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문화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캐나다에서는 도시 곳곳에 애프터눈 티 하우스(Afternoon Tea house)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작은 규모의 찻집의 내부는 고풍스러운 가구와 그림, 장신구들로 가득하고, 다양한 차와 함께 3단에 나오는 스콘과 작은 샌드위치들로 구성된 메뉴를 선보인다. 애프터눈 티 하우스에 가면 노부부들이 단정하게 영국식 모자를 쓰고 와서 티를 즐기기도 하고, 젊은 연인들이 함께 영국의 오랜 전통을 느낄만한 소품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길을 가며 급하게 커피를 한 잔 포장하여 마시는 현대인의 분주한 삶의 단상과는 다르게 오랜 시간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1인용 찻잔에 느긋이 우려내 차를 마시는 모습은 또 다른 캐나다의 매력을 맛보게 한다. 유명한 쇼핑몰에도 거대한 티 부티크로 유명한 데이비스 티(Davids Tea) 등, 여러 종류의 차를 다양하게 블랜딩하여 먹기 쉽게 티백으로 만들거나 여러 종류의 티를 직접 고를 수 있도록 한 메뉴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이와 같은 티 하우스, 티 부티크에서 판매하는 차들은 원산지가 중국, 일본, 인도, 스리랑카와 같은 아시아 지역이 대부분이다. 캐나다의 차 문화 속에서 한국 차문화가 소개되지 못하는 점은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이러한 현상을 안타깝게 느끼고 우리 문화와 함께 한국 차의 홍보대사로 활발한 활동하고 있는 티 소믈리에(Tea Sommelier)가 있다. 캐나다에서 한국 차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한국 차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지 티 소믈리에로 활동하고 있는 박수현 씨와 인터뷰를 가졌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티 소믈리에이자 한국 차와 함께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는 박수현이라고 합니다. 어릴 적 아버님이 우연히 주신 세작티를 처음 마셔 본 장면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장면과 시간, 분위기가 어쩌면 지금과 연결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따뜻한 기억 덕분에 저는 다른 어떤 음료보다 차를 참 좋아하고, 사랑해왔습니다. 저를 아는 친구들은 저에게 건네는 선물로 꼭 차를 주고, 남편이 제게 준 첫 선물 또한 차였습니다.
캐나다에서 결혼을 하고 정착하면서, 취미 생활로 조지 브라운 대학(George Brown College) 평생 교육과정을 알아 봤는데, 티 쇼믈리에 자격증 과정(Tea Foundations Program)이 있었습니다. 재미 삼아 들어간 수업 첫 시간, 여러 차를 마시며, 차 맛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데 너무나 흥미로웠습니다. 결국 교육과정을 끝내고, 자격증 시험을 보고,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따게 되었습니다. 함께 수업을 들은 사람들은 저처럼 취미로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모두 한국 차에 대해 물어 보고, 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한국 차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교수님도 일본, 중국, 스리랑카, 인도 차에 대해선 가르치시지만 한국 차에 대한 수업은 가르치시지 않았으며 영어로 된 어떤 정보도 없었습니다.
한국 차의 우수함, 차별성, 역사와 아름다움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제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전에는 거의 매년 한국에 가서 직접 차를 테스트하고, 품질이 우수한 차를 가지고 캐나다로 돌아와 저의 이름을 따서 ‘수차(Soocha Tea)’라는 브랜드의 로고를 직접 만들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규방공예협회와 함께 차와 관련된 여러 티웨어(tea wear)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캐나다공공도서관과 함께 한 한국 차 문화 관련 행사 - 출처: Vaughan Public Library>
팬데믹 기간에도 많은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지난 행사에 소개해주세요.
매년 하던 티페스티벌이 전면 중단되었지만, 여러 온라인 이벤트를 기획하고 참여했습니다. 먼저 커뮤니티와 함께한 이벤트로는 지역 도서관인 번(Vaughn)공립도서관에서 한국 차에 관한 소개 행사를 줌(Zoom)을 통해 진행했습니다. 참석자 중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캐나다인들이었는데, 한국의 차 예절과 부모님과 함께하는 패밀리 타임에 적용 가능한 프로그램이라 모두 만족하셨습니다. 도서관 측에서는 지속적으로 관련 행사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주로 오프라인으로 가족들과 함께 하는 한국 다례 문화를 소개하거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와 연결한 행사를 추진하고자 했습니다. 또 한국작가들의 미술작품을 전시하시는 써니갤러리(Sunny Gallery)에서도 한국 미술전시를 하면서 함께 한국 차를 함께 소개하는 토론토 아트쇼: 기프트(Toronto Art Show: Gift)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또 수차티와 친구들(Soocha Tea and frieds)이라는 이름의 티토크 이벤트를 3월 부터 9월까지 총 7회에 걸쳐 열었습니다. 제가 주관하고 차와 관련된 책 저자, 예술가, 블로거, 사업가 등등 다양한 주제로 전문 분야의 게스트를 모셔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벤트는 무료였지만, 모두 자발적으로 일정 금액을 내서 캐나다 커뮤니티에 기부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또, 캐나다 한국문화원에서도 코리안 티 시리즈 3부작 강연을 했고, 한국 차 워크숍도 따로 진행했습니다. 팬데믹으로 모든 차 관련 행사가 중지되어 차를 사랑하시는 분들이 너무나 아쉬워하고 그리워했는데, 제가 그런 플랫폼을 제공하게 되어 모두 감사해했고, 한국 문화와 차를 소개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써니갤러리와 함께 행사 중 진행된 인스타그램 라이브방송 - 출처 : Soocha Tea 제공>
캐나다에서 한국 차를 알리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중국, 일본, 인도, 스리랑카 차에 대해선 캐나다 사람들이 알고 있고, 접할 수 있는 정보도 많고, 마실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차에 대해서 알고 경험할 수 있는 통로 자체가 없는 상태입니다. 한국 차 전문기관도 없고, 다른 차를 팔면서 한국 차를 한 두개 끼워 판매하는 곳은 있지만 판매처가 한국계가 아니다 보니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합니다. 현지인이 한국 차를 소개하고 워크숍도 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해 알리고, 다른 티 업계 및 기업들과 협업하는 플랫폼은 캐나다에서 전무한 상태입니다.
저는 불모지와 같은 곳에서 우수한 한국 차를 알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임감과 사명감이 큽니다. 특히 우리 차를 마시고, 한국에 대해서 더 알고 싶고, 한국 음식과 문화, 관광으로 관심을 넓혀 가는 분들이 소설미디어를 통해 피드백을 주실 때면, 그 사명감은 더욱 커집니다. 캐나다 사람들 그리고 티 업계에 있는 분들이 저를 보고 한국 차 업계의 선구자라고 불러줄 때 보람을 느끼고, 더 열심히 한국 차와 문화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한국 문화를 함께 전하고 있는 수차티 인스타그램 - 출처 : 수차티 인스타그램(@soochatea.canada)>
중국, 일본차와 한국차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차를 우려서 마신다는 것은 같지만, 중국은 예술적인 측면, 화려한 기교 등이 강조되어 ‘다예’라고 부릅니다. 일본에서는 ‘다도’라 불리며 몇 발자국 건너 앉고, 다기를 몇 도 방향으로 기울여야 하는 등 엄숙하고, 철저한 규칙이 강조됩니다. 그에 반해 한국은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것에 초점을 두어 인위적이거나 인공적이지 않습니다. 예의와 존경을 담고, 손님과 주인이 이를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다양한 차 관련 전문가 게스트와 함께 한 토크쇼를 주관한 수차 티 대표 박수현 씨 - 출처 : 수차티 제공>
캐나다에서는 애프터눈티가 유행입니다. 이 속에서 한국차만이 가지는 차별점이 있나요?
애프터눈티는 서양의 문화지만 차의 원산지는 아시아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져와서 서구에서 블랜딩을 했고, 본인들의 문화로 정착을 시킨 것입니다. 애프터눈티를 보면 사실 차 자체가 중점이고 고급스럽다기 보다 곁들이는 디저트가 화려합니다. 그에 반해 한국의 차는 디저트가 강조되지 않아 오롯이 차를 맛보고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차가 다양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은 많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한옥의 고풍스러운 곳에서 한국의 차를 경험한다면 엄청난 반향이 있을 것입니다. 또 캐나다 및 서구 문화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 중 하나가 한국 규방문화인데요. 휴대용으로 차 세트를 담을 수 있는 보자기나 찻잔 받침, 조각보 등을 제가 직접 만들어 소개하는데 무척 좋아하고 본인들이 직접 사진을 올려 보내주시기도 합니다.
한국 차를 직접 판매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고 계신가요? 판매하는 차에 대해 고객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코로나 창궐 이전에는 한국에 매년 가서 직접 차를 마시고, 시설을 둘러보고, 샘플을 받고, 대표를 만나 차를 결정해왔습니다. 품질이 우수한 차를 찾지만 그것 만이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차에 대한 철학, 가치관, 윤리관이 저랑 비슷하고, 시설의 환경과 노동환경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래처가 어떤 윤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태도로 사업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이 연구합니다. 리콜 등 식품 관련 뉴스도 계속 업데이트 하면서 차를 고르고 있습니다.
저는 우전과 세작(녹차), 발효차와 발효차 가루(홍차), 보리 새싹과 겨우살이, 쑥가루(허브차)까지 총 7개의 차 종류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한국 차를 소개할 때도 순차적으로 해야한다는 생각에 한국차에 기본을 알리고자 우전을 먼저 판매했고, 그 다음 보리 새싹과 겨우살이 등까지 셀랙션을 지속적으로 늘려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차와 블랜딩을 준비할 계획입니다.
외국 분들은 주로 우전, 발효차, 그리고 겨우살이를 좋아합니다. 녹차를 씁쓸한 맛으로 알고 있었다가, 한국의 우전이 가진 은은한 맛에 감탄하기도 합니다. 발효차의 구수하고 단맛에도 놀라고요. 겨우살이의 구수하고 달큰한 맛도 좋아하곤 합니다. 제가 온라인 숍으로 차를 보낼 때는 엽서에 손글씨를 써드립니다. 이에 무척 감사하면서 선반 위에 올려두고 오갈 때마다 감사해한다고 따로 이메일을 보내시기도 합니다. 수차티의 고객은 2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합니다. 한국차를 처음 마셨는데 놀랍다는 분들, 제가 따로 홍보하지 않았는데도 우연히 알고 진정성 있는 리뷰와 피드백을 준 티 블로거나 인플루언서도 있었고요. 한국분들 가운데는 40년을 넘게 티를 마셨는데 최고라고 평가하는 분들, 수차 티 덕분에 패밀리 티타임을 가지고 사춘기 아이들과 좋은 시간, 좋은 가족 전통을 만들었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앞으로 한국 차와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함께 협업하고 싶습니다. 도시공공도서관, 갤러리, 학교, 문화원 등과 지속적으로 협업해 다양한 행사를 할 예정입니다. 더불어 캐나다의 여러 주요 언론,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단체들과도 지속적인 활동을 고안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올해에도 써니갤러리 전시와 협업하여 한국 미술이 있는 공간에서 함께 한국 차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토론토에서 열릴 10월 한국주간행사에 한국규방공예협회와의 협업을 통해 차문화와 규방문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위해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한국 차에 대한 접근성이 낮고 정보를 얻는 것조차 어려운 환경에서 한국 문화와 함께 다양한 한국 차를 소개하고 있는 박수현 대표의 열정은 앞으로도 많은 기대를 가지게 한다. 한국문화유산의 달, 아시아문화유산의 달을 추진하면서 다양한 전통문화를 알고 싶어하는 캐나다이지만, 한국의 차는 여전히 알려진 바가 적은 불모지이다. 박수현 대표가 언급한 대로 한국의 공공기관을 비롯해 캐나다 내 공공 커뮤니티 센터와 도서관, 학교와 여러 축제와 협력한다면 다양한 한국 문화와 함께 한국의 차도 더욱 알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