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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이슈] 토론토시, 과거 청산 위한 도심시설 개명 운동 한창
구분
사회
출처
KOFICE
작성일
2021.09.03

캐나다 토론토는 최근 여러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흘러간 역사 바로 세우기와 관련한 도심 거리와 대학 이름 등을 새롭게 바꾸려 시도하고 있다. 지난 8월 26일, 토론토 라이어슨대학(Ryerson University)은 지난 5월, 과거 원주민들을 동화시키기 위해 설립된 캐나다 기숙학교(The residential school)에서 어린이 대규모 학살이 일어났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교명을 바꿀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또한, 지난 7월 14일 토론토 시의회는 토론토 중심부를 지나며 도시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는 던다스 거리(Dundas Street) 이름 역시 바꾸기로 의결했다. 던다스는 스코틀랜드 유력 정치인인 헨리 던다스(Henry Dundas)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동 인물이 대서양 횡단 노예거래에 연관되어 왔고, 노예 폐지를 지연시켜왔다는 오랜 비난을 받아 왔었다. 이후 2020년 여름,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피살 사건으로 촉발된 블랙 라이프 매터(Black Life matter) 시위가 시작되면서, 인종적 불평등, 반흑인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요구와 함께 토론토의 던다스 거리 이름을 변경해야 한다는 청원이 쏟아지게 되었다. 이에 본격적으로 거리 개명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토론토시의 의결 주제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라이얼슨 대학의 상징물인 에거튼 라이얼슨 동상이 훼손되고 있다 - 출처 : Evan Mitsui/CBC>

<라이얼슨 대학의 상징물인 에거튼 라이얼슨 동상이 훼손되고 있다 - 출처 : Evan Mitsui/CBC>


던다스 거리 개명 법안은 지난 7월, 토론토 시의회 내부의 오랜 토론의 결과 찬성 17, 반대 7로 통과되었다. 존토리 (John Tory) 토론토 시장은 “헨리 던다스는 토론토에 방문한 적이 없으며, 토론토가 추구하고 있는 가치와 일치되지 않았던 그의 행적을 기념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강조하며, 던다스 거리 개명 법안을 설명하였다. 토론토시에 따르면, 앞으로 지역 자문위원회가 개명절차를 주도할 예정이며, 위원회는 흑인 및 원주민 지도자들과 던다스 거리에 거주하거나 일하고 있는 다양한 지역 사회 대표들과 기업 및 주민 협의회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 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던다스 거리 개명은 도시의 모토인 ‘다양성은 우리의 힘(Diversity our Strength)’을 기초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제도화된 인종차별에 도전하며 보다 더 포괄적인 토론토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도시의 일환”이라고 언급했다. 이와 더불어 토론토시는 도시의 기념물, 거리 및 장소 명칭에 공적 인물과 행사를 표시하는 방법, 기존 도시 자산을 검토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던다스 거리에 부여된 이름인 ‘던다스’는 거리명뿐 아니라 지하철역 2개, 공원 3개, 공공도서관 1개, 자전거 공유역 625개, 사업장 60개 등의 수많은 시민 자산과도 연관되어 있어, 결코 값싸고 쉬운 변화는 아니다. 하지만 도시의 거리 명칭은 도시 전체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 추구하는 가치, 지향하는 미래 등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시민들과 합의를 거쳐 거리명을 개명하는 절차는 부끄러운 옛 과거를 대하는 도시인들의 자세를 보여준다.

 

최근 개명을 결정한 라이어스대학은 에거튼 라이어슨(Egerton Ryerson)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 사용해 왔다. 그는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운영된 원주민 기숙학교의 시스템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캐나다 공립학교 시스템, 각종 학교 위원회, 교과서의 획일화 등 캐나다 교육자로서 크게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5월 28일,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에 위치한 캠루프스 원주민 기숙학교(Kamloops Indian Residential School) 부지에서 215구, 6월 새스캐처원주(Saskatchewan)에 있는 매리벌 원주민 기숙학교(Marieval Indian Residential School) 부지에서 751구, 브리티쉬 콜롬비아주 크랜브룩 근처의 세인트 유진 원주민 기숙 학교(St Eugene Residential School)에서 182구의 어린이 시신들이 발굴되면서, 라이어슨에 대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원주민 기숙학교는 캐나다가 원주민 어린이들을 그들의 부모와 공동체로부터 분리하여 영어 교육과 영국 중심의 생활양식을 배우도록 설계된 학교였다. 캐나다 전역에 최대 130개가 운영되었으며, 1931년에는 80여 곳이 운영됐다. 원주민 기숙학교에서는 모국어 대신 영어 사용을 강요했고, 새로운 방식과 커리큘럼의 교육, 문화 이식을 강행해왔다.

 

2015년 캐나다 진실과화해위원회 보고서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처럼, 원주민 기숙학교에서는 문화 학살(Cultural Genocide)이 자행되었다. 이에 학생들은 학대, 처벌, 성폭력,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피해 학생은 15만 명에 달하며, 기숙사에서 죽은 아이들들은 2,800명으로 보고 되었다. 기숙학교의 생존자들에 따르면 도망친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길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죽기도 했다고 알려졌다. 더불어 지난 5월부터 잇달아 밝혀진 기숙학교에 부지에서 발견된 1,000구 이상의 어린이 유해는 기존 보고된 수치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집단 학살 후 매장됐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어린이 유해들이 발견된 지난 5월 이후, 기숙학교를 운영했던 카톨릭교회와 캐나다 정부를 향한 비난의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났으며, 교회 곳곳은 화재로 불타기도 했다. 원주민 기숙학교 시스템을 설계하고 시행한 에거튼 라이어슨 동상의 머리는 잘리고 훼손되었다.

 

이미 최근 몇 년 전부터 동 대학의 교직원, 학생들은 교명 변경을 주장해왔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교명과 에거튼 라이어슨의 문화유산, 캠퍼스 내 기념물들을 재검토하기 위한 TF팀이 구성됐다. 지난 8월 17일, 모하메드 라체미(Mohamed Lachemi) 총장과 부총장은 TF팀이 제안한 22가지 권고를 받아들여 학교 명칭은 변경을 결정했다. 라이어슨대학은 교명 변경뿐 아니라 에거튼 라이어슨의 역사적 행적에 대한 자료 공유, 원주민 역사와 원주민-식민관계에 대해 교육할 수 있는 기회 제공 등을 약속했다.

 

1867년 나라가 세워진 이후, 캐나다는 154년이라는 비록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동시에 수준 높은 다문화 정책과 이민, 난민 정책으로 높은 인권을 보장하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식민정책과 원주민 학살, 인종차별과 같은 과거의 문제들은 여전히 도시 곳곳에 흔적처럼 남아있다. 이를 알게 된 시민들과 지역 사회는 역사적 책임감을 가지고 식민지와 인종차별의 뿌리를 뽑고자 노력하고 있다. 도시의 랜드마크로 알려진 거리 이름, 70년 이상을 지켜온 대학 이름을 바꾸는 일은 비용문제나 여러 문제들이 얽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그들의 열망은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상황에 정면으로 맞서 함께 토론하며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시민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지속적으로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 참고 자료

https://www.toronto.ca/community-people/get-involved/community/recognition-review/

https://www.cbc.ca/news/canada/toronto/ryerson-university-name-change-1.6154716



고한나

  • 성명 : 고한나[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캐나다/토론토 통신원]
  • 약력 : 현) Travel-lite Magazine Senior Editor 전) 캐나다한국학교 연합회 학술분과위원장 온타리오 한국학교 협회 학술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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