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필리핀의 시식(Sisig)과 한국의 부대찌개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4.06.11

필리핀의 시식(Sisig)과 한국의 부대찌개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아세안 국가는 필리핀이다. 7,000개가 넘는 섬을 보유한 필리핀에는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다양한 음식들이 존재한다. 필리핀 여러 지역에서도 음식으로 유명한 지역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은 바로 빰빵가(Pampanga)다. 빰빵가는 '필리핀 미식 수도(culinary capital of the Philippines)'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 지역에서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상징적이고 사랑받는 여러 요리를 배출했다.


빰빵가는 1571년 11월 11일 스페인이 루손에 설치한 최초로 설치한 지방 행정구역(First Spanish province in Luzon)으로 '빰빵(Pampang)'이라는 단어는 '강둑'을 뜻한다. 스페인은 토양이 비옥한 빰빵가에서 쌀, 설탕, 담배를 생산했으며 그 결과 빰빵가는 스페인 식민지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스페인 이후 등장한 미국은 도로와 철도 확장을 통해 교통과 통신 상태를 개선했으며 새로운 농업기술과 시설 도입으로 쌀과 설탕 수확량을 늘렸다.


< 알링 루싱 시식(Sisig) 전문점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렇듯 빰빵가는 식민지 권력과 다양한 방식으로 조우할 수 있었고 전통 음식은 스페인 및 미국 요리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음식으로 유명한 지역이 됐다. 빰빵가를 대표하는 요리로 가장 유명한 시식(Sisig)을 비롯해 달콤하게 절여 먹는 고기 요리인 토시노(Tocino) 그리고 속을 채워 만드는 요리인 모르콘(Morcon)과 렐레노(Relleno)가 있다. 달콤하고 폭신한 빵인 엔사이마다(Ensaymada)와 물소인 까라바오 우유로 만든 후식인 띠복띠복(Tibok-tibok)도 유명하다.


빰빵가 요리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시식(Sisig)은 '신맛을 내다'라는 옛 단어인 '시시간(Sisigan)'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Augustinians) 소속 디에고 베르가노(Diego Bergaño)가 1732년 스페인어를 포함해 빰빵가 지방(Pampanga)에서 사용되던 단어를 정리한 책에 처음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시식은 '파파야나 구아바에 소금, 후추, 마늘, 식초를 넣은 샐러드'였다.


< 루시아 쿠나난이 시작한 철판에 제공되는 시식(Sisig)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후 시식은 돼지머리와 간 부위 등을 넣어 만들기도 했으며 여기에 깔라만시(Kalamansi), 양파, 고추를 넣어 새콤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내는 형태로 발전됐다. 하지만 한국인이 필리핀에 여행 가서 접하는 시식은 앞서 언급한 것과 다른 형태로 이러한 시식은 20세기 중반에 등장했다. 철판에 나오는 시식은 '알링 루싱(Aling Lucing)'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앙헬레스 출신인 루시아 쿠나난(Lucia Cunanan)이 처음 만들었다.


루시아 쿠나난은 클락 미 공군기지(Clark Air Base)에서 소비되지 않던 돼지 여러 부위를 구매했고 돼지머리 부위를 구워 잘게 썰어 양파와 섞어 뜨겁게 달군 철판에 제공했다. 루시아 쿠나난은 1974년 앙헬레스시(Angles City)에서 '알링 루싱'이라는 상호로 식당을 냈으며 그가 만든 시식은 유명해졌다. 그 결과 앙헬레스는 '필리핀 시식 수도(Sisig Capital of the Philippines)'로, 루시아 쿠나난은 '시식 여왕'으로 널리 알려졌다.


뜨겁게 달군 철판에 내놓은 시식은 독특한 식감과 맛을 냈으며 이후 깔라만시, 고추, 마요네즈, 계란 등이 추가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됐다. 어찌 보면 오래되지 않은 1970년대 등장한 시식이지만 이후 빰빵가 요리를 상징하는 대표 주자가 됐으며 지역민들에게는 자랑거리 중 하나가 됐다. 시식은 이후 창의적인 변주를 통해 치킨 시식과 물고기인 방우스로 만드는 시식(Bangus Sisig) 그리고 두부 시식 등 채식주의자를 위한 형태로까지 발전했다.


< 송탄식 부대찌개 - 출처: 통신원 촬영 >


필리핀에 시식이 있다면 한국에도 미군 부대와 관련된 음식이 하나 있는데 그 음식은 다름 아닌 부대찌개다. 부대찌개는 시식처럼 기존에 있던 찌개와 전골 요리가 미군 부대 식재료와 만나면서 탄생한 요리다. 처음에는 미군 부대에서 나온 소시지, 햄, 베이컨과 김치, 콩나물, 마늘, 고추장 등을 넣어 함께 끓여 풍부하고 강렬한 맛을 냈다. 이렇게 탄생한 조리법은 의정부, 송탄, 군산 등 미군 부대 주위에서 유명해지다가 이제는 한국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전국구적인 음식이 됐다.


지구촌 모든 국가가 그러하듯 한국과 필리핀 양국 역시 비슷한 점도 있지만 많은 면에서 다른 점이 있다. 부대찌개와 시식 또한 유사하면서도 서로 다른 특성이 있다. 부대찌개는 국물을, 시식은 볶음을 기반으로 하는 서로 다른 나라 요리지만 미국 부대 인근에서 발전했으며 각국의 역사와 문화가 반영돼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말할 수 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Pepper.ph 홈페이지, https://pepper.ph/blog/sisig-history


- Find a grave 홈페이지, https://www.findagrave.com/memorial/178157717/lucia-cunanan




성명 : 조상우[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필리핀/앙헬레스 통신원]

약력 : 필리핀 중부루손 한인회 부회장/미디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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