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말레이시아 영화사의 상징 피람리 사망 49주년을 맞아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2.06.13

5월 29일 말레이시아에서는 49년 전 같은 날 사망한 피람리를 기리는 기사가 쏟아졌다. 말레이시아 영화사의 상징적 인물인 피람리(P. Ramlee)는 1957년 영화 <나의 아들 사잘리(Anakku Sazali)>로 아시아 필름 페스티벌 최고 남자배우상을 받았고, 1959년 연출작 <노총각 전사(Pendeka Bujang Lapok)>로 베스트 아시아 코미디 필름상을 수상하는 업적을 남겼다. 피람리는 10대 시절부터 밴드 멤버로 활동하며 작곡가, 연주자, 가수를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왔다. 20대에는 말레이시아 최초의 영화를 연출한 라즈한스(Rajhans)의 눈에 띄면서 영화계에 발을 딛게 됐다. 그의 20대 시절은 곧 말레이시아 영화사의 황금기이기도 하다. 그는 1950년 <헌신(Bakti)>에서 주연을 맡아 말레이시아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극중 직접 노래를 불렀고, 1955년까지 27개 작품에 출연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말레이시아 영화 부흥기를 이끈 피람리가 1948년부터 1962년까지 참여한 영화 - 출처: 통신원 촬영>

<말레이시아 영화 부흥기를 이끈 피람리가 1948년부터 1962년까지 참여한 영화 - 출처: 통신원 촬영>


인상 깊은 대목은 그의 성공적인 영화음악 활동이다. 피람리는 배우는 물론 작사·작곡가이자 가수로 활동하며 500여 곡을 썼다. 그가 출연한 <항투아(Hang Tua)>는 1957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후보작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항투아>에 삽입된 피람리의 음악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최고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불모지에 가까웠던 말레이시아 영화계는 피람리를 시작으로 영화와 음악을 접목시킨 다양한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다. 그는 음악가와 배우를 넘어 감독에 도전하며 말레이시아 영화사를 대표하는 인물로도 활약했다. 피람리는 1955년 개봉한 첫 연출작 <트라이쇼 맨(Penerek Becha)>으로 올해의 최고 말레이 영화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감독으로 데뷔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베스트 코미디상을 수상한 코미디 영화 <노총각 전사(Pendeka Bujang Lapok)>를 제작하며 말레이시아 대표 감독으로 이름을 알렸다. 피람리는 작품 62편에 출연을 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 33편을 연출하며 말레이시아 영화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는 새로운 영화 제작 계획을 밝히며 영화에 애정을 드러냈지만, 1973년 5월 29일 향년 44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986년 말레이시아 국가 아카이브가 설립한 피람리 기념관 - 출처: 통신원 촬영>

<1986년 말레이시아 국가 아카이브가 설립한 피람리 기념관 - 출처: 통신원 촬영>

<1986년 말레이시아 국가 아카이브가 설립한 피람리 기념관 - 출처: 통신원 촬영>


말레이시아 영화계는 영화사의 부흥을 이끈 피람리를 기리고자 1986년 피람리 기념관을 설립했다. 말레이시아 국가 아카이브는 피람리가 사망할 때까지 그의 아내 살로마와 살던 집을 매입해 피람리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국가 아카이브는 기념관을 세 차례 보수하고 피람리의 사진과 유품 등을 전시했다. 또한 미디어 자료로 피람리의 작품을 영상으로 볼 수 있도록 꾸몄고, 피람리가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미니어처로 재현했다. 이밖에도 피람리가 생전에 사용했던 피아노와 바이올린, 타자기, 악보와 쿠알라룸푸르에서 타고 다녔던 차량을 전시해 피람리를 기리고 있다. 기념관 관리자인 다슬리아는 《Free Malaysia Today》와의 인터뷰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한 전시물로 피아노를 꼽았다. 피람리가 생전 좋아하고 즐겨 치던 손때 묻은 악기로 그의 대표곡이 탄생했던 오래된 피아노이기 때문이다. 이밖의 그가 아내이자 유명 가수였던 살로마와 살던 거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고, 살로마의 화려한 이브닝드레스와 피람리의 일상용품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피람리가 생전에 사용한 피아노 (좌), 피람리와 살로마가 살던 거실 (우) - 출처: 통신원 촬영>

<피람리가 생전에 사용한 피아노 (좌), 피람리와 살로마가 살던 거실 (우) - 출처: 통신원 촬영>


<2021년 KFC가 출시한 피람리 버거 - 출처: 'Marketing Interactive'>

<2021년 KFC가 출시한 피람리 버거 - 출처: 'Marketing Interactive'>


피람리의 인기는 쿠알라룸푸르 중심가와 페낭 등 말레이시아 곳곳에 그의 이름을 따온 거리명이 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사망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말레이시아 이발소에는 피람리의 사진이 붙어 있다. 2021년에는 KFC가 피람리 버거를 출시해 오늘날까지도 피람리가 말레이시아에 미치는 파급력을 느낄 수 있다. 말레이시아 영화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 피람리는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피람리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말레이시아 영화와 음악, 예술과 더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Free Malaysia Today》 (2022. 5. 29.).
https://www.freemalaysiatoday.com/category/leisure/entertainment/2022/05/29/p-ramlee-memorial-gallery-a-peek-into-the-legends-life




홍성아

성명 : 홍성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말레이시아/쿠알라룸푸르 통신원]
약력 : 현) Universiti Sains Malaysia 박사과정(Strategic Human Resource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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