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우크라이나에서 온 김알리나에게 한국어는 희망과 위로
구분
교육
출처
스터디코리안
작성일
2022.12.22

늘 그랬듯이 한 해를 희망차게 시작했다. 그러나 2022년에 희망은 적었다. 모두가 '설마' 했던 불행은 현실이 되었다. '금방'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나 한 해 끝자락에도 끝은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삶 속에서도 살아야 하니까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 이 시간을 견디고 이기기 위해서는 각자만의 희망과 위로가 필요하다.


지난 2월부터 불안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몸과 마음이 위축되니 무의식적으로 낯선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다. 특히 전화벨 소리에도 긴장이 되고 등록되지 않는 전화는 일절 받지 않았다. 4월 초에 유난히 자주 낯선 전화가 걸려 왔다. 12번 정도 계속 피했는데 어느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전화를 받으니 상대방은 드디어 통화가 되었다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4월 21일 우크라이나에서 바로네즈로 피난 온 김알리나와 엄마 김비올레따를 [바로네즈 한글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안녕하세요. 저는 알리나라고 합니다. 저는 오늘 '나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는 한국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먼저 제가 어떻게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 배우게 되었는지 말하고 싶습니다. 제 고향은 루간스끼주에 있는 스타하노프입니다. 엄마는 한국 사람이고 아빠는 러시아 사람 반, 우크라이나 사람 반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한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사람입니다. 집에서는 주로 러시아어를 사용했지만, 가끔 친척들에게 한국어와 우크라이나어도 들으며 자랐습니다."


- 김알리나 『한국어, 나의 희망과 위로』 중


교육현장1


매년 12월 첫 주 토요일 카잔연방대학에서 개최되는 한국어 올림피아드는 한국어를 배우는 모든 학생에게 열려있다. 그러나 한국어 말하기, 쓰기 올림피아드라는 부담감과 바로네즈에서 카잔까지 기차로 이틀을 달려야 하는 현실 때문에 쉽게 결단 내리기 어려운 대회다. 그러나, 김알리나는 본 대회 공지를 듣자마자 이미 마음이 카잔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문의한 내용이 '무엇을, 어떻게 발표해야 하나요?'가 아니라 '카잔까지 비용이 얼마나 드나요?'였다.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께 부담 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꼭 참가해보고 싶은 열망 중 결국 후자가 이겼다. 그렇게 김알리나의 한국어 올림피아드 도전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대중 앞에서 떨지 않고 발표하기'다. 올림피아드를 3주 남기고 [바로네즈 한글학교]에서 진행된 7회 김치의 날 행사를 시작하면서 참석자들 앞에 김알리나를 세웠다. 참석자들은 김알리나의 체험적 주제인 『한국어, 나의 희망과 위로』를 잘 경청해주었고 큰 박수로 격려했다. 피드백과 조언도 나눠주었다. 김치의 날에 알리나 부모님을 초대했는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대신 참석하셨다. 한국 어딘가에서 뵌 적이 있는 듯 친근한 인상의 어르신들이다. 한국말은 전혀 못 하신다. 김알리나가 사람들 앞에서 차분하게 한국어로 발표를 시작하자 두 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막내 손녀가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두 어르신은 교사 손을 꼭 잡으며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셨다.


교육현장2


김알리나와 전보다 훨씬 자주 만나면서 엄마가 바로네즈에서 일을 찾지 못해서 고향으로 돌아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비올레따와 통화를 했다. 카잔은 가 봤는지, 며칠 휴가를 낼 수 있는지, 교통비와 숙박만 해결되면 딸과 동행할 수 있는지 물었다. 꼭 가보고 싶은 도시가 카잔이고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단다. 다양한 도움의 과정을 거쳐 긴장된 한국어 올림피아드가 엄마와 딸의 낭만 여행이 되었다. 대회 이틀 전인 12월 1일 아침 7시 20분 기차로 출발했다. 모스크바까지 6시간 반이 걸리는 급행열차다. 새벽에 일어나서 김밥 도시락을 쌌다. 당일 오후 모스크바 도착 후에는 각자 일을 보고 밤 11시 카잔행 침대 기차에서 다시 만났다. 눈에 폭덮힌 크고 작은 도시들을 밤새 달려 다시 기차에서 아침을 맞았다. 알리나가 계속 가지고 다니던 검은 봉투가 궁금했는데 음식 봉투다. 외할머니가 선생님과 같이 먹으라고 이른 새벽부터 준비해주신 음식으로 닭고기, 커틀릿, 샤슬릭, 오이, 빵 등이었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배운 관용어를 알리나가 기억한다. '나의 할머니는 손이 너무 커요'라고 말해서 한참 웃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뉴스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지금 그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참한 현실에 대해 들었다. 직접 찍은 사진 속에는 영화에서나 보았던 장면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고스란히 목격한 13살 사춘기 딸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똑똑한 딸은 더 빨리 상황을 판단했고 그래서 더 절망했다. 폭격에 거의 폐허가 된 고향에서 김알리나는 방탄소년단을 통해 한국을 알게 되었고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에 빨려 들어갔다. 딸에게 유일한 기쁨인 한국어를 배우게 해주려고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우크라이나인 교사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상황은 더 악화되었고 결국 김알리나는 고향, 친구, 학교를 떠나 낯선 도시로 피난을 왔다. 한동안 방황하던 딸이 다시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을 때 엄마는 딸의 열정이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엄마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지인들을 거쳐 과거 한글학교 학생이었던 친척 딸을 통해 [바로네즈 한글학교] 연락처를 겨우 알게 되었다. 12번 전화 연결이 안 될 때마다 절망감이 몰려왔다고 했다.

"한국어를 배우는 많은 사람들처럼 저도 인터넷에서 방탄소년단을 보고 한국에 홀딱 반했습니다. 방탄소년단 목소리, 춤, 잘생긴 외모 다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한국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을 봤습니다.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 때문에 한국을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고향에서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엄마가 열심히 도와주셔서 겨우 우크라이나 선생님을 만났고 인터넷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공부는 재미가 없었고 한국어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한국어가 좋아졌다 싫어졌다 이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교육현장3


12월 2일 오후 1시 30분, 드디어 카잔에 도착했다. 당일 수은주는 영하 24도다. 날카로운 추위 속에서도 모녀의 표정은 유난히 밝다. 이슬람과 정교회 문화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 카잔에 첫발을 내디딘 감회가 생각보다 더 좋다고 했다. 김알리나는 이미 대회 참가자라기보다 엄마와 여행을 온 행복한 사춘기 소녀다. 그 모습이 참 좋다. 대회는 경험이면 되었다. 경험과 여행을 누릴 수 있는 2박 3일이 되길 기원하며 주최 측에서 제공해 준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김비올레따가 연락했다. 목소리가 기쁨에 넘쳐있는 이유를 물으니 우즈베키스탄에서 초등학교 때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카잔에 살고 있다고 해서 수소문해서 찾았단다. 그런데 그 친구 딸이 카잔연방대학 교수로 일한다고 했다. 대회 당일 그 교수님은 대회장을 방문했고 서로 기가 막힌 인연에 감탄했다. 김알리나와 김비올레따 모녀의 카잔행은 러시아어로 '슐프리스' 즉, 뜻밖의 선물로 가득했다. 선물을 받은 당사자들은 물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제삼자도 함께 행복했다.


교육현장3


12월 3일 토요일 아침, 숙소에서 대회 전 마지막으로 발표 연습을 했다. 김알리나는 어제까지 여행객이더니 이제 현실로 돌아왔다. 함께 한 엄마와 교사는 그저 응원하며 지켜봐 줄 뿐이다. 모든 것은 13살 김알리나의 몫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이 학생들은 얼마나 성장하고 또 얼마나 좌절을 경험할까. 오후 1시부터 시작되는 쓰기 대회, 개회식을 위해 숙소를 나섰다. 영하 25도라 오히려 햇살이 참 좋다. 올해 바로네즈 겨울 날씨는 최악이다. 내내 눈과 비, 안개로 우중충함 속에 살다가 햇살을 보니 신선하고 너무 좋았다.

대회가 열리는 카잔연방대학 내부는 각 도시에서 온 학생들도 가득했다. 쓰기 시험 후에 개회식이 진행되었고 그 후 본격적인 말하기 대회가 시작되었다. 대학부는 알렉산드르 1세 기념 홀에서, 학생부는 강의실에서 대회가 진행되었다. 우파에서 온 11학년 학생에 이어 두 번째로 김알리나가 발표했다. 3분 30초, 이 시간을 위해 지난 4개월 최선을 다했다. 또박또박 큰 소리로 연습 때처럼 잘했다. 무엇보다 떨지 않고 담대했다. 이제 결과만 남았다. 김알리나는 여기까지도 참 잘 왔다고 스스로를 토닥인다.


교육현장4


"올해 2월에 전쟁이 터졌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피해 바로네즈로 왔고 내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집, 학교, 친구들 모두 낯설어서 슬펐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드니까 더 한국어가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엄마가 또 도와주셨고 친척을 통해 바로네즈 한글학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 삶에 일어난 기적입니다. 저는 고향에서 한 번도 한국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데 오히려 전쟁을 피해 온 도시에서 한국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여기 와서 한글날, 비빔밥의 날, 김치의 날도 참석했습니다. 처음 먹어 본 한국 비빔밥과 김치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김알리나는 제14회 카잔 한국어 올림피아드 학생부 말하기 부문에서 1등을 했다. 희비가 엇갈리는 심사 결과 시간에 감정을 전혀 드러낼 수 없는 심사위원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김알리나가 1등으로 호명될 때 눈물이 났다. 두 번째 줄에 앉아있는 김비올레따가 김알리나보다 더 크게 보였다. 차분한 기쁨이 담고 있는 의미가 느껴졌다. 1등을 기대하고 이 멀리까지 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1등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김알리나가 1등 상장과 상품으로 좋은 한국 화장품을 받는 내내 김비올레따는 사진기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13살 나이에 전쟁이라는 생애 가장 큰 고난을 겪고 그 시간을 견뎌온 딸의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순간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 보였다. 나중에 바로네즈에 와서 들었다. 엄마는 모든 친척, 지인들에게 1등 수상 사실을 알리느라 그날 밤을 꼬박 지새웠다. 엄마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행동과 정서들이 있다.

"한국어는 어렵지만 재미있습니다. 한국어는 지금 내 삶의 큰 부분입니다. 바로네즈에서 외로울 때마다 한국어와 한국 드라마, 케이팝은 내 친구가 됩니다. 전쟁 때문에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기적의 언어 한국어 때문에 기쁘게 지낼 수 있습니다."

2022년은 지난 15년 삶 속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장기간 계속되는 시국은 한글학교에도 여러모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교사는 머무는 땅에서 그 존재와 사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안다. 그러나 흔들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2022년 12월 한 해를 마감하며 김알리나의 카잔올림피아드 도전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사가 걸어가야 할 사명과 인내 그리고 보람을 평화와 안정의 시간이 아닌 민항기 대신 전투기가 하늘에 굉음을 내며 날아다니는 불안한 일상에서 더 깊이 깨닫는다. 한국어가 뭐길래 그 언어가 전쟁의 고통 속에 있는 한 사람에게 희망과 위로가 될 수 있는가. 그런데 이 땅에는 한국어를 희망과 위로라고 고백하는 김알리나가 수십, 수백 명이 넘는다. 2022년 아직도 끝나지 않는 불행 속에서도 이 땅의 한국어는 학생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고 있다. 그래서 2022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로서 행복한 한 해였다.

"지금 한국어가 없는 제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한국어는 저에게 열정이고 희망이고 위로입니다.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신 엄마와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저의 한국어 사랑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진 출처: 통신원, 김비올레따 제공






서지연
 러시아 서지연
 바로네즈한글학교 교장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상담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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