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터뷰

[히로시마] 신형근 총영사 / 아사히신문 / 기고
출처
외교부
작성일
2012.08.10
원본URL
http://www.mofat.go.kr/webmodule/htsboard/template/read/korboardread.jsp?typeID=11&boardid=754&seqno=304204&c=&t=&pagenum=1&tableName=TYPE_ASSOCIATE&pc=&dc=&wc=&lu=&vu=&iu=&du=




꽃과 지명을 즐기는 산책


신형근 주히로시마총영사 / 2012.8.3. / 아사히신문




히로시마에 온 뒤, 하루 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집사람과 함께 하는 아침, 저녁의 산책입니다. 시내 각지에 뻗어 있는 강을 따라 걸으면서 철마다 바뀌는 꽃향기에 취해보고, 때로는 멈춰 서서 금빛잉어 무리를 바라보곤 합니다.

나카쿠(中區) 하쿠시마(白島)에 살 때는 오타가와(太田川) 강둑을 거닐다가 마쓰이 시장이나 여타 낯익은 사람들을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오스가마치(大須賀町)로 이사 온 뒤에는 주말이면 교바시가와(京橋川)를 산책하다 강변의 오픈 카페에서 짙은 커피 향과 함께 브런치를 즐기기도 합니다.

한 번은 우연히 아침 산책길의 강변에서 “탱자나무 꽃”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을 발견하고 들러 보았는데, 그 식당 벽에 같은 이름의 시가 적혀 있었습니다. 기타하라 시로아키라는 시인이 지은 동요임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시에는 “탱자나무 옆에서 울었네 / 모두 모두가 애처로워서”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만, 탱자나무 옆에서 왜 울었는지, 왜 모두가 애처로웠는지를 생각하며 시를 즐겼습니다. 집사람은 시인으로 활동 중인데, 이 시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산책하면서 히로시마의 길 이름이나 지명을 알고 외우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평화의 길, 문화의 길 등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는 이름에서부터 떡잎 마을 거리, 원후교(猿猴橋) 같은 독특한 이름까지. 원숭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원후(猿猴)는 사실은 일본의 전설상의 동물 갓빠[河童]의 일종으로, 히로시마시 단바라 지역에서는 매년 지역의 번영을 기원하는 갓빠 축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서울의 한경변의 강변산책로 외에 다양한 산책 코스가 있습니다. 제일 유명한 것은 제주도의 ‘올레길’이라는 수많은 작은 길들. 그 외에도 광주 무등산 자락의 ‘다님길’, 울산의 산봉우리를 잇는 ‘하늘 억새길’ 등이 모두 빼어난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길입니다.

히로시마시에는 국제도시답게 우호 도시의 이름을 딴 기념 장소가 몇 군데 있습니다. 한국의 대구시와도 자매도시이므로 최근에는 산책을 하면서 대구의 이름을 딴 길이나 장소명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