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터뷰

주복룡 총영사 / 북해도신문 / 기고
출처
외교부
작성일
2011.11.18
원본URL
http://www.mofat.go.kr/webmodule/htsboard/template/read/korboardread.jsp?typeID=11&boardid=754&seqno=303810&c=TITLE&t=&pagenum=12&tableName=TYPE_ASSOCIATE&pc=&dc=&wc=&lu=&vu=&iu=&du=




젊은 역사
주복룡 주삿포로총영사 / 2011.11.8 / 북해도신문



한국과 북해도간의 본격적 교류는 북해도가 본격적으로 개발된 20세기에 들어서였다. 그것도 전시하의 한국인 노동자들의 강제 동원에 의한 것이었으며 그때까지 한국과 북해도의 교류 흔적은 지리적 요인도 있어서 극히 적다.

한국의 삼국시대(기원전 57-668년) 고구려는 지리적으로 백제나 신라에 막혀 남방 해로를 통한 일본과의 교류가 어려워서 북방 해로와 일본 동북 지방을 통하여 일본과 사신을 교환하였다. 그 과정에서 북해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 같고 북해도와는 모피상 중심의 소규모 교역이 있었던 것 같다.

고구려 멸망(668년) 후 그 유민들이 건국한 渤海(698년-926년)도 고구려와 비슷한 통로로 일본과 사신을 교환했는데 가끔 항해 잘못으로 사신단이 북해도에 도착했던 기록이 있고(예: 서기 727년 사신단) 모피 무역도 계속되었던 것 같다.

그 후 1696년 조선 하급 군관 이지항 일행의 북해도 표류, 19세기 조선의 혁명가 김옥균의 일시적 오타루 체류 등 기록 외에 특기할 만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이렇듯 한일 간의 오랜 역사에 비하면 한국과 북해도 관계는 아주 젊은 역사밖에 없다. 그러나 젊은 역사이기 때문에 한일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축의 하나로서 발전해 나아갈 수 있는 여지도 많지 않은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