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터뷰

[뉴욕] 김영목 총영사 / Voice of America / 인터뷰
출처
외교부
작성일
2012.06.22
원본URL
http://www.mofat.go.kr/webmodule/htsboard/template/read/korboardread.jsp?typeID=11&boardid=754&seqno=304158&c=&t=&pagenum=1&tableName=TYPE_ASSOCIATE&pc=&dc=&wc=&lu=&vu=&iu=&du=




제1차 북핵위기 및 제네바 합의(AF, Agreed Framework)

김영목 주뉴욕총영사 / 2012.6.4. / Voice of America




 □ 1차 북핵위기 발생 당시, 한국정부는 어떤 대응을 검토하고 있었고, 한·미간 어떤 대책이 논의되었는지? 

ㅇ 당시 한국은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개선 의지를 표명하고 있던 때라 북한의 IAEA 사찰 거부, NPT 탈퇴 선언 등으로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음. 

ㅇ 한·미간 여러 수준에서 긴밀한 협의가 있었고, 미국 내부적으로는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군사력 사용, 제재 등 아이디어도 제시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나, 한국 정부가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여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로드맵을 제시하였고, 이를 기초로 구체적인 한·미 공조를 해 나가게 되었음. 

□ 1994년 제네바합의 타결 배경은?

ㅇ 북한은 오랫동안 미국과의 정치·군사회담을 요구해 왔고, 미국과 직접 협상하고자 하는 욕구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음. IAEA 전면사찰 수락을 압박하기 위한 한·미공조와 국제공조가 진행되면서 미·북간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었는데, 제네바협상은 이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음. 

ㅇ 또한, 북한의‘서울 불바다 발언’, IAEA 사찰 거부 등 긴장고조 행동에 대응,  미국은 유사시에 대비한 군사 대비태세를 증강하여 북한을 압박하였고, 북한 입장에서는 소련 붕괴로 심각해지고 있는 경제·식량사정에 대한 고려도 있었다고 봄.

□ 제네바 AF의 핵심과 주요 성과, 아쉬웠던 대목은 무엇이었는지?

ㅇ AF의 핵심요소 세 가지는 ▲북한의 NPT 복귀, IAEA 사찰 수락 및 핵시설 불능화 등 핵 관련 분야, ▲미·북관계 정상화 및 이와 병행한 남·북관계 개선,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과 2,000MW 경수로 발전소 건설 지원임.

ㅇ 북한은 미북 적대관계 해소, 유엔사 해체,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등을 요구했다가 미국의 강한 반대에 직면하여 철회했으나, 대신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상응하여 미·북관계 정상화에 합의했음.

ㅇ 아쉬운 점으로는 북한이 자신들이 한 약속에 부응하지 않았다는 점과 IAEA 사찰과 경수로 건설의 조화 문제, 즉, IAEA 사찰이 경수로 건설 최종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합의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음.

-  한국은 IAEA 전면사찰이 경수로 건설 초기단계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으나, 협상 결과 후반부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귀결되었는데,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IAEA 전면사찰을 받지 않는 한 미·북 관계정상화는 사실상 어렵고, 역으로 수십 억 불의 투자가 이루어진 단계에서야 북한의 사찰 약속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고 할 수 있음.

□ AF에 의해 KEDO가 설립되고, 북한 내 경수로 발전소 건설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비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북한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비밀 핵 프로그램을 추진했다고 보는지?

ㅇ 북한의 핵시설 은닉 가능성과 비밀 핵 프로그램 추진 가능성은 항상 있었다고 봄. 협상 과정에서도 북한은 IAEA 사찰을 최대한 지연시키려고 했는데, 돌이켜 보면 AF가 플루토늄 관련 현안에 집중하는 동안 북한은 의도적으로 비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추진했다는 추론이 가능함. 

□ 만약 미·북이 AF를 이행하고, 동시에 관련국들이 KEDO 사업을 이행해 나갔다면 현재 상황이 달라졌을 것으로 보는지?  

ㅇ AF가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를 유도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고, 결과는 같았을 수 있음. 그러나, 세밀하게 구성된 AF의 구체 합의들을 분석, 이해하고, 보다 충실하게 이행했더라면 북한의 핵개발이 어느 정도 억제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임. 

ㅇ 물론 AF가 이행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은 자신이 합의한 약속들을 이행하지 않고 잠수정 침투,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계속해 온 북한의 오판과, 자신에 대한 조그마한 신뢰도 만들어 내지 못해 관련국들이 AF를 이행할 정치적 동력을 상실하게 만든 북한에게 있다고 봄. 북한이 처음부터 선의를 갖고 AF와 KEDO 사업에 임했다고 보기 어려움.

ㅇ 다만, 경수로 사업은 북한 사람들이 처음으로 서방과 협력 및 의사소통 하고, 특히 한국의 선진 기술, 물자 등을 목도하고, 남북한 민간인들과 engage함으로써 한국을 통일의 주도국으로 점차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고 봄. 

□ 부시행정부는 AF가 사실상 폐기되었다는 입장 하에 6자회담을 추진했는데, 결과는 2차에 걸친 북한의 핵실험으로 연결되었음.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는지? 6자회담은 유용한 것인지?

ㅇ 북한은 도발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고 판단 하에 어떤 이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계산에 따라 도발을 지속해 왔고,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봄.

ㅇ 이러한 북한의 행태로 보아 6자회담의 결실을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으나, 6자회담은 장기적으로 북한을 제외한 동북아 5개국 간 공조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해 나가는 유용한 틀이고, 앞으로도 유용하다고 봄.

□ 북한 3차 핵실험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ㅇ 답하기 어려운 질문임.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계획하고 있다고 보는 분석들이 많이 제시되고 있고, 북한은 대중관계, 국제정세에 미칠 영향, 대내적 반응 등을 저울질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음.

ㅇ 최근 상황을 보면, 국제적으로 고립을 초래할 핵실험보다는 대남 도발이나 압박 쪽에 더 우선 순위를 두고 있지 않나 싶은 측면이 있어 우려스러움.

ㅇ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관련국들이 북핵문제의 시급성, 특히 북한의 핵프로그램 유지가 한반도와 인근국가에 엄청난 잠재 위험(방사능 유출 등)이 있다는데 인식을 공유하고, 동일한 입장을 유지하면서 북한을 압박해 나가는 것이 긴요하다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