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판소리 공연자들과 콜라보 작업한 아프리카 래퍼들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2.05.02

지난 4월 22일(금), 한국문화원LA(원장, 정상원)에서 열린 <한·흑 특별 교류전시, 피닉스 프로젝트: 1992년부터 이어지는 대화(Phoenix Project: Continuing the Dialogue from 1992)> 개막 행사에서 아프리칸 아메리칸 청년 헤지(H.E.Z.Y. 본명 엘리아스 퍼거슨 Elias Ferguson 21세)는 한인 판소리 공연자들과 함께 멋진 콜라보 무대를 펼쳤다. 자신이 가사와 멜로디를 쓴 노래와 함께 <아리랑>,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한국 전통의 판소리, 북연주와 함께 협업한 래퍼의 무대로 만나는 경험은 남달랐다. 

 

1990년 LA 폭동 당시 주류사회의 언론 매체는 아프리칸 아메리칸과 코리안의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편향된 시각의 보도를 계속했었고 그 결과, 분노한 일부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에 의해 수많은 한인 동포들의 삶의 터전은 잿더미로 변했었다. 한인들은 그 폐허의 땅을 딛고서 다시금 분연히 일어섰고 한흑간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아프리칸 아메리칸 커뮤니티에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올해는 LA 폭동이 일어난지 벌써 22년째가 되는 해이다.  LA 한국문화원에서는 한흑갈등을 치유하려는 지속적 노력과 시도의 일환으로 <피닉스 프로젝트>를 마련한 것이다. 

 

래퍼인 헤지는 이번 전시회에 메인 큐레이터로 참여해 1년간 함께 작업해온 어머니 릴리 버나드(Lili Bernard) 덕에 개막 행사에서 한국 전통음악인들과 합동 무대를 꾸미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그의 어머니는 미국의 시트콤에도 출연한 바 있는 배우이자 아티스트이다. 아들인 헤지 역시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디지털 아티스트, 뮤지션, 시인, 배우, 패션 모델, 패션 디자이너 등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훤칠한 키에 날렵한 몸매를 가진 헤지는 지난 1월, LA 영사관에서 있었던 이벤트에서 한복 모델로도 활약한 경험이 있다. 

 

그는 자신과 한국인 뮤지션들이 꾸민 무대에 대해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음악인 힙합과 한국의 판소리를 결합한 것'이라며 '지난 LA 폭동 때 있었던 한흑 갈등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악수이자, 포옹'이라고 평가했다. 직접 만든 노래를 듣고 싶다는 통신원의 부탁에 헤지는 BTS의 노래 제목과 같은 자작곡 <검은 백조(Black Swan)>를 들려주었다. 흑인으로 태어나 주류사회에 속하지 못하던 자신을 검은 백조로 상징하는 내용의 랩이었는데 빠른 속도로 이어지는 가사 속에서 신기하게도 한국인들의 고유한 정서인 '한'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작업을 해왔으며 본격적으로 뮤지션이 된 지는 2년 정도가 된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그림을 그리고 예술적 작업을 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라난 그는 어릴 때부터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했다고 회고한다. 소셜미디어와 함께 자라온 세대답게 그는 자신의 음악을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타이틀 등 여러 음악 플랫폼에 올려놓았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등 여러 SNS에도 공유해 놓았다. 네티즌들로부터 반응이 있느냐는 질문에 "동료 뮤지션들이 함께 콜라보 작업을 하자고 많이 연락해온다"며 매일 매일 그의 음악을 찾아듣는 이들의 숫자가 늘어간다고 말한다. 그의 음악은 미국 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코카시안, 아프리칸 청취자는 물론 아시안, 히스패닉 청취자도 접속해온단다. 연령대로는 16- 29세 사이가 가장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마도 그가 삶 속에서 느끼는 경험에 깊게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껏 수많은 음악을 들어왔지만 한국의 판소리는 그에게 있어 전혀 새로운 장르였다. 그는 판소리를 듣고서 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라는 인류 공통의 언어를 통해 인류애적 연결됨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는 "힙합 음악을 듣거나 자신이 직접 창작하는 작업을 통해 조상들의 영혼과 연결된다는 느낌을 갖는데 한국의 판소리를 듣고도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감상을 밝혔다. 또한 함께 공연한 이들에 대해 '나의 음악세계를 존중해주고 좋아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LA 폭동이 일어났던 1992년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2000년생이지만 한흑 커뮤니티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를 비롯해 LA 폭동에 대해 학교에서 많은 것을 듣고 교육받았다. 그는 한인타운 인근에 있는 사립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30년 정원의 한 클래스에 17명 정도가 한국인일 만큼 한국인 급우와 친구들이 많았다고 회고한다. 한국인 친구 집에 놀러가서 불고기를 맛봤고 지금도 불고기와 한국식 바비큐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란다. 물론 비빔밥과 김치도 좋아한다며 눈빛을 반짝이는 그는 한인 친구와 그 어머니의 친절함, 그리고 넉넉한 나눔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한국인 친구들과 좋은 교우관계를 가졌기에 성장기에는 한흑간의 갈등에 대해 별로 느끼지 못했었지만 성인이 되고서야 그런 골 깊은 아픔과 상처가 양 커뮤니티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LA에서는 '흑인인권운동(Black Lives Matter Movement)'과 함께 아시안 혐오 범죄가 일어났다. 서로 다른 문화적 공동체 사이에서 이러한 갈등이 일어나긴 했지만 더 많은 이들이 서로를 도와주고 지원하며 연대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에 열린 한국문화원LA의 <피닉스 프로젝트> 역시 그런 움직임 중의 하나라고 믿는다. 

 

'이번 문화원 행사는 서로 해치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공감하고 도와주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예술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죠. 이번 전시에 출품된 한인 작가들의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거든요. 음악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가사를 전혀 모르지만 뭔가 강렬한 것이 가슴에 직접 와닿는 것을 느꼈습니다. 음악은 정말 인류 공통의, 다른 문화적 공동체를 하나로 엮어줄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해요.' 

 

그는 미국의 래퍼 세이지 엘세서(Sage Elsesser)의 랩을 좋아한다. 엘세서의 음악에서 엿볼 수 있는 어린시절은 그의 성장기를 참 많이 닮아 있다. 그리고 세이지 엘세서 역시 헤지처럼 아프리칸 조상들에 대해 비슷한 이해를 하고 있고, 영적인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고 느낀다. 코카시언 래퍼인 에미넴(Eminem)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어린 시절 많이 들었다"며 그의 음악세계를 존중한다고 말한다. 케이팝에 대한 경험을 묻자 "요즘 정말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죠"라며 학교 다닐 때 브라운 아이드 걸즈의 노래를 많이 들었고 학교의 탤런트쇼에서 그녀들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익힌 춤을 무대에서 친구들 앞에 보여줬던 적도 있다고 한다. 자신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케이팝이 얼마나 현재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는지 여러 차례 강조하며 BTS 열풍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K팝 노래에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는 랩 파트에 대한 그의 의견은 이렇다. 

 

'힙합 문화가 아시아에 큰 영향을 미쳐 아시아인들이 힙합을 좋아하고 즐기고 따라한다는 것에 대해 고맙게 느낍니다. 이는 제 문화의 배경을 많이 좋아해주고 인정해준다는 것을 의미해요. 특히나 그 문화를 케이팝 아티스트 나름대로의 해석을 더해 자신들의 음악에 활용해주는 것이 우리 아프리칸 아메리칸들를 더욱 성장하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BTS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어봤다. 

 

'BTS의 노래도 들어봤고 뮤직비디오도 봤어요. 정말 대단합니다. 지속적인 연습이 만들어내는 완전한 음악과 안무는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죠. 들을 때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이 래퍼라 BTS의 랩 파트도 주의 깊게 들어보는데 정말 잘 만들었고 연습도 많이 했겠구나, 싶어요. 정말 뛰어나요. 뿐만 아니라 BTS 멤버들의 패션과 스타일은 너무 멋있어서 저를 자극합니다. 남성들의 화장은 미국에서 아직은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죠. 하지만 BTS는 미국 전체 문화에 새로운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저는 그것이 무척 쿨하다고 생각해요.' 

 

20대 초반의 미국 인디 래퍼를 통해 듣는 K팝에 대한 평가는 찬사 일색이었다. 그를 통해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와 아프리칸 아메리칸 커뮤니티 사이의 갈등과 대결을 예술과 문화를 통해 이해와 연대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LA 한국문화원이 LA 폭동 22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별 전시 작품들 앞에 포즈를 취한 아프리칸 아메리칸 청년 헤지>

<LA 한국문화원이 LA 폭동 22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별 전시 작품들 앞에 포즈를 취한 아프리칸 아메리칸 청년 헤지>


<전시 작품 앞에 선 헤지>

<전시 작품 앞에 선 헤지>


<함께 콜라보 공연을 하는 서연운 소리꾼과 함께>

<함께 콜라보 공연을 하는 서연운 소리꾼과 함께>


<특별전시회 오프닝 행사 날의 헤지>

<특별전시회 오프닝 행사 날의 헤지>



※ 사진 출처: 통신원 촬영


박지윤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약력 : 현)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요가 지도자 '4시엔 스텔라입니다.' 진행자 전)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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