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아픈 상처 뚜얼슬렝에 소금을 뿌린 자들
구분
사회
출처
KOFICE
작성일
2021.06.04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있는 뚜얼슬렝 대학살박물관(Toul Sleng Genocide Museum). 과거 S-21 감옥으로 불리던 곳이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있는 뚜얼슬렝 대학살박물관(Toul Sleng Genocide Museum). 과거 S-21 감옥으로 불리던 곳이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는 말이 있다. 상처 소독과 고문을 동시에 함으로써 오랜 시간에 걸쳐 대상에게 고통을 주는 일종의 고문법이다. 많은 문화권에서는 '고통받는 사람에게 더한 고통을 주다(염장을 지른다)'라는 관용구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달 한 아일랜드 출신의 한 디지털 이미지 전문작가가 악명높은 S-21 교도소에 수용되었던 가혹한 고문 끝에 처형된 희생자들이 찍힌 사진의 색상과 미소 이미지를 조작해 캄보디아 정부와 국민들을 분노로 들끓게 했다.

 

원본 이미지는 원래 지난 1975년에서 1979년 사이에 공산혁명주의 크메르루즈 정권하에서 운영되던 악명높은 S-21 교도소에 수용되었던 재소자들의 흑백 머그 사진들이다. 현재는 ‘S-21 교도소’라는 이름 대신 ‘뚜얼슬렝 감옥’으로 불리는 이 곳은 당시 악명높은 ‘두잇’이란 별명의 교도소장과 그의 하수인들에 의해 2만 명 이상의 캄보디아인들을 고문 끝에 죽음으로 내몰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감히 캄보디아판 ‘폴란드 아우쉬비츠 감옥’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으로 뚜얼슬렝 대학살박물관(Tuol Sleng Genocide Museum)으로 이름이 바뀐 이 감옥 안에는 지금도 수 천장이 넘는 원본 흑백사진들이 잔악무도한 폴 포트 정권시대를 상징하는 유물로 전시 보관되어 있다.

 

매년 5월 20일 크메르루즈 학살추모일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이곳을 찾아 와 억울하게 죽은 혈육들의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듬으며 그들의 넋을 위로하곤 한다. 박물관 내부 벽면을 장식한 원본 사진 속에 수감자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박물관을 나선 사람들은 착잡한 마음에 대부분 고개를 떨구게된다.

 

뚜얼슬렝 대학살 박물관내 전시중인 크메르루즈 희생자들의 사진. - 출처 : 통신원 촬영<뚜얼슬렝 대학살 박물관내 전시중인 크메르루즈 희생자들의 사진. - 출처 : 통신원 촬영>

 

원본 이미지속 희생자들의 표정을 디지털작업을 통해 두려움에 떠는 표정을 밝은 미소로 바꾸고 컬러로 색상까지 바꿔 논란의 중심에 선 사람은 아일랜드 출신 독학 예술가 맷 러프레이(Matt Loughrey)다. 그는 지난 달 자신의 작품사진과 글이 실린 미국 뉴스매체의 아시아권 버전인 《바이스 아시아(Vice Asia)》에서 디지털 작업을 통해 뚜얼 슬렝 수감자들의 표정을 미소로 바꾼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작업 할 때 이번에 대해 몇 번이고 생각했습니다. 긴장할 때 웃기도 하고, 뭔가 숨길 것이 있을 때도 미소를 짓습니다. 고전적인 것 중 하나는 자신을 구금한 자와 친해지려고 노력하려는 심리입니다. 그래서 미소는 자연스럽게 보일 것입니다. 압제자가 모든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소를 짓는 것이 매우 쉬울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미소를 볼 때, 당신은 당신을 구금한 자와 동기화되기 위해 그것을 따라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통제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왼쪽 흑백사진은 뚜얼슬렝 대학살 박물관에 보관 전시중인 희생자의 원본사진이며, 오른쪽 사진은 아일랜드 디지털작가가 디지털로 색상과 희생자의 표정을 미소로 변형시킨 사진이다. - 출처 : Toul Sleng Genocide Museum<왼쪽 흑백사진은 뚜얼슬렝 대학살 박물관에 보관 전시중인 희생자의 원본사진이며, 오른쪽 사진은 

아일랜드 디지털작가가 디지털로 색상과 희생자의 표정을 미소로 변형시킨 사진이다. - 출처 : Toul Sleng Genocide Museum>


하지만 그의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국민들의 공감대도 전혀 얻지 못했다. 자신의 본업인 예술가로서가 아닌, 심리학자의 관점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해석하려 들었다. 예상대로 캄보디아 국민들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작가에 대한 강한 분노를 표출해내기 시작했다. 관련 기사가 포스팅된 페이스북에는 주로 이런 댓글들이 올라왔다.

 

“피해자의 일부 가족이 요청한 대로 사진에 색을 입히는 것은 웃는 얼굴을 편집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이 혐오스러운 유머 감각은 캄보디아 국민의 고통을 비하하고 악화시키고 있다.”

 

“이 학살의 영향으로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과 역사를 존중해주세요!”

 

“정말 끔찍하고 고문과 강간을 당한 가운데, 결국 살해당한 아름다운 캄보디아 여성들로 하여금 미소를 짓기 만든 일은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피해자나 그 가족에 대한 아무런 존경심도 여기선 보이지 않습니다. 당장 이 기사를 삭제하고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공식사과할 것을 제안합니다.”

 

“색채 예술화가라는 당신의 직업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얼굴표정을 바꾸는 것은 예술이 아닙니다. 피해자, 가족, 캄보디아인 모두에게 무례한 행위입니다.”

 

일부 캄보디아인들은 이미지 외에도 이 사진을 게재한 《바이스 아시아》가 게재한 관련 기사 글 내용에 대해서도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이들은 기사의 논조가 희생자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할 만큼 상당히 공격적인 데다, 뚜얼슬렝 수용소에 갇혔던 사람 중 2,000명만 살아남았다는 식의 부정확한 정보까지 담고 있다며 이를 비난했다. 이 같은 반응에 대해 《바이스 아시아》 측은 “디지털 기법으로 채색된 이 사진작품들은 그러한 과거의 비극을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던 당초의 억지스런 입장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이후 다음과 같은 성명을 내놓았다.

 

“이 기사에 게재된 디지털 복원된 초상화 작품들이 채색을 넘어 수정된 것에 대해 우리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시 본 기사를 검토하고, 내용들을 수정하기 위한 추가 조치들을 고려하겠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진정되지 않고, 캄보디아 국민들이 인터넷을 통한 탄원서(Change.org)까지 제출할 태세를 취하자 며칠 후 《바이스 아시아》 측은 짧게나마 공식 사과를 한 뒤, 관련 기사와 문제가 된 이미지 사진들을 모두 내렸다. 그러나 많은 조작된 이미지들이 여전히 일부 웹 사이트에 남아 떠돌고 있으며, 이 언론매체는 의도치 않았던 노이즈마케팅 덕분에 거꾸로 홍보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수감자들이 고문과 학대를 받던 뚜얼슬렝 감옥 내부 모습 - 출처 : 통신원 촬영<수감자들이 고문과 학대를 받던 뚜얼슬렝 감옥 내부 모습 - 출처 : 통신원 촬영>

 

이번 사건과 관련해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는 “자국의 아픈 과거 역사가 이 같은 상업적인 의도와 목적으로 절대 쓰여서는 안 되며, 희생자들을 모독해서도 안 된다. 이 같은 행위는 캄보디아 국민과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 행위”라고 비난하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했다.

 

그러나 이 시간 이후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 그야말로 희생자 가족의 아픈 상처에 또 다시 소금을 뿌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지난 4월 12일에 갓 데뷔한 미국 볼티모어 주(州)의 신생 데스 메탈 밴드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뚜얼 슬렝’이라고 짓고 음악활동을 막 시작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캄보디아 동포들 사이에 제일 먼저 이 소식이 알려졌고, 소식을 접한 캄보디아 국민들은 또 다시 분노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 밴드는 인스타그램 등 자신들이 직접 올린 게시물에 캄보디아의 존경받는 화가이자 S-21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 중 한 명인 평화 운동가인 완 낫(Vann Nath)의 미술 작품을 무단으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이 밴드는 킬링필드 희생자이자 화가로 유명한 캄보디아 사회운동가 완 낫의 그림을 무단으로 사용해 비난을 받고 있다. - 출처 : Death Metal Band Toul Sleng<이 밴드는 킬링필드 희생자이자 화가로 유명한 캄보디아 사회운동가 완 낫의 그림을 무단으로 사용해 비난을 받고 있다. - 출처 : Death Metal Band Toul Sleng>

 

캄보디아 국민들은 또 다시 들끓었다. 한 네티즌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캄보디아 사람이고 매우 불쾌합니다. 우리 문화에 대한 당신의 태도와 그것을 당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무례합니다.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인식과 공감이 부족합니다. 심각한 문화적 전용입니다!”

 

또 다른 현지 네티즌은 “캄보디아인 또는 1970년대 세계사에 익숙한 사람에게 뚜얼슬렝의 이름을 따서 밴드 이름을 정한 것은 마치 유태인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아우쉬비츠 감옥의 이름을 따서 밴드 이름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뚜얼 슬렝이란 이름이 왜 그러한 반발을 받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데스 메탈 밴드는 ’뚜얼슬렝(Tuol Sleng)‘이라는 이름을 변경하라는 캄보디아 국민들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 한 동안 크메르루즈의 독재자였던 악명 높은 폴 포트의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는 대담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참고로, 폴 포트는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로 중국 마오쩌뚱의 농업혁명주의를 기반으로 유토피아를 지상에 실현한다는 명분 아래 자국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200만 명을 학살한 세기의 학살자다. 밴드 멤버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항의의 표시로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바꾸지 않는다”라는 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캄보디아는 물론 동남아시아커뮤니티에서 분노가 커지자, 결국 이 밴드는 꼬리를 내렸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자신이 가진 웹사이트에서 관련 이미지들을 모두 삭제해버렸다. 다만 이들은 공식사과는 하지 않은 채 돌연 사라져버린 상태다. 캄보디아국민들은 이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조용히 있다가 다시 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며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미국의 데스메탈그룹 뚜얼슬렝 밴드의 모습. 가운데 밴드 멤버는 킬링필드의 주역인 폴 포트의 얼굴 사진을 쓰고 있다. - 출처 : Death Metal Band Toul Sleng<미국의 데스메탈그룹 뚜얼슬렝 밴드의 모습. 가운데 밴드 멤버는 킬링필드의 주역인 폴 포트의 얼굴 사진을 쓰고 있다. - 출처 : Death Metal Band Toul Sleng>

 

이 사건과 관련해 현지 영자신문 《크메르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캄보디아문화부 대변인인 롱 부나시 레이 바스는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데스메탈 밴드의 이 같은 활동은 결코 용납 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계 부처를 통해 페이스북 본사 측에 문제의 밴드가 올린 이미지들을 삭제해줄 것을 이미 요청했으며, 추가 조치로 국제 형사 경찰기구인 인터폴의 개입을 요청하기 위해 내무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두 건의 사건과 관련해 캄보디아문서보관센터(DC-Cam)의 소장이자, 크메르루즈 생존자이기도 한 요욱 쯔앙 씨는 “뚜얼슬렝과 관련된 모든 이미지와 기타 역사적 자료는 한 국가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이며, 이는 존경심을 갖고 적절하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러한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항상 세계 역사의 일부였던 집단 학살 사건에 대한 교육을 정부 정책과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는 일부터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조금은 완화된 반대 의견을 보이는 이도 있다. 캄보디아의 저명한 역사가 ‘삼보 마나라’는 자신의 견해로 “캄보디아사람들이 역사적인 유물과 관련된 이미지와 자료를 사용하는 예술가들에게 너무 과잉 반응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이어 “예술은 오로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뚜얼 슬렝과 같은 랜드마크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예술 작품을 재배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미지나 자료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면 캄보디아 역사 연구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모로 타국 나라의 역사를 표현할 때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70년대 킬링필드 당시 크메르루즈군이 어린이를 나무에 쳐서 학살하는 참혹한 장면이 담긴 대형 유화 - Toul Sleng Genocide Museum<70년대 킬링필드 당시 크메르루즈군이 어린이를 나무에 쳐서 학살하는 참혹한 장면이 담긴 대형 유화 - Toul Sleng Genocide Museum>

 

한편, 캄보디아 예술가로 활동 중인 한 한국인 전문가는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뚜얼슬렝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위에 대해 이 같은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만한 사안이라며 이러한 예시를 들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혀 죄수복을 입고 서 있는 유관순 열사의 사진에 외국인 예술가가 디지털로 립스틱을 바른 화장한 모습에 표정까지 웃는 모습으로 바꿔놓는다면, 과연 우리 국민들 중 과연 누가 이를 순수한 예술작품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 참고자료

https://www.khmertimeskh.com/50841582/rubbing-new-salt-on-an-old-wound-the-exploitation-of-tragedy-at-s-21/

https://www.change.org/p/all-cambodians-in-diaspora-we-need-your-help-support-us-in-letting-vice-and-matt-loughrey-know-that-we-will-not



박정연 통신원 사진

  • 성명 : 박정연[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캄보디아/프놈펜 통신원]
  • 약력 : 현) 라이프 플라자 캄보디아 뉴스 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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