세 번째 소설,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 - 출처 : 북레시피>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세 번째 소설,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 - 출처 : 북레시피>


2018년 그녀의 두 번째 소설 『파친코 구슬』은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젊은 여대생의 이야기를 그렸다. 전쟁 당시 일본으로 넘어가 이민자가 된 외조부모의 방황하는 정체성, 일본인이지만 일본에 정착하지 못한 채 딸을 어떻게든 스위스로 보내려는 일본 여성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면서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얼마 전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란 신간이 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유럽에서는 거의 ‘대륙의 종착지’라고 볼 수 있는, 그리고 한국과 유럽의 대륙이 연결된 블라디보스토크란 지역에서 펼쳐지는 서커스단의 공중 곡예 ‘러시안 바’라는 위태로운 서커스 종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곡예 단원들 사이의 서로에 대한 신뢰, 유대, 친밀함과 동시에 순식간에 멀어지는 감정들은 러시안 바 공연과 맞물리면서 어쩌면 인간관계에서의 감정의 거리를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래는 통엘리자 수아 뒤사팽 작가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1992년 프랑스에서 프랑스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스위스 쥐라 포렌트뤼(Porrentruy) 지역에 7세부터 살고 있어요. 외조부모님들이 1970년대에 아펜젤레 트로겐(Trogen)에 있는 페스탈로치 학교에서 일하시게 되면서 스위스로 이주하게 되셨고 어머니는 당시 8세였습니다.

 

2014년 스위스 칸톤 베른의 비엔(Bienne, Biel) 예술 학교에서 문학 학사 공부를 마친 뒤 코미디언,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2016년 로잔 대학에서 현대 프랑스어 석사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당시 『속초에서의 겨울』을 출간하게 되었는데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못한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문화 장학금을 지원받아 한국, 미국, 일본 등 여러 곳에서 거주하다 일 년 좀 넘게 다시 스위스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세 권의 책을 출간하고 4개의 공연도 하고 현재는 시네마 부문에서도 활동하고 있어요. 요즘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요청이 오면 연극 작품을 쓰고 공연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주요 업무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책을 쓰는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어떻게 작가가 되셨어요?

어릴 때부터 책을 굉장히 좋아해서 많이 읽었지만 작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연극과 코미디언 쪽에 관심을 가졌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집필한 첫 작품인 『속초에서의 겨울』이 작가가 되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생각해요.

 

첫 소설을 한국을 소재로 쓰셨는데, 계기가 있을까요?

저희 가족은 제가 어릴 적부터 굉장히 한국문화와 가까웠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한국문화, 한국 음식 등 한국에 대한 많은 것을 접할 수 있었어요, 어릴 때는 한국어를 불어보다 잘했는데 학교 교육이 시작되면서 덜 쓰게 됐습니다. 13살이 되어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친숙했던 문화들을 실제로 경험해보니 사춘기 나이에 굉장히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 후 매년 한국을 방문하면서 여행 경험을 소재로 몇몇 장면, 장소들을 중심으로 한국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를 위한 글이었는데 저의 정체성(identié)을 찾기 위한 작업이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 고등학교 졸업작품으로 제 글들을 모아 소설 형식으로 제출하게 되었어요. 그 후 시간이 흘러 로잔 대학에 석사 과정에 있는데, 고등학교 선생님이 제 졸업작품을 책으로 출판해 보면 어떨지 조언해주셔서 출판사에 보내게 되었고 결국 첫 소설이 출간되었어요.

 

첫 소설의 배경으로 속초를 설정한 이유는?

한국에 여러 번 방문했고 여러 곳을 여행했어요. 처음에는 부산을 배경으로 설정했는데 바닷가 항구 도시를 상상했거든요. 수산 시장이 있고 바다 옆에 위치한 점이 맘에 들었어요.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너무 큰 도시고 현대적이면서 분주하고 뭔가 안 맞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가을에 설악산과 속초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느낌이 좋았어요. 그래서 겨울 방학 동안 다시 방문하게 되었고 속초가 갖는 지역적 특성과 함께, 차가운 겨울바람이 더해 공허하고 쓸쓸함, 외로운 바닷가 작은 항구 도시가 저의 마음에 각인되었고 제 글과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몇 주간 머무르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한국문화에 대한 스위스인들의 관심 등, 그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2000년대 중반 이후 많이 변화된 거 같아요. 특히 한국 영화는 독자적인 위치에 있다고 봅니다. 많은 젊은 세대들이 한국의 영화감독 한, 두 명의 이름은 알고 있고 요즘 학교에 가보면 아이들은 케이팝, 그룹, 한국 드라마 등 저도 잘 모르는 작품들도 많이 알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한국 레스토랑의 인기 역시 날로 치솟는 걸 한국 레스토랑이 증가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을듯해요. 저는 6, 7년 전 한국어를 배워볼 욕심으로 스위스에서 한국어 강의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어요. 프랑스의 경우도 소수의 대학에서 한국어 강의가 제공되고 있었지만 작은 규모 수준이었는데 현재는 규모도 커지고 학생 수도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에 대한 관심의 증가를 일상에서 많이 느낄 수 있어요.

 

신간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 소설을 소개해 주세요. 특별히 서커스를 주제로 한 계기가 있을까요?

한국 방문을 계획했다가 유럽에서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기차 여행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여행 도중 모스크바에서 우연히 어릴 적 친구를 만나게 돼요. 캐나다인인 그 친구는 스위스에서는 잘 알려진 서커스 단원의 가족으로, 당시 포렌트뤼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서커스 학교가 있었고 거기에서 만나게 된 친구죠, 그 친구는 현재 러시안 바 공연에서 직접 바를 드는 곡예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제가 다시 만났을 당시, 모스크바세계챔피언대회 참가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 친구와 대화하면서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차 여행을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다음 해에 다시 연락해서 부다페스트로 이동한 단원들과 함께 약 두 달간 생활하면서 제가 경험하고 느낀 점들을 책 속에 많이 담았어요, 현재 러시아어로도 번역 중에 있습니다.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뭐가 있나요? 혹시 오징어 순대인가요?

김치찌개를 좋아하지만, 비빔밥, 육개장, 닭갈비, 짜장면, 잡채 등 말할 수 없이 많은 한국 음식들을 좋아해요, 매콤한 것도 많이 좋아하고요. 물론 직접 한국 요리하는 것도 즐겨요. 오징어 순대는 제 글의 소재를 찾다가 발견하게 되었는데 속초 수산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과 대화하면서 영감도 많이 받았고, 그분이 고맙게도 여러 번 가져다주셔서 많이 맛보았어요.

 

한국어 구사는 어느 정도 하시나요?

어릴 때 한국어를 집에서 많이 썼는데 학교생활이 시작되면서는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외조부모님들께서 많이 실망하셨던 것 같아요. 알아듣긴 하는데 표현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거든요. 독일어를 하시니 보통 한국어와 독일어를 섞어서 대화해요. 2012년에 한국 연세대학교에서 6개월간 한국어 수업을 받았어요, 한국에 가면 늘 그렇듯, 며칠 지나면 다시 한국어로 얘기하고 있어요.

 

한국을 소재로 책을 출간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부모님들도 많이 기뻐하셨지만 아마도 외조부모님들이 가장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우셨을 듯해요. 제가 한국어를 많이 잊어버려서 실망하셨는데, 한국을 소재로 책을 출판하고 가족 내에서 문화 계승이라고나 할까. 그런 이유로 흡족해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은?

네 번째 소설 역시 글쓰기 마무리 작업에 있습니다. 보통 책을 쓰는 기간에는 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데 세 번째 소설 출간과 함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활동을 많이 못 한 까닭에 현재 여러 계획들이 함께 짜여 있네요.



박소영

  • 성명 : 박소영[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위스/프리부르 통신원]
  • 약력 : 현) EBS 스위스 글로벌 리포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