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한류에 편승한 짝퉁 한식당들
구분
사회
출처
KOFICE
작성일
2021.08.13

베를린에서 한식은 탄탄히 자리를 잡았다. 1세대 교민들이 시작한 전형적 스타일의 한식당부터 1.5세, 2세들이 물려받아 젊은 감각으로 바꾼 한식당, 한국의 요식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진출한 전문 한식당까지 그 분류도 이제는 다양해졌다. 무언가가 유행하면 꼭 모조품이 등장하는 법. 한류, 케이팝 열풍에 힘입어 한식이 트렌디한 분야가 되자 한국인뿐만 아니라 여러 아시아 국가의 요식업자들도 한식 분야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한식을 표방하지만 한식이 아닌 정체 모를 한식당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코티(Kotti)'라는 애칭을 가진, 한때 베를린 힙의 상징이었던 곳. 이곳 한 중간에 한식당 '치코기(Chikogi)'가 있다. 서울주방이라는 이름을 달고 한식 비비큐와 김밥, 비빔밥 등 다양한 한식 요리를 제공한다. '이런 중심지에 한식당이!' 기쁜 마음으로 찾아갔지만 메뉴판을 드는 순간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한식 메뉴를 한국어 발음 그대로 소개한 부분은 긍정적이지만, 옆에 쓰인 한국어가 문제였다. 딱 보아도 구글 번역기로 사용한 메뉴판. 교정 교열을 봐줄 한국인도 없는 듯 했다. 예를 들어 Kimchi Jjigae, 김치찌개를 '김치국물'이라고 적어놨다. 불고기와 닭볶음을 모두 '쇠고기'라고 적어놨다. 한국어를 사용해 한국적인 부분을 장식하기 위한 목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베를린 한식당 메뉴판에서 보이는 오탈자와 어색한 한국어 단어 – 출처 : 통신원 촬영>

<베를린 한식당 메뉴판에서 보이는 오탈자와 어색한 한국어 단어 – 출처 : 통신원 촬영>

<퓨전 베를린 한식당의 김밥 – 출처 : 통신원 촬영>

<퓨전 베를린 한식당의 김밥 – 출처 : 통신원 촬영>


주문 후 받은 음식도 아리송하기는 마찬가지다. 위 사진에 보이는 김밥. 스타터로 8.5유로(약 11,600원)짜리 메뉴다. 일식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후또마끼'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김밥 속 재료나 위에 올려진 샐러드 등을 보면 한국식 김밥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대부분 동남아 국가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다. 한국인이 아닌 이들이 운영하는 한식당의 특징 중 하나가 이렇게 고추가루를 후추처럼 음식 위에 뿌린다. 이런 현상은 한식의 세계화, 현지화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만큼 한식이 유명하고, 수요가 있다는 방증이니까. 하지만 현지화한 퓨전 한식이라고 평가하기엔 맛이 실망스럽다. 한식의 정체성을 흐린다는 우려도 든다.


<한식당에 갔다가 실망한 경험을 전한 베를리너차이퉁 기사 – 출처 : 베를리너차이퉁>

<한식당에 갔다가 실망한 경험을 전한 베를리너차이퉁 기사 – 출처 : 베를리너차이퉁>


베를린 지역 신문 《베를리너 차이퉁(Berliner Zeitung)》의 죄렌 키텔(Sören Kittel) 기자도 이같은 정체 모를 한식당을 찾았다가 실망했던 경험을 기사로 전했다. 베를린 플란츨라우어베르크에 위치한 '필 서울 굿(Feel Seoul Good)' 한식당엔 한국사람도,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없다. 식문화 관련 기사를 많이 쓰는 그는 한식에 대한 조예도 꽤 깊어 보인다. 그는 먼저 주문한 비빔밥과 함께 나온 나무젓가락을 지적한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금속 젓가락과 숟가락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식당이 한국의 반찬 문화를 모르는 것 역시 문제다. 유일한 반찬인 김치는 비빔밥 위에 함께 올려져 있다. 음료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에 종업원은 코코넛 음료를 추천한다. 기자는 한국에서는 코코넛이 전혀 나지 않는 나라라는 걸 알고 있다. 한국 맥주도 없다. 키텔 기자는 '퓨전 한국 식당 '필 서울 굿'은 이름도 안 좋을뿐만 아니라 한류에 휩쓸려 가려고 한다. 필 서울 호러블!'이라며 별 한개와 함께 혹평을 남겼다. 다른 이들에겐 까다로워 보일 수도 있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이런 애정이 반갑다. 이정도까지 한국음식에 대해 아는 독일인은 많지 않다. 한식당을 표방하는 아류를 걸러낼만큼 안목있는 이들이 생겼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요즘은 베를린 거리에서 한식당을 보면 반갑기도 하지만 여기는 한국사람이 하는 곳인가 하는 의문부터 든다. '짝퉁'은 인기의 반증이다. 하지만 이 인기를 마냥 즐기기엔 우려 또한 크다. 마치 한국음식이 원래 그런 것처럼 현지에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나라의 요리가 공존하는 독일에서는 음식의 정체성은 명확해야 하고, 그 나라 음식은 그 나라 사람이 하는게 매우 당연한 통념이 되었다. 이탈리아 식당은 이탈리아 사람이, 인도 식당은 인도 사람이, 한국 식당은 한국 사람이 하는 게 자연스럽다. 물론 현지인들은 이 사람들이 한국 사람인지 베트남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구별하기 힘들고, 이 음식이 진짜 한국 음식인지 아닌지 구별하기도 힘들다. 한식당으로 알고 왔기 때문에, 이제 이 음식이 한국 음식으로 인식될 뿐이다.

 

음식엔 저작권이 없다. 어디서 판매를 금지하거나 인증하거나 식당에 들어가 정통성 토론을 할 수도 없다. '짝퉁' 한식당이 우후죽순 생기는 만큼 맛 좋은 진짜 한식을 선보이는 한식당이 더 많아지기를, 언젠가는 현지인들도 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참고자료

《Berliner-Zeitung》 (21. 7. 2.) <Das „Feel Seoul Good“ in Prenzlauer Berg ist eine Enttäuschung>, https://www.berliner-zeitung.de/wochenende/das-feel-seoul-good-in-prenzlauer-berg-ist-eine-enttaeuschung-li.168744de



이유진

  • 성명 : 이유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독일/베를린 통신원]
  • 약력 : 전)2010-2012 세계일보 기자 라이프치히 대학원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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