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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놓고 보는 그림, 이경욱 작가의 독일 첫 개인전
구분
문화
출처
KOFICE(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작성일
2016.09.07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주의 경계에 위치한 작은 도시 텔토우(Teltow)시가 시민들을 위한 축제를 열었던 날, 한국의 젊은 작가 한 명이 이 마을에 찾아 들었다. 이 낯선 청년은 자신의 그림으로 조용한 마을에 난데없는 활기를 불어넣었다. 화려한 색감의 파스텔로 그려낸 사람과 자연의 독특한 모습은 지나가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국에서 영화 및 음반 산업 쪽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이경욱 일러스트레이터의 첫 독일 개인전이 지난달 28일 텔토우시에서 막을 열었다.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텔토우시에서 개인전을 연 이경욱 작가>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텔토우시에서 개인전을 연 이경욱 작가>

<이경욱 작가의 독일 첫 개인전 팜플렛>

 

<이경욱 작가의 독일 첫 개인전 팜플렛>


베를린과 포츠담 사이에 위치한 텔토우시는 브란덴부르크주의 소도시로 젊은이들보단 중장년층이 많이 사는 도시다. 한국 작가도 한국 작가의 전시회도, 한국 작가의 작품도 낯선 곳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 젊은 작가에게 기꺼이 벽을 내어 주었고, 작가는 그 곳에 다채로운 생기를 불어 넣었다. 이경욱 작가의 개인전은 텔토우시 축제와 함께 열린 좌파당 사무소의 '시민 개방의 날' 행사의 메인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시민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의 작품 앞에 섰다. 그의 작품은 그랬다. 어디서 본 것 같은 화풍도 아니고, 평범한 시민들은 이해할 수도 없는 난해한 화풍도 아니었다. 익숙한 듯한 선에 어우러진 기이한 채색에 어라, 하면서 뒤돌아 보고, 눈길을 거둘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 날 이경욱 작가의 작품을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다음 전시회를 열자고 제안한 이도 있었다.


이경욱 작가는 '일반적이고 통념적이지 않은' 그만의 작품 세계와 창작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 지난 1월부터 독일 베를린에 터를 잡았다. 한국에서는 꽤나 유명한 영화나 음반 디자인, 이미지메이킹 작업들을 해왔다. 국내 활동으로도 충분히 자리잡을 수 있었텐데 그는 무엇 때문에 독일까지 오게 되었을까. 독일에서 첫 개인전을 그저 '무사히' 열게되어 즐겁다는 이경욱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이경욱 작가


안녕하세요 이경욱 작가님, 반갑습니다. 국내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독일에는 언제, 어떤 이유로 오셨나요?


독일에는 올해 1월에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독일로 넘어오게 된 이유는 한국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그동안 활동해오며 언제나 전시 미술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요, 여러가지 많은 이유가 있지만 전시의 첫 시작은 한국의 테두리 밖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2011/ 2012년에는 뉴욕에서 전시나 드로잉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었어요. 어찌되었든 이 곳 독일로 넘어온 이유는 전시 미술의 시작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동안 베를린에서 지내신 걸로 아는데요, 베를린에서 어떤 활동과 작업을 하시면서 지내셨나요?

 

베를린에 넘어 온 후로 이 곳에서는 계속 전시를 위한 그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 벌려놓은 회사일도 여전히 계속 하고 있고요.


서울이나 뉴욕 등 활동하셨던 다른 도시와 비교해서 독일, 그리고 베를린은 예술가들에게 어떤 도시로 느껴지나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제 이야기를 잠깐 먼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16살 때부터 그림만 쭉 그리면서 살았어요. 유난스러운 사춘기를 보내기도 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적도 있었고요.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그림을 그리게 된 사람이 아니라 제도권 밖에서 그냥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온 경우입니다.


프랑스 화가인 장 드뷔페(Jean Dubuffet)는 그러한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들의 그림들을 '아르브뤼트 (Art Brut)'라 정의하고 이들의 그림을 하나의 장르로 발전 시켰는데, 이러한 아르브뤼트적 표현에 대한 미술시장의 인식은 우리나라에선 아직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정신질환자나 미술 치료의 결과물에서 발견하게 되는 원초적 미학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정서는 '일반적이고 통념적이지 않은 그 무언가'에 대해서 굉장히 배타적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일반적이고 통념적인 한국의 소위 예술인들에게 본인들과 같지 않은 길이나 방법으로 창작을 해나가고 있는 이들은, 그들의 기준에 있어서 예술인이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뉴욕의 경우 이를 '아웃사이더 아트' (단어의 부정적 의미 때문에 이러한 이름을 붙인 것에는 대단히 동의하지 않지만)라는 하나의 장르로, 독일에서는 '아우토디닥텐(Autodidakten)'이라는 분류로 이에 대한 장르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유지 발전 시키려는 움직임이 이미 있습니다. 저 역시도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를 계속 유지 발전시켜보고 싶은 생각이고요. 이것이 한국에서 독일로 넘어오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뉴욕에서 드로잉 퍼포먼스를 하신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 당시 그곳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혹시 독일에서도 그런 행사를 계획하고 있으신가요?


저는 그림이라는 콘텐츠가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써 그 역할을 감당해내는 것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끼고 있어요. 뉴욕이나 서울 길거리에서 드로잉 퍼포먼스를 진행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고, 많은 사람들과 그림을 통한 소통의 과정을 경험하고 싶어서 했던 것이고요. 독일에서도 기회가 된다면 얼마든지 그에 대한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이경욱 작가 작품

독일 첫 전시회 축하드립니다. 어떤 주제와 작품으로 전시회를 여는지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그림은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기록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활자로의 기록과 다른 점이 있다면, 활자는 사실 중심의 정보전달을 하기에 뛰어난 소통의 도구이지만 그림의 기록은 감정의 변화와 상태를 전달하기에 뛰어난 소통의 도구라고 생각해요. 화자의 감정이 그림을 통해 청자에게 전이되는 과정 자체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또한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신체 기관은 눈과 손이라고 생각해요. 언어를 통한 소통에서의 귀의 역할은 눈이, 입의 역할은 손이 해내는 것이지요.


정리한다면,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필요한 신체기관을 강조한 초상(Portraits)을 통해 화자가 느끼는 소통의 감정이 청자들에게 전달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시회가 독일 좌파당(Die Linke) 정당 행사 중 하나로 열렸는데요, 정당 행사와 함께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정치적인 성향이 특별히 왼쪽이다 오른쪽이다 이런 건 사실 없어요. 제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 싶은 생각은 더욱 없고요. 다만 지금 베를린에서 활동을 도와주고 있는 친구가 전시를 기획하고 함께할 공간이나 단체 등을 알아보던 중 먼저 연락이 오게 된 곳이었어요. 독일에서는 정당들이 예술가들을 위해 전시를 열어주고 후원해 주는 움직임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더군요. 이번 오프닝을 통해 제 작업을 보고는 다음 번 전시를 함께 하고 싶다고 해서 지금 의논 중인 곳이 있는데요, 이 곳은 또 die Linke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단체라고 하더라고요.


독일 첫 개인전인데요. 오프닝 행사를 마친 소감은 어떠세요?


사실 아주 작은 전시이고, 아시다시피 정당 행사 중 하나로 열리게 된 전시였기 때문에 준비하면서 엄청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오프닝을 마치고 엄청난 성취감을 느꼈거나 그런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독일에서의 첫 전시를 무사히 열었다는 것이 즐겁고요, 개인적으로는 이 곳 독일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한국 갤러리들과의 전시가 아닌, 독일 현지인들의 현지 행사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제 첫 전시가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고무적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독일사람들이 작품을 대하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것에 차이가 있는 것 같나요?


아직 그에 대한 반응을 보고 서로의 차이를 제가 가려 내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독일에서 무엇을 하면서, 얼마나 더 머물 계획이신가요?


계속 독일에 머물면서 전시나 여타의 활동들을 할 생각입니다. 가능하다면 영주권까지도 취득하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 아마도 지금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4~5년 정도는 우선 독일에 계속 머물 예정입니다.

이유진 독일 라이프치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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