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터뷰

[스페인] 조태열 대사 / Tesauro / 인터뷰
출처
외교부
작성일
2010.12.24
원본URL
http://www.mofat.go.kr/webmodule/htsboard/template/read/korboardread.jsp?typeID=11&boardid=754&seqno=303416&c=TITLE&t=&pagenum=29&tableName=TYPE_ASSOCIATE&pc=&dc=&wc=&lu=&vu=&iu=&du=




조태열 주 스페인왕국 대사 / 2010.12.20(월) / Tesauro


      (1) 한국이 불과 40-50년 만에 경제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ο 흔히들 아프리카의 특정국과 한국의 60년대 초반 및 현재의 1인당 국민소득을 비교하여 한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을 기적이라고 부르는 바, 이는 한국을 2차 대전 종전후 태어난 신생 독립국의 하나로 취급하여 한국의 경제 발전 역사를 과도하게 단순화하는 것임.

          ο 한국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변방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며, 세계 문명 발전에 기여해 온 수천년의 역사ㆍ문화ㆍ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로서 이들 신생 독립국들과 단순 비교할 수 없는 나라임.

          ο 오랜 역사에 걸쳐 축적되어온 문화적ㆍ지적 인프라가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한국의 빠른 성장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임. 따라서, 한국의 경제 기적은 한국의 역사라는 보다 큰 틀에서 보아야 진정한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봄.
      (2) 한국이 세계적인 대기업들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방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이들 기업들이 한국 기업임을 적극 알리지 않은 홍보 전략 탓인지?

          ο 한국이라는 국가 이미지가 삼성, LG, 현대 등 글로벌 한국 기업들의 이미지보다 뒤떨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런 이유에서 한국의 대기업들이 그들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적극 홍보하는 것을 꺼려할 수도 있다고 생각함. 국가 이미지와 기업 이미지간의 간격을 줄이고 소위 Korea discount를 Korea premium으로 바꾸기 위해 우리정부는 현재 국가 브랜드 위원회를 설치하여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바, 이러한 노력들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게 되면 우리 기업들도 스스로 한국 기업임을 적극 홍보하게 되는 때가 올 것이라고 봄. 그러나 국가 이미지 제고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함.

          ο 개인적으로, 한국의 국가 이미지 문제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일본이라는 아시아 대국을 이웃으로 하고 있다는데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함. 중국은 이미 수천년 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국으로 서방에 인식되어 왔고, 일본은 1-2세기 전부터 세계 열강의 하나로 부상하여 서방에 확실한 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으나, 한국은 세계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때에 잠자고 있음으로써 문명국으로 서방에 알려질 기회를 놓치고 말았음. 따라서, 서구인들은 한국 문화를 중국이나 일본 문화의 아류로 생각하면서 중국이나 일본의 프리즘을 통해 한국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음. 향후 한국의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한 문화 외교의 성패는 중국, 일본과의 차별화에 얼마나 성공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함.

      (3) 한국 학생들의 뛰어난 학업 성취도와 한국의 높은 R&D 투자율은 교육제도 덕분이라고 보는데?

          ο 배우고 익히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라는 유교적 가르침 속에서 자란 한국인들은 지적 성취에 대한 큰 갈망을 갖고 있으며 자녀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차 있음. 최근 OECD에서 실시한 테스트 결과 한국 학생들이 학업 성취도에서 수위를 차지한 것도 이러한 한국사회의 유교적 전통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함.

          ο 그러나, 개인적으로 한국의 공교육 제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음. 많은 한국의 부모들이 공교육 제도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고, 그런 이유로 자녀들을 미국, 유럽 등에 유학 보내고 있음.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을 만큼 한국의 학생들은 공부를 강요하는 사회적, 가정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교육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 많은 한국인들의 생각임.

      (4) 한국은 오늘날 활기찬 민주 국가로 인식되고 있는 바,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그 시발점이 된 것인지?

          ο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한국의 민주 발전에 기여한 사건임은 틀림없으나 시발점이라고 할 수는 없음. 한국은 6.25 전쟁 이후 10년간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60년대 초의 학생 운동과 민주정부수립 직후 사회 혼란속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의 독재에 저항한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그 이후 계속된 권위주의 정권을 타도한 학생ㆍ시민 운동 등 민주화를 위한 오랜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음. 60년대 중반 영국의 한 언론인이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그 이후 한국의 역사는 동인의 생각이 전적으로 틀렸음을 입증하고 있음.

          ο 한국의 민주 정치 발전이 서양에서 도입된 민주주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동양의 유교적 정치사상의 영향도 크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견임. 유교, 특히 주자학(neo-confucianism)은 군왕이나 정부가 백성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하면 백성이 이를 갈아치울 권리가 있다고 가르칠 만큼 혁명적인 민주적 사상을 담고 있었음. 비유해서 말하면 백성은 물과 같고 임금은 물 위에 떠 있는 배와 같아서 거친 파도가 일면 배는 뒤집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임.

      (5) 중국, 일본 등 강대국과 이웃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인의 일상생활에 스트레스가 되는지, 아니면 성공을 위한 긍정적 요소가 되고 있는지?

          ο 한국의 역대 왕조들은 이웃 강대국인 중국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를 국가 생존을 위한 외교정책의 근간으로 삼아 왔고, 수많은 중국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전반적으로 원만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왔음. 현대사에서 냉전시대에 양국은 이념 차이로 인해 공식관계를 갖지 못하였으나 수교 이후 급속도로 관계가 진전되어 왔으며 이러한 관계 진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 될 것임. 과거에 선진 문화를 가르쳐 주고, 지금은 제 1의 수출시장이 된 중국이 한국의 이웃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한국인에게 스트레스가 될 이유는 없다고 봄.

          ο 일본의 경우 양국간 불행한 과거사가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한국의 발전에 자극제가 되고 있다고 생각함. 과거 한반도는 중국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여 이를 일본에 전수하는 교량 역할을 하였으며, 이는 일본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바임. 19세기 국제 환경 변화에 재빨리 적응한 결과 오늘날 우리보다 훨씬 앞서게 된 일본을 빨리 따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한국의 정치ㆍ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함.

      (6) 통일 비용에 대한 우려로 한국민들이 통일을 꺼리고 있는 건 아닌지?

          ο 독일 통일 당시 동독의 경제 규모가 서독의 1/4 수준이었던 반면, 현재 북한의 경제 규모는 남한의 1/60 수준 밖에 안되므로 통일 비용이 독일의 경우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데 대해 한국인 모두가 우려하고 있는 것은 사실임.

          ο 그러나, 통일 비용이 크다고 해서 통일을 원하지 않는 국민은 없다고 생각함. 한국은 과거 1,000년 이상 통일국가로 살아왔기 때문에 한국민에게 통일은 당연한 것이며 다만 통일 방식과 시기만이 문제가 될 뿐임.

          ο 통일은 평화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북한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는 바, 통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북한내의 혁명적 변화보다는 점진적 진화가 바람직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임.

      (7) 불교, 기독교, 유교, 샤머니즘, 천도교 등 다양한 종교ㆍ사상중 한국의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ο 한국은 기본적으로 유교적 전통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는 유교적 사회라고 생각함. 가정과 사회의 위계 질서가 중시되고 사회적 규범과 규율을 통해 개인의 복지보다는 사회 전체의 복지(collective betterment)를 추구하는 전통이 오늘과 같은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함.

          ο 불교는 유교가 한국사회의 지도적 이념으로 자리잡기 이전에 한국을 지배하던 종교였는바, 명상을 통한 깨달음의 중요성과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을 가르침으로써 한국인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살찌워 주었다고 생각함.

          ο 기독교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오히려 불교나 유교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데, 개인의 권리와 행복의 중요성과 기본권에 대한 존중 등을 가르쳐 개인주의를 고취시키고 외국 선교사들의 적극적 사회 참여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정치 민주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봄.

          ο 샤머니즘은 한국인의 종교적ㆍ영적 생활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colour),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도 한국인의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상이라고 생각함.

          ο 이 모든 종교ㆍ사상이 한국 사회의 발전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고 기여하였다고 보며, 특정 종교나 사상 하나만을 집어 한국의 성공 요인으로 내세우기는 어렵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