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576번째 축제일, 러시아 한글학교 한글날 풍경
구분
교육
출처
스터디코리안
작성일
2022.10.19

"한글은 문자이지만 정신이 되기도 한다. 다른 문자와 달리 한글은 창제 동기와 시기가 분명한 문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글을 그저 문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자주적인 정신과 연결 짓는 것이다. 한글은 백성의 아픔을 없애는 소통의 도구였다."

- 조현용 교수, 『우리말의 숲에서 하늘을 보다』중


2022년 10월 9일은 576번째 한글날이다. 세종 28년인 서기 1446년 훈민정음 반포한 세종대왕의 정신을 기리고 한글의 가치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기념일로 지정된 한글날은 대한민국 5대 국경일 중 하나다. 이런 의미를 가진 날임에도 불구하고 학창 시절 한국에서 매년 맞은 한글날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다. 세월 속에 묻혔을 수도 있지만 학교에서 한글날을 성대한 축제일로 축하했던 기억은 더 희미하다. 10월 9일은 10월의 어느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날 대한민국 모든 학생은 세종 대왕께서 선물한 한글로 열심히 수업을 받았다. 통신원이 해외로 이주한 이후인 2013년 한글날은 대한민국에서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되었다. 한국에서 보내 준 달력에 10월 9일이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어 매우 기뻤던 기억이 있다. 훈민정음은 대한민국 국보 제70호다. 1997년 10월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한글은 세계가 인정한 대한민국의 보물이다.


'한글학교'라는 정체성을 가진 한글학교에 한글날은 가장 큰 축제일이다. 576돌 한글날을 맞아 러시아 한글학교들은 크고 작은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 축제, 축하, 웃음, 노래, 춤이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로 총체적 어려운 시국을 지나고 있지만 각 도시 러시아 한글학교들은 최선을 다해 이날을 준비했다. 학생들과 부모, 교사가 하나가 되어, 할머니와 아들 그리고 손자, 손녀가 함께 모여 한글날을 즐겁고 뜻깊은 축제일로 기념했다.


모스크바에서 1,400km 바시키르 공화국 수도 우파의 [우파 한글학교] 한글날, 모스크바에서 1,100km 팔라소브까 마을의 [팔라소브까 한울한글학교] 한글날, 모스크바에서 1,200km 로스토프나도누의 [고려청년학교] 한글날, 모스크바에서 900km 사라토프의 [사라토프 한글학교] 한글날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530km에 있는 바로네즈의 [바로네즈 한글학교] 한글날 풍경을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 우파 한글학교: 한글날 기념행사 '캘리그라피 강좌', '시 낭송-붓글씨 대회'

'시 낭송-붓글씨 대회'


[우파 한글학교](교장: 오경희)는 매주 토요일 '스피킹 클럽'으로 모여 스피커가 강의 형식으로 그날 주제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하고 학생들과 함께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10월 8일 토요일은 제576돌 한글날을 맞아 '캘리그라피 강좌'와 '시 낭송 - 붓글씨 대회'를 열었다. 10월 11일이 바시키르 공화국 공휴일이라 많은 학생이 주말부터 외지로 출타했기 때문에 평소 수업보다 적은 인원이 모였지만 분위기는 여타 모임 이상으로 즐거웠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개설한 온라인 수업 덕분에 1년 전 우파 한글학교와 인연을 맺은 회사원 올렉 씨는 우파에서 500km 거리에 있는 도시 페름에서 한글날 행사를 위해 특별히 방문하여 함께 훈훈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캘리그라피 강좌


시 낭송 대회는 잔잔한 감동이 흐르는 시간이었다. 김춘수의 '꽃'을 비롯하여 한국어 운율을 넣은 참가자의 자작시까지 학생들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쳤다. 대회 1등을 차지한 자작시 주인공은 피니자 씨다. 그는 물리 교사 출신으로 현재는 우파 한글학교에서 나이를 뛰어넘는 학구열과 BTS 공식 팬클럽 '아미'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늦깎이 학생이다. 특히, 이번 시 낭송 대회 1등 상품으로 준비된 'BTS와 함께하는 한국어 교재'를 받아 참석자 모두에게 큰 부러움을 샀다. 모두에게 큰 감동을 안겨 준 피니자 씨의 자작시를 소개한다.


Кружевные корейские сны
- Финиза Рахметова

Тра́вы пахнут в июле- нет мо́чи,
И душа замирает во сне.
И так сладко звенит колокольчик
사랑해...사랑해...사랑해...

Ночь ступает ногами босыми,
Звуки ночи чисты и нежны.
Отчего же мне снятся в России
Кружевные корейские сны?

Это всё волшебство, не иначе!
И тот ангел, приснившийся мне..
От чего? От чего же я плачу?
И шепчу:
미안해...미안해...

Утром ранним растают виденья,
Но в тот миг,
пробуждаясь от сна,
Я услышу слова утешенья
내 사랑, 괜찮아...괜찮아...

황홀한 한국의 꿈

7월의 진한 풀냄새
영혼이 꿈에서 얼어붙는다.
그리고 달콤하게 울리는 벨 소리
사랑해....사랑해... 사랑해...

밤이 맨발로 걷는다
순수하고 부드러운 밤의 소리
러시아에서 내가 황홀한 한국을 꿈꾸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모든 것이 마법,
나를 꿈꾸게 하는 그 천사
무엇 때문에 나는 울고 있을까
그리고 작은 속삭임
미안해....미안해...

이른 아침 시야가 녹는다.
그 순간
잠에서 깨어
위로의 말을 듣는다.
내 사랑, 괜찮아... 괜찮아...


■ 팔라소브까 한울한글학교: "한글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로 약속해줘요"♩♬♪

비빔밥만들기 행사


팔라소브까 한울한글학교(교장: 천미영, 담당 교사: 최애란) 한글날은 즐겁고 맛있는 축제일이 되었다. 한글날을 기념해서 행사 이후 비빔밥을 함께 먹는 시간을 가졌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식재료들을 학생들 각자가 집에서 요리해 왔다. 행사가 끝난 후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후라이 한 달걀을 밥과 채소 위에 올려 함께 힘을 합쳐 만든 비빔밥을 먹으며 즐거운 한글날을 마무리했다.

10월 8일 오후 3시 최애란 담당 교사의 축사로 한글날 행사가 시작되었다. 최애란 선생님은 모스크바 한울학당 천미영 교장님의 제자로 현재는 모스크바를 떠나 고향인 팔라소브까에 한울학당 분교를 열고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최애란 선생님 제자인 사피아 교사는 올해부터 아이들 그룹을 맡아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행사 당일 '한글 창제'라는 주제로 참석자들에게 의미 있는 강의를 해 주셨다. 강의가 끝난 후에 빅토리아 교사는 학생들이 강의를 잘 경청했는지 퀴즈를 냈다. 가장 많은 문제를 맞힌 학생은 한국 전통 문양을 수놓은 필통을 상품으로 받았다. 행사 하이라이트는 고학년 학생들의 공연, 참석자들 앞에서 '한글송 - 하리'를 율동과 함께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한글송의 경쾌한 리듬과 가사는 한글날을 기념하기 위해 참석한 모든 학생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은 국보 70호죠. 조선의 제4대 왕 세종대왕님께서 만드셨죠.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표기 체계 한글보다 뛰어난 문자는 없죠.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
1997년. 세상에 어쩜 이렇게 신비한 걸 만드셨을까요? 우리가 앞장서 지켜 가야겠죠!
한글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로 약속해줘요.


■ 고려청년학교: 한글날 행사와 한국 민속문화행사

한글날 행사

고려청년학교(교장: 엄 알렉산드르)는 로스토프나도누 한국문화원 등록 한글학교로 2010년에 설립되었다. 로스토프나도누는 돈강에 있는 러시아 남쪽 도시로 고려인이 많이 거주하는 대표적인 도시다. 엄 알렉산드로 교장님은 대한민국 명절과 국경일을 고려인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특히, 4년 전부터는 10월 9일 한글날을 한글학교의 축제일로 정해 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도 576돌 한글날을 맞아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최리마 교사와 마리아나 교사는 참석자들에게 '조선 시대 - 세종대왕 한글을 만들다'라는 제목의 한글날 특집 영상을 보여주면서 한글날의 의미에 대해 강의를 했다. 강의 후에는 학생들이 쉽게 한글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날 특집 애니메이션 '훈민정음의 창제와 반포, 세종대왕의 업적'을 통해 한글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민족문화 행사


한글날 오후에는 로스토프나도누 111번 학교의 요청으로 한국 민속문화행사를 진행했다. 고려청년학교는 현재 로스토프나도누와 주변 도시에 있는 5개 공립학교에서 정기적으로 한국을 알리는 문화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본 행사들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한글학교와 한국을 알릴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고 있다. 올해도 문화 행사를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100여 명의 학생이 고려청년학교 한국어 수업에 관해 문의했다. 한국에 관한 관심은 매년 늘어나 고려청년학교에 많은 학생이 찾아오지만, 그 숫자에 비해 교사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 점이 현재 고려청년학교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한복과 한국 음식 그리고 러시아 전통 의상과 각 소수 민족의 의상들이 조화를 이룬 한국 민속문화 행사, 그날이 바로 한글이 만들어진 한글날이라고 소개하며 고려청년학교는 뜻깊은 한글날을 보냈다.


■ 사라토프 한글학교: 힘든 우리를 위로하며, 풍성하게 먹고 즐긴 한글날

40여 명의 학생과 학부모님을 모시고 한글날 행사


사라토프 한글학교(교장: 빈일숙)는 10월 8일 토요일 40여 명의 학생과 학부모님을 모시고 한글날 행사를 진행했다. 올해 한글날 주제에 대해 질문했다. "모두 너무 힘들고 위축되어있는 시국이라 참석자들이 많이 웃고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한글을 놀이를 통해 배우고 또 풍성히 배부르게 먹으면서 한글날을 축제일로 느끼면 좋겠습니다." 교장님의 진솔한 고백이다. 그동안 사라토프 한글학교 행사를 전적으로 맡아 진행하던 허 나스짜 선생님이 일신상의 이유로 다른 나라로 잠시 이주하면서 올해 한글날 행사는 레나 교사가 맡았다. 레나 교사는 한글날 광고부터 한글날 강의 그리고 이어진 한글날 관련 작품 만들기까지 한글날을 즐거운 축제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올해 사라토프 한글학교에서 처음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초급반 학생들이 많다. 이들을 위해 레나 교사는 한글 자음은 소리를 내는 목의 기관과 입술 모양으로 만들어졌음을 강조하며, 자음 14개의 모든 발음 기호를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강의 후에는 자음과 모음을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익히기 위해 한글로 작품 만들기 시간을 가졌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모음이나 자음을 선택해서 그것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다. 교사들이 이 시간을 계획하면서 '학생들에게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 염려가 무색하게 학생들은 뛰어난 창의력을 총동원해서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학생의 'ㅁ' 자음은 멋진 텔레비전으로 재탄생했다.


한글날 행사현장


■ 바로네즈 한글학교: 눈귀손으로 배우는 한글날, 비빔밥의 날

한글날 행사


바로네즈 한글학교는 10월 9일 '한글날은 축제일이다'라는 주제로 576돌 한글날 행사를 진행했다. 코로나19 시국에도 온라인으로 한글날 행사를 진행했을 정도로 바로네즈 한글학교에서 한글날은 중요한 날이다. 한글날 행사는 눈귀손을 총동원했다. 먼저 한글날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한글날 강의는 역사적 맥락 설명이 필수이기 때문에 비디오를 통해 쉽게 한글 창제와 세종 대왕에 대해 배웠다. 그 후에 강의를 들었다. 애니메이션으로 된 한글과 세종대왕에 관한 만화를 본 후에 강의를 들으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비디오를 보고 강의를 경청한 후에는 비디오와 강의를 통해 배운 한글날에 대한 상식을 확인하는 쿠즈 시간을 가졌다. O와 X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 학생들 덕분에 모두 크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세종대왕께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중, 고급반 학생들은 한국어로, 초급반 학생들은 러시아어로 세종대왕께 편지를 썼다. 어떤 학생들은 짧은 단문으로, 또 어떤 학생들은 제법 긴 문장으로 모두 정성스럽게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께 감사의 편지를 썼다. 올해 한글날 참석자들의 고향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다양하다. 다양함 속에서 한글로 하나 된 한글날 풍경을 보고 세종대왕님은 얼마나 기뻤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주일 동안 편지를 좀 더 다듬은 후에 다음 수업 시간에 함께 나눌 예정이다.


비빔밥 만들기 행사


바로네즈 한글학교 행사 후에는 반드시 맛있는 음식이 기다린다. 코로나19 여파로 3년 동안 진행하지 못한 '비빔밥의 날' 행사를 한글날과 함께 진행했다. 한글날을 기념하러 모인 학생들보다 비빔밥과 김치, 된장국이 그리운 학생들이 더 많은 듯 보였으나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비빔밥은 러시아 음식 문화와 많이 다르다. 매년 바빔밥의 날에 밥과 채소를 따로 먹는 학생들이 나온다. 그 경험 후에 비빔밥을 교사들이 직접 비벼서 각자 그릇에 담아주는 것이 더 효과적임을 깨달았다. 고추장의 양을 조절하여 매운맛과 덜 매운 맛으로 나누는 지혜도 필요하다. 행사를 진행하면서 터득하는 노하우들이 제법 많아진다. 올해 참석한 학생들 반 이상은 드라마에서만 보던 비빔밥을 직접 먹어보았다며 감격해했다. 러시아 국과는 전혀 다른 맛인 된장국도 그렇게 잘 먹고 매운 김치는 쌓인 스트레스를 확 풀어준다며 순식간에 동이 났다. 3년 만에 다시 대면으로 진행한 바로네즈 한글학교 576돌 한글날은 오감이 즐거운 축제일의 임무를 달성하고 막을 내렸다.

2022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마치고 러시아 한글학교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즐거움이 없는 현재 삶에 한글날이 큰 기쁨이 되었다고 학생들이 감사한다. 한글날은 역사인데 그 역사는 그렇게 재밌다고 감탄하는 학생들이 고맙다. 576년 전 조선 시대 창제된 훈민정음은 그 당시 백성의 가난과 무지의 아픔을 없애는 소통의 도구였다. 2022년 10월 9일 한글도 러시아 한글학교들에게 현재의 아픔과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위로며 소통의 도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축제일이 아닌, '그렇기 때문에'의 축제일이 되기를, 내년 577돌 한글날에 대한 소망을 한 해 앞서 하늘에 올려본다.


서지연
 러시아 서지연
 바로네즈한글학교 교장
 청강문화산업대학 상담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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