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조선 최초 필리핀어 통역사 문순득
구분
교육
출처
KOFICE
작성일
2024.05.29

조선 최초 필리핀어 통역사 문순득


본래 문순득은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리인 우이도(牛耳島)에서 태어난 홍어 장수였다. 1801년 12월 24세 문순득은 작은 아버지 문호겸과 마을 주민 4명과 함께 홍어 구매에 나섰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됐다. 표류 끝에 1802년 1월 현재 오키나와인 류큐 대도(大島)에 표착한다. 류큐인들은 표류한 조선인들을 잘 보살펴주었고 8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류큐어를 배우고 조선으로 돌아가는 방법도 찾아냈다. 그리하여 1802년 10월 조선으로 가기 위한 방편으로 먼저 중국으로 향하는 조공선에 탑승해 류큐를 떠났으나 다시 풍랑을 만나 류큐보다 더 먼 남쪽 땅에 도착했다.


< (좌)비간 대성당 전경, (우)비간 대성당 관련 설명 - 출처: 통신원 촬영 >


도착한 곳은 당시 여송(呂宋)이자 현재 필리핀 루손 섬으로 스페인이 식민 지배 중이던 여송과 조선은 왕래가 없던 곳이었다. 루손 섬의 사람들은 표착한 문순득 일행을 류큐인들처럼 잘 보살펴 주지는 않았지만 담배와 럼을 나눠주기도 했다. 문순득은 비간이 있는 루손 섬 북부에서 통용되는 일로카노어(Ilokano)를 배우고 끈을 꼬아 파는 것과 쌀 거래를 돕는 것으로 생계를 해결했다. 문순득을 포함한 일행은 9개월을 머물면서 닭싸움 구경을 하는 등 지역 풍속도 살펴보고 현재 비간 부르고스 광장에 있는 비간 대성당(정식 명칭은 성바오로 대성당, Metropolitan Cathedral and Parish of the Conversion of Saint Paul)을 구경하기도 했다.


문순득이 머물렀던 비간은 스페인 사람들이 1572년 건설한 도시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비간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 모습이 그대로 남은 도시로 스페인 식민지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현재도 비간 구도심을 걷다가 보면 18세기 스페인 식민지 도시 계획이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문순득 일행이 방문했던 언급한 비간 대성당은 원래 1641년에 완공됐으나 지진과 화재 등으로 파괴됐고 현재 모습은 1790년부터 1800년까지 축조된 모습이다. 현재 비간을 찾는 관광객들은 문순득 일행이 방문했을 때와 유사한 모습의 성당을 볼 수 있다.


여송에 머물던 문순득은 1803년 8월 28일 비간을 출발하는 상선을 얻어타고 마카오에 도착했으며 이후 베이징을 거쳐 1804년 12월 한양에 도착했다. 홍어를 사러 집을 나섰던 문순득은 풍랑을 만나 표류한 지 3년 2개월 만인 1805년 1월이 되서야 우이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문순득은 글을 많이 깨친 사람은 아니었으나 총명했으며 류큐어와 일로카노어를 배울 정도로 언어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 우이도에 돌아온 그는 유배 중이던 정약전을 만났고 문순득은 정약전에게 류큐와 여송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정약전은 문순득이 구술한 내용을 기록했고 이것이 바로 『표해록(漂海錄)』이다.


< 야간에 비간 시내를 걷는 사람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문순득이 조선에 돌아왔으나 그와 여송(현재 필리핀) 사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문순득이 표류하기 전인 1801년 8월 외국인 5명이 제주에 표류했는데 조선 조정은 이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어 청나라로 보냈으나 그쪽에서도 국적 파악이 되지 않아 조선으로 다시 보낸 일이 있었다. 그러다가 조선에 표착한 류큐 사람 궁평(宮平)이 이들과 대화한 끝에 여송 사람인 것을 알게 됐지만 여송으로 돌아갈 길이 없어 9년 동안 제주에 머물게 됐다. 문순득이 일로카노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조정 관계자가 문순득과 이들을 대면하게 해 소통한 끝에 조선 조정도 표착한 이들이 여송 사람인 것을 확인하고 여송으로 돌려낸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1949년 한국과 필리핀은 정식 수교를 맺었다. 수교 1년 후인 1950년 국제연합 요청을 받은 필리핀 정부는 6.25 전쟁에 필리핀 한국 원정군(Philippine Expenditionary Force to Korea)을 파병했다. 필리핀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전투병을 지원했으며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가장 먼저 한국 땅을 밟았다. 6·25 전쟁 동안 필리핀 군인 7,420명이 한국에 파병됐으며 전쟁 동안 실종 16명, 포로 41명, 전사 또는 사망 112명, 부상 299명이라는 피해를 입었다. 전쟁을 함께 경험하기도 한 양국은 이제 문화, 경제, 국방 등 다방면에서 협력하는 관계가 됐다.


전투병을 파병했던 필리핀 정부는 2015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제작한 경공격기 FA-50PH 12기를 구매했으며 한국이 만든 경공격기는 2017년 마라위 전투에서 그 효과를 여실히 증명했다. 수교 75주년을 맞은 올해 3월 3일부터 5일까지 필리핀 클락 공군 기지에서 열린 에어쇼에 한국 공군 블랙이글스 T-50B 8대와 필리핀 공군이 운용 중인 FA-50PH 4대가 참여했다. 3일 당일은 일반에 개방되지 않았으나 4일에는 오후 1시 30분부터 일반에 개방됐으며 오후 3시 45분부터 양국 공군 비행단의 우정 비행이 실시됐다. 75주년을 맞은 에어쇼를 통해 양국 공군만이 아니라 행사장을 찾은 양국의 국민들 역시 우호를 증진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에서도 수교 75주년 기념행사가 지난 3월 5일에 열렸다. 그 자리에서 마리아 테레사 디존-데 베가(H.E. Theresa Dizon-De Vega) 주한필리핀 대사는 첫인삿말과 함께 문순득을 거론했다. 베가 대사는 "문순득 이야기는 양국 사이 초기 문화교류를 보여주며 필리핀 관습과 언어에 대한 관심과 기록을 통해 상호 이해와 우정을 키웠다."라고 덧붙였다. 대사가 언급한 것과 같이 200여 년 전 문순득은 힘든 표류 생활 속에서도 새로운 언어와 문물을 습득했다. 이러한 기백은 21세기인 지금도 필요한 덕목 중 하나이며 양국 사이 교류와 우호 증진을 위해 21세기판 문순득이 더욱 많이 배출되기를 바란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Philstar》 (2017. 10. 19). Good neighbors, https://opinion.inquirer.net/108002/good-neighbors


- 《Philstar》 (2023. 10. 15). Navigating shared waters: A new chapter for Korea-Philippines maritime cooperation, https://www.philstar.com/the-freeman/opinion/2023/10/15/2303780/navigating-shared-waters-new-chapter-korea-philippines-maritime-cooperation


- 《The Korea Herald》 (2024. 3. 10). Philippines, S. Korea recall cooperation that forged 75 years of ties, https://www.koreaherald.com/view.php?ud=2024031005012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https://sillok.history.go.kr/id/kwa_10906026_001#footnote_1




성명 : 조상우[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필리핀/앙헬레스 통신원]

약력 : 필리핀 중부루손 한인회 부회장/미디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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