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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이슈] '아랍의 봄' 기다려온 터키 내 시리아 난민들이 기댈 곳은
구분
사회
출처
KOFICE
작성일
2021.09.30

아랍의 봄, 미완의 혁명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의 작은 도시에서 채소 노점상을 하던 26살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부패 공무원의 횡포에 항의해 분신했다. 사회에 이제 막 발을 디뎠을 어린 청년의 죽음을 목격한 시민들은 길거리로 나가 부패 정권에 분노해 시위를 벌였다. 민주주의를 갈망해서 촉발된 시민들의 시위는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민중들의 거센 혁명으로까지 발전해 부패 지도자들을 몰아내는 데까지 성공했다. 빈곤과 실업, 독재 정권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시위는 삽시간 튀니지 전역으로 번졌고, 이후에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튀니지 국경을 넘었다. 독재 정권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튀니지 국민들의 분노는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바레인, 예멘 등 중동을 너머 북아프리카 전역까지 도달했다. 아랍의 봄 혁명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아랍의 봄을 기다렸던 사람들은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독재 정권이 낳은 또 다른 압제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집트는 군부 권위주의로 다시 돌아갔고 시리아와 리비아, 예멘은 내전을 겪으면서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아랍의 봄 혁명의 발원지인 튀니지는 어떨까. 튀니지는 아랍의 봄을 기다렸던 나라들 중 유일하게 민주화를 이루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더 나은 삶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튀니지 국민들은 아랍의 봄 혁명을 겪은 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달라진 건 없다고 말한다.

 

영국 ≪가디언≫지가 ‘유고브(YouGov)기관’이 실시한 설문 결과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튀니지 국민들 중 ‘10년 전보다 삶이 나아졌다’고 응답한 사람은 27%에 불과한 반면, 빈부격차가 심해졌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84%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민주화로 인해 독재 정권 때보다 자유로워졌지만, 국민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10년 전보다 더 비참함과 환멸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2010년 이후 튀니지의 경제 성장은 절반 이상 감소했고, 청년 실업과 치솟는 물가는 현재의 삶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고 한다.

 

아랍의 봄을 갈망했던 이들은 지난 십 년 동안 각자 다른 국가와 다른 상황에서 투쟁해 왔다. 그러나 이들의 투쟁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는 ‘난민’이란 두 글자가 새겨진 똑같은 옷을 입고서 자신들의 국가를 떠나야만 했다. 이렇게 분쟁과 폭력, 박해로 인해 강제 이주된 사람들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2021년 올해는 20년 간 아프간에서 주둔하던 미군이 완전 철수를 이행하면서 탈레반의 공포 정치를 피해 탈출해 나온 아프간 난민들이 또 크게 증가했다.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난민 문제에 전 세계가 큰 고민에 빠졌다. 다급해진 건 중동과 가까운 유럽 연합 국가들이다.

 

인도주의적인 차원으로 생각해 보면, 폭력과 독재로 고통을 받다가 자국을 떠나온 난민들은 보호해 줘야 마땅하다. 하지만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강도, 강간, 테러 등 범죄의 주요 원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있는 난민들을 흔쾌히 환영하고 받아주는 나라는 몇 국가가 되지 못한다. 2020년 유엔난민기구(UNHCR)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한 국가는 터키인 걸로 나타났다. 터키는 지난 7년 동안 중단 없이 난민을 받아들여서 현재는 시리아 난민 370만 명과 30만~50만 명의 아프간 난민을 수용해 왔다. 터키의 뒤를 이어 파키스탄(140만 명)과 우간다(113만 명)가 순위에 올랐고, 유럽에서는 독일(102만 명)이 네 번째로 유일하게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자국의 이해와 이익으로 난민 문제 풀려 하는 국제사회그리고 터키의 입장

유럽연합(EU)은 이번 아프간 난민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도 터키가 지난 2015년 유럽 난민 협정 때와 같이 난민들이 유럽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방파제 역할을 해 주길 바랐다. 그러나 2021년 아프간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한 터키의 입장은 단호하다. “유럽연합(EU)의 접근 방식이 돈을 줄 테니 난민들을 막아달라는 식이라면 협조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보다 실질적인 협력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당시 EU는 터키가 난민들의 유럽행을 차단해 주는 대가로 총 60억 유로(약 8조원)를 터키에 지원하고 터키의 EU 가입 협상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약속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EU가 약속한 60억 유로 가운데 47억 유로는 EU가 지정한 사업에 배정했고, 자금 이전도 터키 정부가 아닌 터키 내 난민 지원 기구를 통해 자금을 집행했다. 여기에 터키 국민의 EU 무비자 입국과 터키의 EU 가입 협상도 사실상 좌초된 상황이다.

 

터키가 기존과 달리 아프간 난민들에 대해서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데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올해 발생한 최악의 산불과 홍수로 재난을 겪은 자국민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난민 수용 문제는 국제 사회에서 각 국가들의 이익과 이해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국가가 독자적으로 나서서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통신원은 난민 문제에 대한 끝없는 논쟁을 다시 되풀이하여 언급하고 싶지 않다. 대신 터키가 수용한 난민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많은 수를 받아들인 시리아 난민들의 일상의 단면들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그래서 동 리포트가 난민들의 상황에 대해 어느 한 국가의 입장이나 이해에 맞춰 해석되기 보다는 이들의 일상의 모습을 살펴보고 난민에 대한 독자들의 시야를 조금 더 넓혀주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아랍의 봄과 양상이 달랐던 ‘시리아의 봄

2011년 봄,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아랍의 봄’이 불고 있었을 때, 유독 한 국가에서는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시리아다. 2011년 3월 반정부 시위로 시작된 시리아의 ‘아랍의 봄’은 내전으로 발전되어 지금도 계속 진행형이다. 그 시작은 일상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이었다. 2011년 3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100㎞ 정도 떨어진 작은 농촌 마을 ‘다라’에서 아이들의 낙서가 발견됐다. ‘아사드 정권은 무너질 것’이라는 반정부 구호였다. 아이들의 낙서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낙서를 한 15명의 어린이들을 구금하고 고문하는 등 가혹 행위를 가했다.

 

이에 분노한 민중은 거리로 나가 반정부 시위 운동을 일으키며 민주화를 외쳤다. 40년 동안 아사드 가문의 장기 독재가 계속됐지만 상황이 악화된 데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1971년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이 집권해서 30년간 통치했고, 그가 죽은 뒤 2000년부터는 그의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이어받아 시리아를 통치하고 있다. 처음엔 ‘시리아의 봄’도 민주적 정권을 외치는 민중들의 목소리로 시작됐다. 그러나 민주화를 갈망했던 민중들의 하나의 외침이 지금의 내전으로 양상이 분산이 된 데는 시리아를 둘러싸고 있는 종파적·지리적·종족적 다양성으로 갈등이 오랜 기간 축적돼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터키와 러시아까지 개입되어 있어 ‘시리아의 봄’은 중동의 어느 국가들의 상황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있다. 시리아 민중들도 아랍의 봄을 기다렸던 중동의 여느 국가들처럼 같은 바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보는 눈앞에서 사람이 죽고, 또 죽이는 공포의 내전을 하루하루를 견디다가 결국엔 난민의 옷을 입어야만 했다.


<난민 형제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난민 형제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난민 형제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시리아 난민은 터키가 수용한 난민들 가운데 90%를 차지한다. 2021년 현재, 370만 명 정도이다. 이들 중 10세 미만은 107만 4,059명으로, 터키에 거주하고 있는 전체 시리아 난민 인구의 28.9%를 차지한다. 그 다음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을 가진 15세~24세 연령대는 75만 7,609명으로 20.4%에 해당된다. 터키에 거주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의 평균 나이는 22.2세로 매우 낮은 편이다. 통신원은 터키에 거주하고 있는 전체 시리아 난민들 중 특별히 이들 연령대에 주목을 하고자 한다. 이들은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로 난민이 된 이후의 상황에 대해 분석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에서 거주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의 다양한 모습

난민들은 터키 정부가 지정해 준 구역에서만 거주하게 된다. 그 때문에 난민들이 거주하는 구역은 다른 지역들에 비해 범죄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상황이 위험할 수가 있기 때문에 통신원은 시리아어가 가능한 터키인 한 명을 대동해서 난민촌 안으로 들어갔다. 함께 동행한 터키인이 시리아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준비해 가면 좋다고 해서 초콜릿과 과자를 준비했다. 통신원이 시리아 난민들이 모여 사는 구역 안으로 들어서자, 아주 어린 꼬마 아이들부터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이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통신원이 준비한 과자 상자를 보고서였다. 과자와 초콜릿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시리아 난민 아이들이 초콜릿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시리아 난민 아이들이 초콜릿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잠시 뒤, 터키어 구사가 조금 가능한 시리아 청년 한 명이 나왔다. 통신원은 시리아 난민들이 거주하는 곳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시리아 난민 청년은 통신원에게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곳이라고 하면서 몇 군데를 보여줬다. 가장 먼저 보여준 곳은 파란색 천막 텐트가 여러 개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중년의 한 남성이 나와 여덟 명의 어린 아이들이 자신의 자녀라고 하면서 소개해 줬다. 아내는 밖에 나가 일하고 있어서 자신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고 한다.


<시리아 청년이 난민들이 모여서 사는 곳을 안내해 주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시리아 청년이 난민들이 모여서 사는 곳을 안내해 주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시리아 청년은 통신원에게 두 곳을 더 보여줬다. 하나는 먼저 봤던 천막보다는 조금 나아 보이는 텐트가 여럿 있는 곳이었고, 또 한 곳은 깔끔한 현대식 건물이었다. 통신원은 시리아 난민들이 저마다 사는 곳 환경이 많이 다른 모습에 조금은 낯선 느낌이 들었다. ‘난민’에 대해 흔히 가지고 있는 선이해는 전쟁 피난민이나 고아, 불법 체류자와 같은 이미지들이다. 그러니 이들도 어려운 상황은 마찬가지일 텐데, 난민의 상황임에도 깔끔한 이층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모습에 선이해가 무너졌다.


<터키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시리아 난민 - 출처: 통신원 촬영>

<터키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시리아 난민 - 출처: 통신원 촬영>


통신원은 몇 해 전에 이스탄불 지역에서 시리아 전통 문양으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시리아 예술인을 만나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다. 그 역시 터키에서는 난민의 신분이었지만, 터키어와 영어, 프랑스어까지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을 정도로 자국에서는 소위 엘리트층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다. 그런데 시리아에 내전이 발발하면서 부모와 여동생이 모두 무장단체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자신이 보는 눈앞에서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은 시리아 예술인은 이젠 자기 혼자만 남았다면서 날마다 사는 게 공포라고 말했다.


<시리아 난민 어린이들을 위해 무료식사를 제공해 주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시리아 난민 어린이들을 위해 무료식사를 제공해 주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시리아 난민 어린이들을 위해 무료식사를 제공해 주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오늘도 터키에서는 370만 명의 시리아인들이 ‘난민’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 내전이 발발하기 전에는 이들 모두도 각자의 꿈을 가지고 살던 소중한 이름들이 있었다. 그러나 내전이 이들의 모든 이름들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 그래서 지금 이들은 터키에서 난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여권과 거주 허가증 어디에도 시리아에서 가지고 있던 이름은 없고, ‘난민’이란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독재와 폭력, 전쟁이 싫어서 자국마저 포기하고 나와야만 했던 이들인데, 시리아 난민들이 기댈 곳은 그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형식적인 바람일지라도 내전이 이제는 종식되어 ‘시리아의 봄’이 그 땅에 하루 속히 불어와 주기를 기다려 본다.

 

※ 참고자료

《머니투데이》 (18. 10. 22.) <’활성단층’ 시리아를 건드린 ‘아랍의 봄’>,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8101916085055334

《연합뉴스》 (20.03.13.) <10년차 접어든 시리아 내전…38만명 사망·1천100만명 피란>, https://www.yna.co.kr/view/AKR20200313007800108

《MULTECILER》 (21.09.20.) <>, https://multeciler.org.tr/turkiyedeki-suriyeli-sayisi/

《Amerikaninsesi》 (21. 6. 18.) <Türkiye Mülteci Kabulünde Son Yedi Yıldır Dünya Zirvesinde>, https://www.amerikaninsesi.com/a/turkiye-multeci-kabulunde-son-yedi-yildir-dunya-zirvesinde/5934419.html

《Euronews》 (20. 2. 28.) <Dünyada en fazla mülteciye ev sahipliği yapan ülke Türkiye, ilk 10'da Avrupa'dan sadece Almanya var>, https://tr.euronews.com/2020/02/28/dunyada-en-fazla-multeciye-ev-sahipligi-yapan-ulke-turkiye-ilk-10-da-avrupa-sadece-almanya


임병인

  • 성명 : 임병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터키/이스탄불 통신원]
  • 약력 : 현) YTN Wold 리포터 전) 해외문화홍보원 대한민국 바로 알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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