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현대미술 전시회, ‘광기-현대 미술의 폭주'가 말하는 팬데믹 시대의 예술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2.03.07

<'광기- 현대 미술의 폭주' 포스터>

<'광기- 현대 미술의 폭주' 포스터>


눈 아래를 마스크로 가려 상대방이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표정을 알기 힘들다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 주입 시킨 덕에 아이들은 마스크가 없이 집 밖을 나가는 것에 공포감을 느낀다사실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세상을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되도록 회의는 화상채팅으로 이루어지며온라인 수업이 안전하고 경제적이라는 생각에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 나갈 이유를 잃었다이웃과 반가움에 포옹을 하기 전어쩌면 저 사람도 나처럼 포옹하기 꺼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친구에 사촌에 이모가 백신 부작용으로 죽었다고 하지만 레스토랑에 가려면 백신을 맞아야 한다나와 사회의 안전을 위해 내가 어디에 가는지 모든 정보를 정부에 기꺼이 넘긴다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이제 세계 경기 침체는 그냥 정해진 다음 수순으로 얼마나 심각하고 오래갈지 알 수 없다불안정과 불확실의 시대미치지 않을 이유보다 미쳐버릴 이유가 더 많다.

 

분노와 울분외로움우울 증상정신 불안 등 코로나 대유행은 우리 시대 정신건강과 사회 심리에 길고 오래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그렇다면 장기 팬더믹으로 인한 정신병적 측면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고한계에 도전하며 생겨나는 예술혼에는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1500년대 르네상스 건출물로 현재 복합 문화단지로 쓰이고 있는 로마 키오스트로 델 브라만테(Chiostro del Bramante)에서 다닐로 에케르(Danilo Eccher)가 큐레이팅 한 현대 미술 전시회 광기 현대 미술의 폭주(Crazy: La follia nell’arte contemporanea)’는 광기를 예술의 원동력이라고 고함을 지른다팬데믹의 긴 시간 동안 내면에 쌓여있던 세계적 예술가 21명의 정제되지 않고 확립된 계획을 거부하며 틀에서 벗어나 분출하는 에너지를 담은 11개의 설치 작품들을 한 데 모은 이번 전시회는 미칠 듯한 이 시대의 가면을 쓰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알프레도 피리의 ‘브라만테 로마 회당의 계단’>

<알프레도 피리의 ‘브라만테 로마 회당의 계단’>


회랑의 입구 관객을 압도하는 장면은 천장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오는 빛과 밟으면 금방이라도 금이 가 깨져버릴 것 같은 유리 바닥이다이탈리아 작가 알프레도 피리(Alfredo Pirri)의 설치 작품, ‘브라만테 로마 회당의 계단(Passi chiostro del Bramante Roma)’은 르네상스 건축물인 회당의 바닥을 깨진 유리로 깔고 위태롭게 사물을 비춘다그렇게 광기는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페타 코니의 ‘천국의 색’>

<페타 코니의 ‘천국의 색’>


복도를 들어서면 천장에 밀랍 샹들리에들이 꽃처럼 피어 정원을 이룬다천장에 펼쳐진 정원이다미국 작가 페타 코니(Petah Coyne)의 세계는 위와 아래가 거꾸로 펼쳐져 촛농처럼 순간적이며 동시에 밀랍처럼 영원하다.


<카르로스 아모랄레스(Carlos Amorales)의 ‘열정의 검은 구름’>

<카르로스 아모랄레스(Carlos Amorales)의 ‘열정의 검은 구름’>


전시장 1층에서 2층으로 이동하는 계단에는 생각의 파편만큼이나 가벼운’ 종이 나비 만 오천 마리가 관람객들을 따라 날아오른다수많은 검은 나비 떼들이 만들어내는 검은 구름은 좁은 계단 벽을 타고 오르며 좀처럼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관객들은 언젠가는 이 섬뜩한 검은 구름도 걷힐 것이라고 생각하며 계단을 올라간다.


<시씨의 ‘옷장의 어둠 속에서(Fuori dal buio dell’armadio)’>

<시씨의 ‘옷장의 어둠 속에서(Fuori dal buio dell’armadio)’>


갖가지 디자인과 색깔의 옷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옷방은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 시씨(Sissi)의 세계다관객은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장소인 옷방에 들어와 걸려있는 그의 옷들 사이에서 길을 잃을 듯하다관객들은 몇 년 전에 사뒀지만 한 번도 입지 않은 잊혀진 옷들과 계절이 섞여버린 옷들사연이 있어 버리지 못하고 쟁여 놓은 옷들로 가득한 터질듯한 자신의 옷장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알렌과 오스틴 영의 ‘플레져 궁전의 사랑의 덫(Trappola d'Amore a Pleasure Palace)’>

<데이비드 알렌과 오스틴 영의 ‘플레져 궁전의 사랑의 덫(Trappola d'Amore a Pleasure Palace)’>

<데이비드 알렌과 오스틴 영의 ‘플레져 궁전의 사랑의 덫(Trappola d'Amore a Pleasure Palace)’>


모든 전시를 다 봤다고 생각하고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가 함께 간 사람들과 와인 한잔을 하러 들어간 회랑의 카페 안은 마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듯 미국에서 듀오로 활동하는 데이비드 알렌(David Allen Burns)과 오스틴 영(Austin Young)의 작품들로 가득하다박물관이라는어쩌면 지루하고 고루한 공간에 유머와 재치를 불어넣는 이 듀오의 작업들 중에서도 이번 작품은 우리가 아는 역사와 성경고전 미술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화려한 색깔로 치장하고 이미지와 이미지로 섞여 광기를 전달한다.

 

이번 전시회는 무엇보다 광기와 예술이라는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전세 계에서 주목받는 21명의 작가들이 창조적인 광기를 보여주고작품과 작품 사이를 오가며 놀라고충격을 받고어지러워하고정신없어하고즐거워하고 영감을 받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모든 일에는 밝은 쪽과 어두운 쪽 양면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류의 위기인 팬데믹도 멀리 보아 역사 속에 어떻게 기억될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예술가의 정신이상이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에너지가 되듯이이번 전시 광기 현대 미술의 폭주는 2023년 1월 8일까지 열린다



백현주

성명 : 백현주[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이탈리아/피사 통신원]
약력 : 전) 뮤지컬 <시카고>, <스팸어랏>, <키스미 케이트>, <겨울 나그네>, <19 그리고 80>, <하드락 카페> 등 출연 한영 합작 뮤지컬 작, 연출 현) 이탈리아 예지 그로토프스키-토마스 리처드 워크센터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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