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모스크바 한민족학교 개교 30주년 의미와 설립자 엄넬리 교장님
구분
교육
출처
스터디코리안
작성일
2022.03.15

지난 2월 11일과 18일 양일에 걸쳐 러시아 유일한 한민족학교 30주년 개교 기념 행사가 본교 강당에서 열렸다. 5년 전인 2017년 개교 25주년 행사 때는 약 2,500여 명의 손님이 본교를 방문해 성대한 행사를 치렀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 전 지역 특히 모스크바에 코로나와 오미크론 환자가 급증하는 시국임을 고려해 한민족학교는 최소 인원으로, 두 번에 걸쳐 개교 30주년 행사를 진행했다. 2월 11일에는 학생들과 함께 축하의 시간을 가졌고, 2월 18일에는 60명의 선생님과 30주년을 축하하며 상장과 선물 전달식을 했다. 재학생들은 물론이고 본교를 졸업한 학부모들도 행사에 참석해 학교가 걸어온 발자취를 추억하며 함께 축하했다.


한민족학교 학생 구성은 독특하고 다양하다. 고려인과 한국인은 물론이고 깔믜끼 공화국, 키르키스탄, 몽골, 띌바 공화국 등 약 58개 민족 학생들이 본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30주년 행사를 위해 각 학년 학생들과 다양한 민족의 학생들이 각 나라 민속춤을 준비해 행사를 빛내주었다. 2월 18일 행사에는 모스크바 대사관 박호 총영사님이 참석해서 이석배 대사님을 대신해 축하 인사를 전했다. 모스크바 대사관은 한·러 수교 1년 후인 1992년에 개교한 한민족학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다. 특히 현 이석배 대사님은 교육 영사로 모스크바에 재직 시부터 한민족의 정체성을 계승하는 한민족학교와 한국학교에 큰 관심을 두고 계신 분이다. 모스크바 한국학교 장은미 교장 선생님도 당일 본 행사에 참석해 함께 축하했다. 특히, 장은미 교장 선생님은 모스크바 한민족학교 설립자이자 초대 교장이신 엄넬리 교장님께 깊은 감사와 축하를 전했다.


엄넬리 교장님은 축하에 대한 화답으로 현재 본교 재학 중인 학생과 그 학생의 어머니로 본교를 졸업한 학부모와 아리랑을 불러 행사 참석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학교 건물 전체에 우렁차게 퍼지는 고려인 학생들 사물놀이 한판이 정신을 깨운다. 지난 30년 전 '한민족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꾸준히 한민족 정체성을 지키고 가르치며 더불어 다른 민족들을 보듬고 함께 존중하며 걸어가고 있는 모스크바 한민족학교의 가치와 의미는 두고두고 회자될 자랑스러운 러시아 재외동포 교육의 역사다.


▶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있는 한민족학교는 30년 전 고려인 엄넬리 교장에 의해 설립되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014년 전까지 '1086 한민족학교'라는 이름으로 주로 한민족 교육에 집중했으나, 2014년 모스크바 교육청의 요청으로 5학교가 통합되며 '17학교'가 되었다. 그러나 한민족학교는 설립 시 이념이였던 한민족 정체성에 대한 교육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현재 학교에는 한민족 자녀들을 비롯해 약 58개 민족의 자녀들이 공부하고 있다. 2022년 30주년 행사는 코로나 시국 속에서도 학교 측의 지혜로운 대처로 양일에 걸쳐 감동적으로 진행되었다.

▶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있는 한민족학교는 30년 전 고려인 엄넬리 교장에 의해 설립되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014년 전까지 '1086 한민족학교'라는 이름으로 주로 한민족 교육에 집중했으나, 2014년 모스크바 교육청의 요청으로 5학교가 통합되며 '17학교'가 되었다. 그러나 한민족학교는 설립 시 이념이였던 한민족 정체성에 대한 교육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현재 학교에는 한민족 자녀들을 비롯해 약 58개 민족의 자녀들이 공부하고 있다. 2022년 30주년 행사는 코로나 시국 속에서도 학교 측의 지혜로운 대처로 양일에 걸쳐 감동적으로 진행되었다.


2022년 2월, 개교 30주년을 맞은 한민족학교 현 명칭은 '모스크바 17학교'다. 러시아는 보통 학교명을 숫자로 나타내며, 초·중·고등 과정을 합쳐 총 11년 학제다. 당일 30주년을 맞은 학교의 전신은 러시아 이민 4세이자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고려인 교육자 엄넬리 교장 선생님께서 1992년에 한민족 정체성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한 '1086 한민족학교'다. 1086 한민족학교는 지난 2014년 모스크바 교육청의 요청으로 인근 5개 학교와 통폐합되어 현재의 '17 학교'가 되었다. 그러나 설립자이자 초대 교장이신 엄넬리 교장님은 1086 한민족학교의 정신과 가치관을 가지고 계속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모스크바 한민족학교 개교 30주년의 의미와 역사 속에는 엄넬리 교장님의 피와 땀과 눈물과 열정이 담겨있다.

여러모로 어수선한 시국이라 이번 개교 30주년 행사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얼마 전 한민족학교에서 엄넬리 교장님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모스크바에 폭설이 내리던 날이었다. 주택가 한가운데 위치한 학교를 찾느라 고생한 이 낯선 사람을 교문까지 나와 반갑게 맞아주셨다. 함께 대화를 나눈 한민족학교 교장실은 커다란 박물관이다. 공간 곳곳에 한민족학교 과거와 현재가 담겨 있었고 그 역사와 함께 걸어오신 엄넬리 교장님의 과거와 현재 삶 그리고 미래 비전까지 모두 전시되어 있었다. 엄넬리 교장님과 한국어로 진솔하고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동안 만나 뵈었던 고려인분들 가운데 가장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시는 교장님이시다.


▶ 1940년생 엄넬리 니콜라예브나. 카리스마와 따뜻함을 동시에 갖춘 러시아가 자랑하는 최고의 교육자다. 고려인 이주 4세이며, 지금까지 만난 고려인 가운데 가장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해서 놀랐다. 그런데 이 한국어를 어릴 때부터 배운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처음 방문한 직후인 1991년, 51세 나이에 독학으로 익힌 것이라는 말에 두 번 놀랐다.

▶ 1940년생 엄넬리 니콜라예브나. 카리스마와 따뜻함을 동시에 갖춘 러시아가 자랑하는 최고의 교육자다. 고려인 이주 4세이며, 지금까지 만난 고려인 가운데 가장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해서 놀랐다. 그런데 이 한국어를 어릴 때부터 배운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처음 방문한 직후인 1991년, 51세 나이에 독학으로 익힌 것이라는 말에 두 번 놀랐다.


엄넬리 교장님은 1940년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다. 1937년 고려인 강제 이주가 시작되던 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연해주로부터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고, 그 3년 후에 그 땅에서 태어났다. 이주 4세대였으나 부모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영월 '엄씨'라는 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고 않고 살아왔다. 1945년에 아버지를 따라 북한 평양으로 이주해서 소련대사관 학교에 다녔다. 1953년 스탈린 사망 후 북한 정세가 혼란스러워졌고 1956년 가족들과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북한에서는 같은 동포로 인정받지 못했고, 돌아온 소련에서는 소련 민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차별과 억압 속에서 유일한 돌파구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뿐이었다. 항상 틈만 나면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으로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 [직접 친필 사인을 해서 방문 선물로 주신 엄넬리 자서전 '러시아 심장부에 활짝 핀 무궁화(2010) 중에서] 19세에 결혼을 하고 20세에 첫딸을 낳았으나 엄넬리 교장님은 학업을 계속했다. 25세 모스크바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모스크바 180학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 생활 중에도 학업을 계속해서 5년 후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35세 때 벌써 교장이 되었다. 대화를 나눈 방 책장에 오래된 흑백 사진이 걸려있었다. 1975년 첫 교장직을 수행했던 학교 사진이다. 이 빛바랜 사진을 통해 엄넬리 교장님이 얼마나 자신이 걸어온 삶에 대해 자부심이 있으며 역사를 간직하는 분인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러시아 내에 소수민족으로 성공의 길을 갈 수 있는 삶이 펼쳐졌다. 그러나 평탄할 수 있었던 엄넬리 교장님의 삶은 1991년 대한민국 첫 방문을 계기로 완전히 바뀌었다.


▶ 코로나 시국에 학교를 방문한 낯선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모스크바 한국학교 장은미 교장님의 소개로 엄넬리 교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같은 해인 1992년에 개교한 모스크바 한민족학교 설립자이신 엄넬리 교장님과 현 모스크바 한국학교 장은미 교장님은 서로 교육적인 견해를 공유하며 사적, 공적 영역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엄넬리 교장님 방은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책상과 책장에 전시된 물건 하나하나에 역사가 담겨 있었다. 벽에 걸린 TV에서는 한국어로 한국 뉴스가 방영 중이었다. 세 번째로 놀랐다.

▶ 코로나 시국에 학교를 방문한 낯선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모스크바 한국학교 장은미 교장님의 소개로 엄넬리 교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같은 해인 1992년에 개교한 모스크바 한민족학교 설립자이신 엄넬리 교장님과 현 모스크바 한국학교 장은미 교장님은 서로 교육적인 견해를 공유하며 사적, 공적 영역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엄넬리 교장님 방은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책상과 책장에 전시된 물건 하나하나에 역사가 담겨 있었다. 벽에 걸린 TV에서는 한국어로 한국 뉴스가 방영 중이었다. 세 번째로 놀랐다.


1991년 엄넬리 교장님은 당시 모스크바 한인교회 초청으로 러시아 교육감과 함께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그토록 고대했던 고국에 갔으나 정작 할 수 있는 한국말은 '안녕하십니까',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말 모릅니다' 뿐이었다. 스탈린 치하에서 소수민족 언어 교육이 엄격하게 금지되었던 탓에 엄넬리 교장님은 한 번도 한국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한국 방문 내내 눈물만 흘리던 엄넬리 교장님을 함께 간 러시아 교육감님이 위로했다. '모스크바에 가면 꼭 한민족학교를 세워라. 내가 도와주겠다.' 한국 방문 후, 51세 엄넬리 교장님은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루 15개 단어를 외우지 않으면 잠도 자지 않았고, 한국 노래로 한국어를 익혔다. 요즘 엄넬리 교장님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인데 올해 83세 엄넬리 교장님은 가사를 다 외워 부른다.

당신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사람인지, 세월이 흐르고 보니 이제 알 것 같아요.
당신이 얼마나 내게 필요한 사람인지,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제 알 것 같아요.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당신은 나의 영원한 사랑, 사랑해요.
날 믿고 따라 준 사람. 고마워요. 행복합니다. 왜 이리 눈물이 나요.


한국어 공부와 더불어 자신과 같은 아픔을 지난 동포가 없도록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를 설립하기로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노력으로 1992년 초·중·고 통합과정인 '1086 한민족학교'가 탄생했다. 1086 한민족학교는 설립 당시에는 모스크바 공립학교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어를 제2 외국어로 채택한 학교였다. 학교 내 한국어 수업은 주 2~3시간 실시되었으며, 과외수업으로 주 3시간 한국의 문화, 역사, 풍습 등을 가르쳤다. 엄넬리 교장님은 특히 예절을 중시하는데, 과거 다른 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때도 한국 사람들은 어느 민족보다 부지런하고 예의 바르다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1086 한민족학교 각 교실 반 이름도 무궁화 등 민족혼을 넣어 지었다. 학교에 방문한 날 수업종이 울렸는데 종소리가 '아리랑'이었다. 네 번 놀랐다.


▶ 엄넬리 교장님이 한국과 러시아에서 받은 국가 훈장들이다. 사진에 다 담지 못했다. 1086 한민족학교는 2005년 모스크바 3,500개 공립학교 중 명문대학 입학성적이 최상위권을 차지해 유네스코에서 최우수 민족학교로 선정, 표창을 받았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한민족의 뿌리를 지켜온 공로를 인정받아 무궁화 훈장을 비롯해 석류장과 목련장 훈장을 받았다. 특히, 고려인 최초로 러시아 정부로부터 최고의 명예인 레닌 훈장을 받았다. 한민족학교 설립자인 엄넬리 교장은 한국과 러시아 정부로부터 모두 인정받고 있는 교육자이다. 방문 기념 선물이라며 직접 만든 한국어 교재 11권을 주셨다. 짐가방은 이미 꽉 찼고 바로네즈까지 기차로 12시간 달려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책을 보니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책의 질이 너무 좋아 무게가 상당했다. 고이 모셔와 방 책장에 꽂아두고 천천히 살펴보았다. 엠넬리 교장님의 특별한 한국 사랑이 11권 한국어 교재로 재탄생했다.

▶ 엄넬리 교장님이 한국과 러시아에서 받은 국가 훈장들이다. 사진에 다 담지 못했다. 1086 한민족학교는 2005년 모스크바 3,500개 공립학교 중 명문대학 입학성적이 최상위권을 차지해 유네스코에서 최우수 민족학교로 선정, 표창을 받았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한민족의 뿌리를 지켜온 공로를 인정받아 무궁화 훈장을 비롯해 석류장과 목련장 훈장을 받았다. 특히, 고려인 최초로 러시아 정부로부터 최고의 명예인 레닌 훈장을 받았다. 한민족학교 설립자인 엄넬리 교장은 한국과 러시아 정부로부터 모두 인정받고 있는 교육자이다. 방문 기념 선물이라며 직접 만든 한국어 교재 11권을 주셨다. 짐가방은 이미 꽉 찼고 바로네즈까지 기차로 12시간 달려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책을 보니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책의 질이 너무 좋아 무게가 상당했다. 고이 모셔와 방 책장에 꽂아두고 천천히 살펴보았다. 엠넬리 교장님의 특별한 한국 사랑이 11권 한국어 교재로 재탄생했다.


교내


정문을 거쳐 학교 내부로 들어가면 학교 복도가 나온다. 러시아 일반 학교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복도 자체가 박물관이다. 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58여 개 민족의 의상, 기념품, 전통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상장과 트로피, 메달도 많았는데 본교가 모스크바에 있는 유대인 학교와 같이 소수 민족 학교 중에서도 최고로 평가받으며 러시아 정부로부터 수여 받은 영광의 산물들이다. 한국인이라 한국 전통 의상과 한국 지도, 한국 전통용품에 눈이 오래 머물렀다. 학생들이 매일 아침, 이 복도를 지나 교실로 들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관심과 정체성 교육은 단순히 교육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환경과 환경이 주는 동기부여가 중요한 요건이라면 모스크바 한민족학교는 이미 최고의 전략을 가지고 있다. 한민족학교의 살아있는 역사인 엄넬리 교장님 덕분에 학생들은 이미 그 역사의 한가운데를 매일 자연스럽게 지나며 매일 성장하고 있었다.

이 글은 러시아 유일한 한민족학교 개교 30주년 기념행사를 축하하고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글의 끝은 이 30년 역사를 시작하고 지속할 수 있게 한 한 사람, 설립자 엄넬리 교장님의 삶과 열정으로 마무리한다. 1992년은 소련에서 러시아로 나라가 바뀐 혼란의 시간이었다. 러시아 소수 민족인 고려인들을 위한 한민족학교를 세우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수많은 고초를 당했다. 일부 지역 주민들은 이렇게 어려운 시절에 러시아 학교도 모자란데 무슨 민족학교냐며 항의데모 뿐만 아니라 돌을 던지기도 했다. 이 모든 설움을 극복한 것은 실력이었다. 설립 3년 만에 우수민족학교로 선정되는 등 학교 위상이 높아지면서 데모와 반발은 조금씩 사라졌다. 현재, 본교는 한민족을 비롯한 다양한 58개 민족의 학생들에게 자신의 정체성과 더불어 타인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공존하는 건강한 글로벌 정체성을 가르치는 자랑스러운 학교로 계속 성장하고 있다.

2022년 2월, 30주년을 맞은 전 1086 한민족학교 행사 소식과 방문 그리고 엄넬리 교장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 교육자의 열정과 노력이 어떻게 새 역사를 만들고 또 학생들의 역사를 바꾸는지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



♣ 사진 출처: 모스크바한국학교 장은미 교장 제공, 통신원 제공


서지연
[러시아/바로네즈] 서지연

재외동포재단 해외통신원 3, 4, 5, 6기
현) 러시아 바로네즈 한글학교 교장
경력) 청강문화산업대학 상담학 강사
러시아한글학교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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