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인터뷰] 사천외국어대학 임향란 교수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2.04.06

중국 서남부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 외국어 대학인 사천외국어대학은 사천이 아닌 충칭에 있다사천미술학원과 마찬가지로 충칭이 1997년 사천성에서 분리되며 직할시로 승격되기 전두 학교 모두 사천을 대표했기 때문이다참고로 청두에 있는 사천 외국어 대학교의 정확한 명칭은 사천외국어대학청두학원(四川外国语大学成都学院)이다사천외국어대학에 한국어과는 2006년에 처음 개설됐다중국 서남부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이다아래는 사천외국어대학 한국어과 설립과 중국 서남부 지역의 한국어 교육에 있어 선구적 역할을 해오며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임향란 교수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다.


<사천외국어대학 정문 - 출처 : 통신원 촬영>

<사천외국어대학 정문 - 출처 : 통신원 촬영>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사천외국어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임향란 교수입니다한국에서는 국립안동대학교와 인천대학교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사천외국어대학교의 한국어과 설립에 큰 역할을 하셨다고 말씀 들었습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원래 사천외대에 있으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한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연변대학에 재직하고 있었기에 석박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다시 연변 대학으로 돌아가려고 했어요그런데 당시 남편(우상렬 박사)이 충칭으로 파견 근무를 와 있었고 저도 남편과 같이 있으면서 잠시 휴양이라도 하자 생각했죠그런데 충칭의 환경과 학교의 처우가 좋다 보니 한 두해 더 있게 되고 그게 지금까지 인연으로 이어졌네요베이징이나 상하이와 같은 다른 도시와 다르게 충칭은 한국어 붐이 좀 늦게 불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도가 되어서야 사천외대에 한국어과가 생겨났으니까요그 당시 한국어 분야에 대한 아무런 바탕도 없었고강의실이 부족한 것은 물론 사무실도 변변치 않았습니다학과에는 저를 포함한 4명의 선생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 학교도 물론 도움을 줬지만 한국 영사관부터 한인회까지 많은 기관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당시 중경시와 인천시가 자매 결연을 맺어 정부 관계자 분들이 오셨는데 그 당시 민속 물품 관련한 지원을 받게 되었죠에피소드라면 인천시의 한 예술단체 단장이 제 이름이 눈에 익어 알아보니 인천 대학교 박사 과정 동문이었죠그래서 사물놀이에 관한 기구를 모두 새 것으로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학생들에 대한 열정으로 많은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현재도 사천 외대에서 동방어학원의 한국어과 위상은 가장 높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지금 현재 사천외대 한국어과는 한국 문화체험센터와 동시 통역실 시설이 잘 완비되어 있습니다또한 우리 학교 한국어과 선생님은 거의 대부분이 박사과정 출신으로 타 학교보다도 훨씬 우수한 선생님들이 계십니다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어 지금 사천 외국어 대학의 한국어과의 위치가 가능했습니다.

 

임향란 교수는 아주 겸손했다통신원이 주변인들에게 들은 바로도 임 교수는 당시 매일 밤 9~10시까지 강의하며한국어 불모지였던 충칭에 한국 문화 및 한국어 교육의 초석이 되어 준 인물이다. 20075월에 한국어 연구소도 설립하였다연구소에서는 1년에 한 번씩 국내국외 학술대회를 진행하고학술지를 만들고 있으며 현재까지 11기까지 출간되었다이외에도 충칭의 타국적 교수들과 한국 유학 시절의 지인들을 통해 전문 서적과 번역서 등 6,000권의 책들을 지원받거나 구입하여 꾸준히 학술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교수진과 학생들이 함께한 한국문화 체험 행사 - 출처 : 임향란 교수 제공>

<교수진과 학생들이 함께한 한국문화 체험 행사 - 출처 : 임향란 교수 제공>

<교수진과 학생들이 함께한 한국문화 체험 행사 - 출처 : 임향란 교수 제공>


현재 사천외대 한국어과 학생들은 몇 명인가요?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말씀해주세요.

현재 주요 도시 대학의 한국어과 학생들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어느 학교들은 학생 수가 줄어 위기라고 말 할 수도 있죠사천외대는 현재 한 반에 30명으로 2반으로 구성돼있고이번에 학교 측에서는 3반으로 늘리려고 하고 있는 중입니다거기에 복수 전공자를 합하면 학생 수는 더 늘어나겠죠예전과 비교해서 가장 큰 변화는 석사 진학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학사가 대부분이었던 과거와 달리취업 시장에서 학력 요구 수준이 점점 높아지면서 석사를 넘어 박사 과정 진학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사천외대도 올해 아마도 박사 과정이 만들어 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한국어과에서는 한국 문화와 관련한 어떤 체험 행사를 진행하나요?

학기가 시작되고 9주 정도가 지나면 한국 문화와 관련한 음식 만들기사물놀이 등 문화체험을 약 일주일간 실시합니다학기마다 항상 진행을 해왔는데 작년 학기부터 진행을 못 하고 있네요한국 문화체험 센터도 오랫동안 비어있어 아쉬움이 큽니다.

 

임 교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0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사천외국어대학 한국어과는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2017년 국가 사회과학 기금인 중외번역 프로젝트 등 국가급 프로젝트를 따냈으며 교육부의 프로젝트 3성급 과학연구 프로젝트 8학교급 과학연구성과 등은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연구 성과를 올렸다이와 같은 노력으로 2017년 마련된 동시 통역실을 비롯해 한국 문화체험 센터가 코로나 등 여러 상황으로 활용도가 떨어지는 상황은 임 교수의 입장에서 당연히 아쉬움이 크지 않을 수 없다무엇보다 한국문화체험센터는 학생들이 참관하고 수업도 할 수 있는데실천주간에는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직접 공연연출한국 음식 만들기 체험 등을 진행하며 교수와 학생선후배 간에 끈끈한 정을 만들고 있다이런 활동을 통해 졸업 후에도 서로 간의 정을 이어가고 있다.


<임향란 교수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동시 통역실. 장비 한 대에 1만 위안(약 190만원)이 넘는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임향란 교수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동시 통역실. 장비 한 대에 1만 위안(약 190만원)이 넘는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한국문화체험센터에는 임 교수의 노력으로 기증받은 물품이 채워져 있다. - 출처 : 임향란 교수 제공>

<한국문화체험센터에는 임 교수의 노력으로 기증받은 물품이 채워져 있다. - 출처 : 임향란 교수 제공>


한국어과 학생들은 졸업 후 어떤 진로를 걷게 되나요? 한국 기관, 기업과의 관계도 말씀해주세요.

요즘은 많은 학생들이 석사 과정을 밟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래서 석사를 기준으로 본다면 학술형통번역으로 나뉘는데 학술형은 연구 진로통번역은 취직 진로로 보시면 됩니다당시 통번역 전공(MTI)은 중국 내 6개 학교만 시작을 했는데 3개 학교는 통번역 중 하나만 운영하고 나머지 3개 학교는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는데저희 학교는 통번역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합니다현재는 68개 대학교 한국어 학과에서 통번역 대학원이 설립되어 있습니다.

 

예전의 많은 학생들이 한국의 기업에 취직을 하는게 당연시 여겨졌다면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오히려 중국 기업에 취직하는 경우가 많아요아무래도 문화의 차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중국 기업 중에서도 국영 기업의 경우는 근무 조건이 좋고특히나 근무 시간 외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선호하는 것 같아요직장 내에서의 분위기도 한국과 중국의 차이가 있죠예전에는 한국어과의 경우 대부분 한국 기업으로 실습을 나갔습니다특히 중경 신한은행의 경우는 지속적으로 저희 학생들을 고용해 주었습니다현대나 한국타이어 같은 기업에도 많이 갔죠한인회 행사임시정부 행사 시에도 저희 학생들이 자원 봉사를 나가기도 했습니다학교에서 배운 한국 민속 공연을 선보이기도 하고요코로나 창궐 이후 많은 부분들이 변했습니다.



<임향란 교수 연구실에 놓여있는 제자들과의 추억 - 출처 : 통신원 촬영>

<임향란 교수 연구실에 놓여있는 제자들과의 추억 - 출처 : 통신원 촬영>


한국어 교육에 몸 담으시면서 힘들었던 점, 뿌듯한 점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어과 통번역 석사과정이 개설되면서는 새벽 3시 전에 자본 적이 없을 정도예요검토해야 하는 과제가 산더미예요그런데 이런 것은 그냥 몸이 피로한 거죠사천외대 한국어과가 설립되고 지금까지 연구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분은 제 남편입니다향년 58세로 작년에 림프종으로 돌아가셨어요결혼 30주년이었는데 정신적으로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교육과 연구 활동에 몰입하며 지낸 30년 결혼 기간 동안 남편과 오롯이 같이 보낸 기간이 5년에 불과합니다남편이 아프고 갑자기 자리를 비우니 모든 게 허망 해졌죠. ‘내가 무슨영광을 누리려 이렇게 왔는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하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현재 충칭에 있게 된 계기도 그렇고 아이들에 대한 열정 모두 남편과 함께 이룬것이고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초창기에는 학생들이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체험공연 등 많은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그 당시는 아직 많은 것들이 갖춰지지 않았을 때이기도 하죠그런데 지금은 시스템도 갖춰지고 많은 것들이 자리를 잡았기에 어찌 보면 선생님들이 자신의 일만을 하고 있죠제가 이제는 새로운 것들을 예전과 같이 진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앞으로 우리 젊은 선생님들이 열정으로 학생들을 위해 좋은 프로젝트들을 많이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고지금 제가 책임지고 있는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됐으면 합니다.

<2018년 재외 한국어 교육자 국제학술대회에서 임향란 교수 - 출처 : 임향란 교수 제공><2018년 재외 한국어 교육자 국제학술대회에서 임향란 교수 - 출처 : 임향란 교수 제공>


임향란 교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우상렬 박사는 연변 대학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하였고임향란 교수가 사천외대 한국어과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주변의 대부분 한국어 선생들이 우 박사의 제자일 정도로 임 교수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하다임 교수와의 인터뷰 중 그녀가 한국어 교육에 있어 겪는 고충을 느낄 수 있었다한국과 중국의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민족의 고유한 언어와 정신을 중국인에게 가르치는 입장 등교수는 많은 일에 있어서 혼자 감내해야 할 것들이 많다.

 

사천외대에는 그녀가 이룩한 많은 업적 중에서도 2017년도에 충칭시 교육부에서 3특 프로젝트(三特计划启动项目)으로 총 160만 위안(3억원)을 지원받아 만들어진 한국문화체험센터가 있고, 2019년에 1류 전문가(一流专业)라는 학과 건설을 위해 200만 위안(38,000만원)을 지원받아 현재까지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한국문화체험센터는 코로나 창궐 이후 이용이 뜸해 이날 방문했을 때도 썰렁함이 느껴졌다센터 건설에 가장 구심 역할을 한 임 교수가 가장 많이 아쉬워 할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임향란 교수는 많은 업무를 동시에 보고 있다학생들과 한국어교육에 대한 열정 하나로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온 임향란 교수가 하루빨리 아픔에서 벗어나길 희망하고앞으로도 사천외대 한국어과에 대해 많은 한국 기관과 기업한인회의 관심도 지속되길 바라본다.



한준욱

성명 : 한준욱[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중국(충칭)/충칭 통신원]
약력 : 현)Tank Art Center No41.Gallery Director 홍익대 미술학과, 추계대 문화예술경영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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