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 레포르마 대로에서 열린 러시아 전쟁 규탄 시위 현장>
멕시코에는 이제 봄바람이 불고 있다. 거리에는 봄꽃이 만개했다. 이처럼 멕시코는 완연한 봄날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차가운 칼바람이 부는 나라도 있다. 바로 우크라이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단순한 전쟁 그 이상의 여파를 몰고 왔다. 우크라이나 곳곳에서는 침공으로 각종 주요 시설이 파괴되고, 인명 사고가 발생했으며, 러시아의 비인도적이며 일방적 전쟁에 수많은 국가들은 보이콧에 나서며 대러시아 경제적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멕시코 시티의 레포르마 길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일요일 낮 2시까지 차량의 통행을 제한한다. 차가 지나다니던 자리는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를 하며 체력 단련을 하는 시민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사람들로 가득 차 일요일 봄날의 한가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이는 인파 속, 유독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었다. 몸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두르고 전쟁을 규탄하는 시위대였다. 이들은 대로의 일부분을 막고 집회를 열었다.
하늘을 상징하는 파란색, 끝없이 이어지는 밀밭을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구성된 우크라이나 국기는, 그 땅이 얼마나 풍요롭고 평온한 곳인지 나타낸다. 이날 시위에 국기를 두른 시위대는 멕시코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로 구성돼있었다. 이들은 멕시코 땅에서 전쟁을 멈춰달라는 슬로건 하에 집회를 열었다. 그동안 멕시코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은 멕시코 러시아 대사관으로 향해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해왔고, 일부는 러시아 대사관에 낙서를 하는 등 반러시아 전쟁 반대 시위를 이어왔다. 다소 과격한 시위와는 대조적으로, 일요일 레포르마 대로에 모인 사람들의 전쟁 규탄 시위는 공격적이기보다는 안타까운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멕시코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여성단체가 주도한 이 평화 시위 현장에는 사전에 집회 개최를 알고 온 멕시코 미디어, 언론사들도 취재를 위해 함께 자리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어려움을 알리기 위해 사전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이러한 점에서 이번 집회는 사실상 시위보다는 행사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다. 이날 모인 멕시코 방송 매체들은 시위대에게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멕시코에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우크라이나 여성단체 대표 나탈리아(Natalia 26세) 씨는 “우리는 멕시코에서 우크라이나로 보낼 구호품을 모으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이어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들을 위한 가루 우유, 기저귀와 식품, 물과 의약품”이라 말했다. 언론사들은 물품 지원을 진행하는 주체에 대해 물었고, 나탈리아 씨는 “우크라이나 대사관과 협력하여 인도적 구호품을 지원받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어 나탈리아 씨는 “현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어 모든 수입이 중단된 상태”라며 “멕시코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물품을 지원해주길 간청한다”고 말했다. 이어 《텔레비사(Televisa)》의 기자는 “어떤 방법의 도움이 구체적으로 필요한가”에 대해 물었고, 대표는 “아직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멕시코인들은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멕시코인 구출을 위해서 당국은 군용 수송 비행기를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군용 비행기가 구출을 위해 우크라이나로 향할 때, 가는 편 비행기에 우리가 지원받은 구호품들을 싣고 가서 우크라이나에 전달해주고, 오는 길에는 멕시코 국민들을 태워왔으면 한다”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어른들은 어떻게든 배고픔과 불편함을 참을 수 있지만 어린 아기들은 전쟁의 어려움을 참기 힘들다”며 “아이들을 위한 구호품 전달에 힘써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모인 우크라이나인들로 구성된 시위대와 함께 멕시코인들도 행사에 참여했다. 통신원도 함께 우크라이나 땅에서 전쟁을 멈춰 달라고 호소하고, 우크라이나를 도와 달라는 구호를 함께 부르짖었다. 1950년, 한국 땅에서 전쟁을 겪으며 당시 국민들이 국내외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침공의 아픔에 공감하며, 하루 빨리 전쟁이 종식되길 바라본다. 우크라이나 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 사진 출처 :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