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한국의 이야기를 번역하다: 자넷 홍 인터뷰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2.04.04


<번역가 자넷 홍>

<번역가 자넷 홍>


한 이야기가 다른 언어로 번역된다는 것은 이야기 속 단어들이 치환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팽팽한 긴장감, 너덜너덜한 비통함, 정교한 슬픔, 복잡하고 깊이 있는 아름다움과 같은 세밀한 감정뿐 아니라, 역사적이고 특수한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만들어지는 다중적인 요소들이 스토리 속에 스며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한국 드라마, 케이팝 그리고 음식과 뷰티와 같은 영역은 각 장르가 가진 특성에 스토리가 더해지고 거기에 시각적인 요소가 부각되는 반면, 문학 장르의 경우, 온전히 텍스트가 텍스트로만 전달되기 때문에 타국과의 문화 교류가 이루어지는 다른 장르에 비해 번역가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이야기 속에 담긴 내밀한 감정과 이야기의 맥락과 흐름은 한 사회가 오랫동안 구축해 온 역사와 문화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것들, 즉 사건과 현상 아래의 것들로 이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캐나다에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의 문학 작품들과 그래픽 노블들을 번역해 온 이가 있다. 캐나다라는 국가적 경계에 머물지 않고, 미국과 영국 등 영미권 시장 전역에서 오랫동안 인정받아 온 자넷 홍 번역가를 만나 이야기를 번역한다는 것의 의미와 번역의 현실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캐나다 벤쿠버에서 문학과 역사를 좋아하며 자란 자넷 홍은 한국적 문화유산을 좀 더 깊게 알고자, 브리티시콜롬비아 대학(UBC)에서 한국 언어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어릴 적 모국에 대한 아득한 향수로 시작한 언어 수업은 예상과 달리, 언어 자체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한국의 유명한 단편 소설들을 읽으면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당시 UBC의 로스 킹(Ross King) 교수는 황순원, 최인호, 오정희 등의 한국 단편 소설을 읽으면서, 학생 스스로 한국문학을 조사하고 번역하면서 한국어에 대한 감각을 익혀나가도록 했다고 한다.

 

특히 수업의 마지막 과제는 아직 영어로 번역되지 않는 한국 단편 소설을 골라 번역작업을 해야 했는데, 마침 어머니가 추천한 하성란 작가의 <옆집 여자(The Woman Next Door)>를 번역했고, 이를 본 로스 킹 교수의 제안으로 《코리안타임즈》 공모전에 이를 제출하게 된다. 결국 자넷 홍의 첫 번역작품은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하게 되고 이는 자넷 홍이 번역가이자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자연스러운 관문이 되었다.

 

이에 자넷 홍은 “한국문학 전문 번역가가 된 것에는 UBC 대학의 로스 킹 교수, 브루스 풀턴(Bruce Fulton) 교수의 가르침과 도움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실제 함께 수업을 받던 학생들 중 한명이었던 다프나 주르(Dafna Zur)는 현재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한국문학, 한국어린이 문학, 북한 문학 등을 가르치며 영미권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최전방에 서 있기도 하다.

 

이처럼 대학에서 시작된 자넷 홍의 번역작업은 저널과 잡지에 작품들을 꾸준히 기고하며 이어졌지만, 번역된 원고가 직접 출판된 것은 2017년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로 예전에는 한국문학이나 한국 자체에 대한 관심이 캐나다를 비롯한 영미권에 형성되지 않았고, 자넷 홍 본인 또한 책 출판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녀는 “번역가로서 열심히 번역하다 보면, 출판사와 편집자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연락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번역가가 에이전트의 역할까지 하며 출판 과정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했다. 좋은 한국 책을 발견했다고 하면 번역 샘플 작업을 경제적 지원 없이 먼저 해야 하고, 그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계획서를 만들고, 출판했을 때의 예상 반응을 시놉시스 형태로 써서 제출해야 한다. 출판사에도 역시 번역서를 요약하고, 한국 독자들 반응과 리뷰, 관련 자료들을 가져가서 그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 그들이 이 책을 출판해야 하는 이유를 들어 설득하고, 아이디어를 제안(Book Pitch)하고 번역 샘플을 보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만 한 권의 한국 책이 영어라는 언어로 출간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번역 작품 출판을 위한 이러한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 아니면 설명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번역한 작품들이 출판되자마자 자넷 홍은 번역계에서 잇달아 상을 수상하며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자넷 홍 번역가는 한유주의 <불가능한 동화(Impossible Fairy Tale)>로 2018년 LTI 한국 번역 대상, TA First 번역 최고상을 수상하였고, 이어 하성란의 <옆집 여자(Flowers of Mold)>로 2020년 Firecracker 상을 수상하고, PEN 번역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김금숙 작가의 <풀(GRASS)>과 마영신 작가의 <엄마들(moms)>의 번역 작업으로 만화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하비(Harvey)상을 2020년, 2021년 연이어 받기도 했다.

 

특히 최근,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세계적인 그래픽 노블 출판사인 드론앤커터리(Drawn and Quarterly)와 함께 한국 만화들을 번역하고 있는 자넷 홍은 만화라는 장르를 시작하게 된 책으로 앙꼬의 <나쁜 친구>를 꼽았다. 자넷 홍은 ”만화책 중에 이러한 예술적인 문학 장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처음이었지만, 번역을 할지 말지 고민하면서 읽은 앙꼬의 <나쁜 친구>는 중간에 읽기를 그만둘 수가 없을 만큼 몰입도가 강했고, 섬세한 감정표현, 파격적인 결말 등으로 반드시 내가 이 작품을 번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고 했다. 그 후로 김금숙 작가의 <풀>과 <기다림(The Waiting)>, 마영신 작가의 <엄마들> 같은 다양한 주제와 색채를 가진 한국 만화작품을 영어로 번역했고, 마영신의 <아티스트> 역시 현재 준비 중이다.

 

주변인으로 소외되고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렵고 불편한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넷 홍에게 ‘한국적 이야기’라는 것이 어떤 것일지 물어보았다. 그는 “한국적 이야기를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인기 있는 책들을 보면, 화려한 도시 속에 사는 개인의 어두운 내면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목받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볼 때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경험한 전쟁과 이별의 고통 그리고 이를 극복해서, 더 나은 상황을 만드려는 강한 회복력(Resilient)이 이전 세대뿐 아니라 한국의 다음 세대로 연결되고 있고, 이러한 정신과 감정들이 한국 문화와 문학 속에 묻어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최근, 이전에 없던 한국문학을 향한 영미권 문학 출판사들의 러브콜은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 독자들이 가진 한국문학에 대한 기대를 엿보게 한다. 하지만 훌륭한 한국문학 서적들이 영미권에 전달되기 위해서는 자넷 홍과 같은 번역가가 계속 배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녀는 자신이 브리티시콜럼비아대학에서 번역가의 길을 시작할 때 도움을 받은 것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한영번역가들을 위해 멘토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번역가협회에서 한국 책을 영어로 번역하고자 하는 번역가들에게 저작권 일반과 한국 저작권에 관하여 그리고 출판사 전반에 관한 정보를 주고 있다. 더불어 한국 출판사들을 직접 연결시켜주며, 더 많은 북미의 한영번역가들이 배출되어 한국문학이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북미 땅에서 읽혀지도록 돕고 있다.



고한나

  • 성명 : 고한나[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캐나다/토론토 통신원]
  • 약력 : 현) Travel-lite Magazine Senior Editor 전) 캐나다한국학교 연합회 학술분과위원장 온타리오 한국학교 협회 학술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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