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문화정책/이슈] 캄보디아 영화, 베니스영화제에서 오리종티 부문 최우수배우상 수상 영광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1.09.28

캄보디아 영화계가 큰 경사를 맞이했다. 가장 권위 있는 국제영화제로 손꼽히는 제9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서 베스트배우상을 차지한 것이다. 지난 9월 11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영화 〈화이트 빌딩〉(2020)을 연출한 네응 카빅 감독이 주연을 맡은 남자 배우 쯔은 피셋(Chhun Piseth, 이하 피셋)을 대신해 최우수배우상을 받았다.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배우상을 차지한 추은 피셋을 대신해 상을 받고 있는 네응 카빅 감독 - 출처 : AFP/크메르타임즈>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배우상을 차지한 추은 피셋을 대신해 상을 받고 있는 네응 카빅 감독 - 출처 : AFP/크메르타임즈>


소식을 접한 캄보디아영화계는 물론이고, 코로나19에 지친 현지 영화 팬들 역시 오랜 가뭄 속 단비 같은 뉴스에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크메르타임즈》를 비롯한 현지 주요언론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영화제에서 자국영화가 상을 받은 사실을 높이 평가하며, 문화면에 대서특필했다. 한 현지 언론은 “지난 1985년 영화 〈킬링필드〉(1984, 감독 롤랑조페)로 제57회 미국아카데미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행 S.응고르(1940~1966)의 업적을 뛰어넘는 캄보디아영화계 최고의 경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현지 영화계 관계자들은 이번 수상소식이 더 기쁘고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이 영화가 과거 영화들처럼 외국인의 시선에서 외국인감독이 만든 반쪽짜리(?) 영화가 아닌, 캄보디아 출신 제작자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100% 캄보디아산 영화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놈펜 철거예정 지역 빈민아파트에 사는 캄보디아 청년 주인공 삼낭의 삶과 불안한 미래를 소재로 다룬 영화,‘화이트 빌딩’ 중 한 장면 - 출처 : Ant Archives>

<프놈펜 철거예정 지역 빈민아파트에 사는 캄보디아 청년 주인공 삼낭의 삶과 불안한 미래를 소재로 다룬 영화,‘화이트 빌딩’ 중 한 장면 - 출처 : Ant Archives>


영화 〈화이트빌딩〉은 제66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수상한 바 있는 명감독 리피 판 감독의 뒤를 이어 21세기 캄보디아 영화계를 이끌 것으로 촉망받고 있는 신예감독 네응 카빅이 만든 첫 장편 영화다. 영화는 철거를 앞둔 프놈펜 빈민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삼랑과 가족, 친구들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지 청년들의 고뇌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실제 지난 2017년 철거된 낡고 오래된 이 아파트는 영화를 제작한 카빅 감독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최근 통신원은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부문 경쟁부문에 캄보디아 영화가 올랐다는 소식과 더불어 영화에 관 이야기를 다룬 바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제목: 캄보디아 영화 최초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후보에 오른 <화이트빌딩>).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배우상을 받은 추은 피셋(Chhun Piseth).이 영화는 놀랍게도 그의 첫 데뷔작품이기도 하다. - 출처 : Ant Archives>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배우상을 받은 추은 피셋(Chhun Piseth).이 영화는 놀랍게도 그의 첫 데뷔작품이기도 하다. - 출처 : Ant Archives>


한편, 지난 9월 1일부터 11일까지 열린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배우상을 차지한 추은 피셋은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카빅 감독으로부터 수상 소식을 듣고, 행복감을 넘어 흥분에 들떠 수상 사실 자체를 믿기조차 힘들었다고 털어났다. 그는 “행복 그 이상이었다. 너무 기쁘고 놀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상은 나 자신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영광이지만, 나 한 명이 받은 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스태프가 함께 일했고, 이 영화 한 편을 만들어냈다. 카빅 감독을 비롯한 모든 영화 제작 스태프들에게 이 상을 바치고 싶다”며 겸손해했다.

 

영화 〈화이트빌딩〉에서 주인공 삼낭 역을 맡은 피셋은 현지 영화 팬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상 무명에 가까운 신인 배우다. 그가 연기를 시작한 것은 놀랍게도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지난 달 캄보디아 영화작품이 오리종티 부문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는 부산국제영화제(BIFF) 및 캄보디아국제영화제(CIFF) 프로그래머로도 활동 중이며, 또한 이 영화제작에도 참여한 바 있는 박성호 프로그래머는 앞서 전화인터뷰에서 배우 캐스팅과 관련해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당시 박 프로그래머는 피셋을 비롯한 거의 모든 배우들은 캐스팅 과정에서 과거 배우경력이 거의 없는 신인 위주로 뽑았다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캄보디아는 대학 전공에 연극영화학과가 아직 없다. 기존 배우들 가운데 상당수는 체계적인 연기 수업을 받지 못해 잘못된 연기 습관을 가진 경우가 적지 않다. 감독이 요구하는 연기를 지도하는 게 초보 배우들에 비해 오히려 더 어려울 때가 많다. 반면, 신인 배우들은 배우려는 자세가 더 뛰어나고, 일부 재능있는 배우들은 짧은 교육기간에도 불구 발성이나 표정 등 기대 이상의 놀라운 잠재적 재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박성호 프로그래머는 이번에 최우수 배우상을 차지한 피셋 역시 배우 경력이 전혀 없는, 그저 가능성 있는 배우지망생이었지만, 그런 그를 카빅 감독이 매의 눈으로 연기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고, 직접 캐스팅한 후 연기지도까지 하며 그를 주연배우로 키웠다고 말했다.


<영화 ‘화이트 빌딩’의 주무대이자 주인공 삼낭이 사는 철거 예정 지역 빈민 아파트의 모습. 철거 전인 2017년 3월 촬영 - 출처 : 통신원 촬영>

<영화 ‘화이트 빌딩’의 주무대이자 주인공 삼낭이 사는 철거 예정 지역 빈민 아파트의 모습. 철거 전인 2017년 3월 촬영 - 출처 : 통신원 촬영>


어처럼 카빅 감독 눈에 띄어 주연배우로 발탁되기 직전까지 피셋의 직업은 놀랍게도 댄서였다. 현지 사회에서 평가하는 댄서라는 직업에 대한 낮은 평가와 무관하게, 현지 언론에 비쳐진 피셋은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칭할 만큼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득 찬 모습이다. 하지만, 그 역시 여느 예술가들처럼 댄서가 되겠다는 결심에 대해 가족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댄서라는 직업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만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직업이 되지 못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는 카빅 감독과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우선 두 사람 모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빈부격차를 느끼며 공평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왔다. 또한 예술가의 길을 걷겠다고 했지만, 부모와 가족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경험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비록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우수한 두뇌 덕분에 좋은 대학을 나온 엘리트 출신이기도 하다. 카빅 감독은 프놈펜 소재 리콴유대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했고, 삐셋은 캄보디아 공학영재들이 다닌다는 캄보디아국립기술대학교를 졸업했으며, 프놈펜국제대학교에서 영어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이 정도 스펙이면, 본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괜찮은 현지 대기업에 취직해 결혼하여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철저히 배고픈 예술가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고, 결국 영화인으로서 각자의 꿈을 이루어냈다. 이렇듯 비슷한 나이 또래에, 삶에서도 공통점이 많은 두 사람은 철거민들의 고통을 담은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난한 자들이 겪는 삶의 고통과 청년들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러한 공감대 형성이 피셋이 연기를 배우는데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시청의 본격적인 철거 작업을 앞두고 주민들이 모두 떠난 가운데 문이 굳게 닫힌 화이트 빌딩 아파트 계단의 썰렁한 모습 - 출처 : 통신원 촬영>

<시청의 본격적인 철거 작업을 앞두고 주민들이 모두 떠난 가운데 문이 굳게 닫힌 화이트 빌딩 아파트 계단의 썰렁한 모습 - 출처 : 통신원 촬영>


수상의 기쁨 소식을 뒤로 한 채 배우 피셋은 카빅 감독이 준비 중인 두 번째 영화에도 주연으로 다시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확정된 영화 제목은 ‘더 브로큰 로드(The Broken Road)’이다. 자신이 직접 키운 배우와 함께 수상의 영광을 함께 한 카빅 감독은 현지 언론 《프놈펜 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피셋 같은 좋은 배우들을 더 많이 발굴하고 자국의 영화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영화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여전히 영화에 대한 지원이 많이 부족해 영화제작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가 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또한 캄보디아영화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투자자들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금년 12월 프랑스에서 먼저 개봉될 에정인 영화 ‘화이트 빌딩’의 공식 포스터 - 출처 : UNIFRANCE 프랑스 국제영화공급사 공식 홈페이지><금년 12월 프랑스에서 먼저 개봉될 에정인 영화 ‘화이트 빌딩’의 공식 포스터 - 출처 : UNIFRANCE 프랑스 국제영화공급사 공식 홈페이지>


영화 〈화이트 빌딩〉은 금년 12월 8일 프랑스에서 첫 개봉될 예정이다. 하지만, 베니스국제영화제 수상을 기념하는 캄보디아 현지 영화 팬들을 위한 공식 축하 시사회는 아쉽게도 구체적인 계획과 일정은 잡혀 있지 않다고 한다. 캄보디아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 수개월째 일반영화관을 비롯해 15명 이상의 모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계 관계자는 현재 수준의 코로나 방역체계와 기준이 다소 완화되는 금년 말이나 내년 초쯤 이 영화의 국제영화제 수상을 축하하는 공식 프리미어 시사회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현지 영화계 관계자들은 영화 〈화이트 빌딩〉이 내년 4월 열리는 런던 영화제(BFI)뿐만 아니라, 캄보디아를 대표해 제94회 미국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인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출품,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게 될 것으로 미리 예상하고 있다. 영화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영화 <화이트빌딩> 공식 페이스북(WhiteBuildingFil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7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 화이트 빌딩의 철거 직전 모습.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청년이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가고 있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지난 2017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 화이트 빌딩의 철거 직전 모습.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청년이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가고 있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박정연

성명 : 박정연[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캄보디아/프놈펜 통신원]
약력 : 현) 라이프 플라자 캄보디아 뉴스 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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