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인터뷰] 취리히에서 한국 도자전을 선보이다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2.10.25

지난 9월 말 통신원은 베른 한국 대사관으로부터 취리히에서 한국 도자전이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이번 도자전은 '오래된 현재(Past Tense): 한국 현대 도자전'이라는 타이틀로 취리히 중심부에 위치한 올드시티 세 곳의 갤러리에서 10월 한 달간 개최된다.


< 취리히에서 선보이는 'Past Tense' 한국 도자전 - 출처: 통신원 촬영 >

< 취리히에서 선보이는 'Past Tense' 한국 도자전 - 출처: 통신원 촬영 >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우유 빛깔의 오밀조밀한 작은 소품에서부터 코발트 연료로 꽃과 새 무늬를 그려 넣은 다기 세트, 벽걸이 액자, 가는 선을 층층이 쌓아 올려 선의 흐름을 강조시킨 화병, 마치 큰 붓이 스쳐 지나간듯 유약이 흘려내린 듯 한 모습을 담은 달항아리, 회백색의 빛을 덮고 손자국을 하나하나 남겨 마치 무늬를 품은듯한 푸프(Pouf) 스타일의 도자 공예품까지 저마다 오묘한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실 도자기하면 흔히 전통 청자, 백자, 분청 사기를 떠올려 고미술이라 생각하고 자칫 무겁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해 세련되면서도 단아하고 우아하면서도 독창적인 아름다움에 또 한 번 빠져들게 만든다.


< 취리히에서 선보이는 'Past Tense' 한국 도자전 - 출처: 김유진 큐레이터 제공 >

< 취리히에서 선보이는 'Past Tense' 한국 도자전 - 출처: 김유진 큐레이터 제공 >

< 취리히에서 선보이는 'Past Tense' 한국 도자전 - 출처: 김유진 큐레이터 제공 >


그동안 스위스에서 한국 도자만으로 전시회가 개최되는 일은 흔치 않았기에, 이번 전시회를 주최하신 김유진 큐레이터를 직접 만나 인터뷰 기회를 가졌다.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한국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독일에서 미술사 공부를 시작해 스위스에서 현대 미술사 박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약 8년 전부터 예술자산관리(ArtEstate Management)라는 예술가들의 사후에 상속 작품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미술사적 연구를 통해 작가의 핵심 작업과 그 의미를 해석하고 작품들의 가치를 높이거나 유지하기 위해 미술 시장에서의 전략을 세워 펀드레이징합니다. 그러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시장에 소개하는 일을 자연스레 병행하게 됐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큐레이팅, 전시 기획을 통해 대중에게 작품의 새로운 의미를 알리거나 작가의 숨겨진 면모를 알리는 것은 이 일의 중요한 부분의 하나입니다. 전시 기획 및 개최 그리고 작품들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걸 깨닫고 다른 전시 프로젝트들도 하게 됐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미술사가이기에 미술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4년 전 도자를 취미로 시작하면서 한국 도자와 유럽 도자가 역사적으로나 제작 방식에서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돼 관심을 갖고 더 공부했습니다. 사실 한국 현대 도자는 스위스에서 전시도 없었을뿐더러 잘 알려지지도 않았기에 이번 전시를 본격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이번 전시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번 전시는 총 8인의 작가의 70여 점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작업들이 전통적 도자의 무늬, 형태 그리고 기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을 공통으로 하지만 시각적으로 서로 다른 점이 돋보이는 개성 있는 작업들을 선정했습니다. 생활 도기와 예술적 오브제 작업도 차별 없이 동시에 전시했습니다. 현대 도자에서 어떤 것은 식기이고 또 어떤 것은 예술 작품이라는 기준은 이미 모호한 것이기 때문에 엄격한 구분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이러한 다양성에도 전시가 하나의 테마를 중심으로 모일 수 있었던 것은 김성은 작가님의 공간 설치가 큰 몫을 했습니다. 런던에서 활동하시는 김성은 작가님은 기존 받침대 위에 하나하나의 작업을 올려놓는 전형적 화이트 큐브식 전시 방법을 떠나, 동양의 식생활 또 생활 문화의 중심에 놓인 낮은 탁자를 연출의 기반으로 선택했습니다. 그 탁자 위에는 과거의 흔적을 연상시키는 판화가 테이블보처럼 설치돼 있습니다. 세 공간은 서로 다른 특징과 역사를 갖고 있지만 테이블 디자인을 통해 하나의 주제로 이어집니다. 8명의 도자 작업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색이나 형태로 연결돼 마치 대화를 나누는 듯 테이블 위에 연출됐습니다.

작가들과 연결해 작품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연리문를 물레 돌림과 연결해 고급스러운 단아함과 모던한 느낌을 갖춘 백소율 작가님 작품들은 아주 평판이 좋습니다. 차명승 작가님의 작품들은 꽃과 새를 그리는 전통 '화조도'를 현대식으로 변형해 코발트 연료를 넣어 도자 안에 그려넣는 방식으로 현대와 전통, 그리고 동서양의 만남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도예계의 중추로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이수종 작가님의 작품들도 여러 점 선보이고 있습니다. 본래 분청사기로 유명한 이수종 작가님의 작품들은 그 명성만큼이나 무게감과 함께 자유롭고 파격적인 독창성이 눈에 띕니다. 독일에서 부부 도예가로 활동하는 신유경 작가님과 강기호 작가님의 작품들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도자 표면에 손끝으로 자국을 남기는 독특한 기법을 선보여 생활 용기이면서도 예술적인 면모를 갖춘 작품로 유럽에서도 여러 수상 경력이 있으십니다. 조신현 작가님의 작품은 선의 흐름을 강조해 미세한 선들이 모인 듯한 인상을 줍니다. 강지연 작가님은 우유 빛깔의 도자 특유만의 색감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감각에 맞춰 작품들을 선보이십니다. 손호규 작가님의 작품에는 형태의 오묘함을 담겨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약간씩 비틀어진 모형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 이번 전시회를 주관하신 김유진 큐레이터 - 출처: 통신원 촬영 >

< 이번 전시회를 주관하신 김유진 큐레이터 - 출처: 통신원 촬영 >


한국 도자와 유럽 도자를 비교해 특별한 점이 꼽자면 무엇인가요?
사실 유럽 도자 역사도 꽤 오래됐습니다. 현대 미술사에서 20세기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나 그 외의 조형 학교들이 출현하면서 도자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스위스의 경우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디자인이 뛰어난 생활 용기로 자리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한국 도자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고 볼 수 있겠죠.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한국인 특유의 미의식은 도자 예술에서 그 빛을 발휘합니다. 선비의 미학을 대표하는 조선 백자나 서민의 구수함과 자유로운 정신이 담겨있는 분청은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입니다. 기술과 디테일 측면에서 한국 도자는 여전히 훌륭합니다. 섬세하면서도 창의적이고 독특한 기법은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유럽에서도 평판이 좋다고 봅니다.

이번 전시회를 개최한 취지는 무엇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8인의 작가 분들의 성향이 다르기는 하지만 전통 기술, 무늬, 주제 등을 현대적으로 어떻게 재해석하고 있는지 한국 현재 도예의 주소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표현의 다양성과 독창성 그리고 기술적 독특함이 유럽의 도자들과는 또 다른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시 타이틀인 파스트 텐스(Past Tense)는 과거형이라는 문법적 지칭이기도 하지만 제목을 통해 현재가 과거와 맺고 있는 긴장감 있는 관계를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과거 또는 전통은 그저 지난 것이 아니고 오늘날의 해석을 통해 항상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취리히에서 선보이는 'Past Tense' 한국 도자전 - 출처: 통신원 촬영 >

< 취리히에서 선보이는 'Past Tense' 한국 도자전 - 출처: 통신원 촬영 >


현대 도자 미술 트렌드를 어떻게 보시나요?
트렌드를 딱 규정할 수는 없을 만큼 아주 다양합니다. 도자의 경우 흙이라는 자연에서 온 물질과 유약이라는 화학 약품의 만남에 기법을 더해 이루어지는 예술이기에 무한정의 다양성이 존재하고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현대 도자는 패션, 가구 디자인, 설치 미술 등의 여러 분야와 합작으로도 많은 활동이 있습니다.

스위스 도자 예술 시장은 어떤가요?
미술 시장에서 현대 도자의 자리는 무척 작다고 생각합니다. 바젤 아트 페어나 프리즈에서도 도자를 기반으로 한 작업들은 절대적으로 작은 수를 차지합니다. 그만큼 컬렉터 층을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많은 전시를 통해 현대 예술 역사에 도자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전시회 반응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많이들 좋아하시고 첫 날부터 예약 및 판매도 꽤 됐습니다. 스위스에서는 한국 도자가 그리 알려지지 않았기에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특히 선의 흐름을 강조한 조신현 작가님의 연리문 특허 기술은 많은 관심과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차명승 작가님의 도자와 회화를 연결한 작품들도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한국 관련 전시를 계획하고 계신가요?
내년에는 바젤의 라파즈 뮤제움(Rappaz Museum)에서 스위스 그래픽 디자인에 관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도자 전시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아직은 한국 관련 전시를 계획하고 있지는 않지만 계속 추진해야 할 듯합니다.

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김유진 큐레이터 제공






박소영

성명 : 박소영[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위스/프리부르 통신원]
약력 : 현) EBS 스위스 글로벌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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