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터뷰

[기고] ''일본적 안정이 무너진 도의회 선거''
출처
외교부
작성일
2017.07.21
원본URL
http://www.mofat.go.kr/

매체 및 보도일자 : 히로시마 마이니치 신문 기고문 제27회분(‘17.7.21)

전문 내용:

특임공관장으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정치권에 몸담았던 필자이기에 한일 양국의 정치를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을 늘 흥미로운 일이다. 외교관에게 “내정간섭 금지”는 하나의 금칙이기 때문에 그동안 정치와 관련된 언급은 가급적 자제해왔지만 오늘은 정치 얘기를 조금 해 볼까 한다.

오늘 굳이 정치 얘기를 꺼낸 것은, 지난 3년여의 일본생활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현상을 최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일의 도쿄 도의회 선거가 그것이다. 잘 아시다시피, 한국은 대통령제, 일본은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대통령과 국회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있으며, 국회에는 해산제도가 없다. 대통령과 국회 간에“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지켜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 겨울부터 올 봄까지 한국 정치가 겪었던 격렬한 진통과 변화를 보면서 “만약 한국도 일본처럼 국회 해산제도가 있는 내각제 였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절차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좀 더 일찍 상황을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기가 손쉬웠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큰 차이는 한국에서는 일본과 달리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의회를 구성하는 지방선거도 항상 동시에 치른다는 점이다. 해산이 없는 국회의원 선거 후, 대략 2년 정도 뒤에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통상 중앙정치에 대한 ‘중간평가적’ 선거가 되곤 한다. 때문에 국정의 여러 과제가 지방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쉬운 체제가 되고 있고, 그래서 높은 현역 교체율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유권자들의 목소리는 항상 새로운 인물과 정책을 요구해왔다. 때문에 한국에서의 선거는 늘 격정적이다. 작년 1월의 칼럼에서도 썼듯이, 이번 국회에서도 그 결과로 49.4%의 초선의원이 당선된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하지만 지난 3년간 필자의 눈에 비쳤던 일본의 정치는 ‘국회 해산제도’가 있는 내각제인데도 불구하고, 현역 재당선율이 매우 높고, 한국에서는 정말 용인되기 어려운 세습도 일반화 되어있는… 꽤 안정적인 것으로 비쳤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정국을 보면 (물론 상징성이 큰 도쿄도 의회 이지만) 일개 지방의회의 선거 결과가 국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다. 필자가 서울시 부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서울시는 시장·구청장을 비롯해 시의회까지 야당일변도였다. 정원 106명 중, 당시 국회의 제1야당(한나라당) 소속 시의원이 100명이나 됐고, 서울시 산하 25개 구의 구청장도 전원 야당 소속이었다. 당시의 선거결과는 전국적인 현상이었고, 당시의 대통령과 집권여당으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도가 국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한국 정치는 매우 격렬한 반면, 정치의 각 레벨에서 여야당의 “어긋남(ズレ)”에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일 양국의 정치를 보면서, 한국 정치에 약간 부족한 안정성이 일본에서는 상당히 확보되어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번 선거 및 그 결과를 보면서 일본정치에도 의외로 동요하기 쉬운 면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일본 생활 3년 만에 처음으로 조금은 낯선 정치상황을 마주하면서 느낀 소회는 민주주의 제도에 있어서 완성이란 것은 없다는 점과 결국 민주주의라는 것은 제도상의 차이 여하 보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어떻게 국정에 잘 반영되도록 할 것인가?”의 경쟁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런 점에서도,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서로 나눌 얘기가 많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끝.